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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May 22. 2022

5월의 궤도 이탈

감정의 악천후를 만나다

 옛날, 네덜란드의 한 소년이 구멍 난 둑을 팔을 집어넣어 막았다고 한다. 그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렇게라도 둑이 터지는 것을 막았다면 참 다행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둑에 구멍이 여럿 날 수도 있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구멍들을 다 막을 수는 없다. 둑이 터지면 도랑인 줄 알았던 것이 강이 되고, 강인 줄 알았던 것이 바다가 된다. 작은 배 위에 있는 나는 도랑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내가 있는 곳이 바다가 된다면 두려움에 떨지도 모른다. 하필 악천후는 이럴 때 찾아온다. 악천후 속에 나는 정신을 잃고 표류했고, 이후 알 수 없는 섬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5월 말이 되었다.

 

보통 5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초여름의 싱그러움 속에 대학가의 축제가 시작된다. 결혼을 하기에도 좋은 계절이기에, 5월의 신부라는 말도 있다. 좋은 날씨 속에 가정의 달 행사도 몰려있다. 그래서 5월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인생에는 희노애락이 존재하기에, 항상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스물아홉을 먹으면서 그점을 잘 알고 있고, 슬픔과 불행에 어느 정도 대처할 줄도 안다. 하지만 연거푸 찾아오는 시련에 나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멘탈을 잡아야 하는데'하면서도 그러지 못했고,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너무 잘 느껴버려서 괴로웠다. 물론 문제들이 다 해결된 지금 나는 너무나 멀쩡하지만, 당시 나의 말을 빌리자면 성인이 되고 나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다 싶다.


나는 항상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정작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스스로가 뭔가를 마주할 때면 혼자 이겨내야 한다며 가혹하게 구는 편이다. 한참이나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내가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요즘에야 느낀다. 주변인에게 너무 기대도 문제이지만, 너무 기댈 줄 모르는 것도 문제이다. 그리고 기대기에 너무 늦어버리면, 아마 그전에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는 적절하게 도움을 구하고, 의지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악천후 두들겨 맞는 와중에 들었던 생각이다.


정신을 잃었던 나는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며칠 후면 길에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구두에 얼룩 정도만 남았을 뿐이다. 아마 나는 이제 중간 배 정도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그냥 다음에 또 악천후에 정신을 잃으면 되고, 잠시 표류하다가 새로운 섬에서 깨어나면 된다.


5월이 지나간다. 안 좋은 기억들은 아마 6월이 되면 깊은 곳에 가라앉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덮어 놓고 살 것이다. 가끔 큰비가 오면 잠깐 떠오를지도 모르지만, 또 금방 가라앉을 것이다. 우리는 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알게 하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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