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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Jul 29. 2022

킬링보이스를 보며 떠오른 생각

남이 좋아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꺼내는 마음

유튜브를 보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킬링보이스를 알 것이다. 딩고라는 채널을 구독하지 않아도 오며 가며 몇 번쯤은 봤을 것이고, 거기 나온 가수 몇몇은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좋아하는 노래를 요즘 음향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킬링보이스에서 간혹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 가수가 고른 10곡 정도의 리스트에 하필 내가 좋아하는 곡 A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는 댓글도 꽤 있다.)


가수가 고른 리스트 안에는 내가 모르는 곡도 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한다. '아... 모르는 노래 대신 A곡 넣어주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차치하더라도, 꽤 인기 있는 곡이었음에도 리스트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덜 인기 있었던 곡이 차지하고 있다. 그때 가수는 말을 덧붙인다. "제 노래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와 같은 설명을 말이다. 덜 유명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꺼낸 진심이 느껴진다. 남들이 덜 좋아하는 것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이기에 꺼낼 수 있는 용기도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취준생 시절 자기소개서를 쓰던 때가 떠올랐다.


자기소개서에는 보통 4~5문항 정도가 있다. 각각의 문항은 열정/창의력/협동심/직무역량 등 각기 다른 모습을 물어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4~5개 정도의 그릇에 나눠 담는다. 하지만 가장 아끼는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최선을 다한 경험일지라도 이 그릇에 어울리지 않을 때가 있다. 취업시장은 냉정하기 때문에 나는 그 경험을 가차 없이 빼버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말이다. 사실 굳이 자기소개서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대신 세상이 더 좋아하는 것을 꺼내본 경험은 너무 많다.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아마 이런 잣대를 킬링보이스에 들이댔다면, 아티스트가 리스트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기순위로 10곡을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노래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기도 하다. 덜 인기 있는 것을 꺼낸 가수의 용기와, 그것을 넘기지 않고 들어준 청자가 함께 만든 작은 기적이다. 나는 예전에 CD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는 매력이 수록곡을 듣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덩치가 큰 CD플레이어는 가방에 넣고 이어폰만 쏙 빼서 들어야 한다. 컨트롤이 어렵다. 덕분에 2번쯤에 있는 메인곡을 지나 뒤쪽의 수록곡까지 내 고막에 닿을 수 있었다. 아무튼 원하는 것만 쏙쏙 찾아 보고 들을 수 있는 스마트폰 시대에 무슨 영감 같은 짓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아날로그 감성으로 세렌디피티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용기 있게 꺼낸 것을 보고 들을 준비는 된 것 같다. 다만 세상이 좋아하는 것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꺼내는 일은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아직도 고민이 된다. 아마도 브런치 정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데, 아직 꺼내지 못하고 '작가의 서랍'에 묻혀 있는 더 솔직한 생각들을 머지않아 꺼내보고 싶다. 현생 살기에 급급해서 한 달에 1-2개나 겨우 쓰는 글인데 찾아와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대부분 나의 지인이겠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임에도 글만 보고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감사하다. 뭔가 더 솔직해지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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