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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Aug 31. 2022

'보관'이라는 이름으로 숨겨버린 (1)

숨기고 싶지만, 보여주고 싶은 20대 초반 시절 일기

브런치를 켜면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온다. 

글씨의 색은 아래 문장으로 갈수록 더 엷어진다.

'서랍 속 간직하고 있는 글과 감성'은 엷어지는 글자의 색처럼 낯을 가린다. 브런치는 정말 좋은 플랫폼이지만 나는 이 공간이 피난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대중적인 SNS에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런 곳에 글을 쓰는 일은 지나치게 감성적인/진지한 행동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행여나 그곳에 글을 쓰더라도 읽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글이 아닌 사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유목하던 작가들을 브런치나 블로그 같은 공간으로 떠나게 되었다. 따가운 시선 혹은 무관심 속에, 나 역시 더 이상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페이스북에 쓴 글은 비공개 혹은 삭제를 해버렸고, 장문으로 쓴 인스타그램 게시물들은 '보관' 처리를 해버렸다. 하지만 사실 숨기고 싶다가도 보여주고 싶고, 그러다가도 다시 숨기고 싶은 예전 글들이 많았다. 브런치 소개 문구를 보고 '보관' 혹은 '간직'한다는 이름하에 감춰버린 글들을 다시 꺼내 보고 싶어졌다. (어차피 나의 브런치 구독자 대부분은 나의 지인이기에, 읽으면서 내가 아는 사람이 더 어렸을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1. 2013년 겨울, 두 번째 수능을 보고 나서 쓴 글

망가졌던 컴퓨터가 돌아왔다. 몇 년째 같은 아저씨한테 컴퓨터 고쳐서 아저씨와 친분이 있는데, 올해는 잘 마무리했냐고 물으신다. 모르겠다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더니, 뭐든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건 없다고 잘 될 거라고 하신다. 아저씨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바닥을 닦아도 닦아도 계속 선생님이 다시 하라고 해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더니, 마루를 100번 닦으면 된다고 했다고, 그때부터 그 마음으로 산다고.  잘 안될 때, 갑갑할 때 다른 것들을 탓하고 싶어질 때, 나를 한 번만 더 뒤돌아보자.


2. 2015년 1월, 아버지에 대한 생각

 소주를 한잔을 걸치신 아버지가 붉어진 얼굴로 말하신다. "아빠가 많이 가진 것은 없어서 너 하고 싶은 거 다해주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해줄 수 있는 거 해주려고 많이 노력한다. 우리 아들 없었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허허 사랑한다 아들." 웃으면서 "저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머릿속엔 말로 표현 못하는 더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살아가면서 부모님께 받기만 하는 순간이 많다. 철이 들어가면서 이 사랑이 더 많이 감사해진다. 파스를 잔뜩 붙이신, 환갑을 향해 가는 아버지는 내일 아침에도 나를 위해 무거운 것을 나르며 일을 하실 것이다. 나를 안아주고 누우러 가는 뒷모습에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존경심이 오묘하게 뭉친다. 언제나 나를 바라봐 주시는 그리고 다 주고도 미안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면 빨리 더 성장해서 내가 지켜드리고 싶다. 물론 그때도 부모님은 나를 먼저 생각해주시겠지만 말이다. 어린 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랑을 베푸는 사람만을 동경해왔던 내가 생각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될수록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아침이 다돼서야 침대에 누운 나는 아버지가 출근 준비를 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자는 나의 모습을 한번 보고 출근하신다. 자는 척하며 감은 두 눈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린날의 나에게 키가 큰 거인이었던 부모님은 지금 훌쩍 커버린 나에게 마음의 거인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3. 2016년 겨울, 부대에서 잠들기 전에 문득 든 생각

살면서 어떤 것에 후회가 되는 순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좀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가 될 것 같을지라도, 예전에 내가 그런 선택을 했기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 곁에 있는 모든 것이 지금 내 곁에  있을 수 있다고.


4. 2017년 가을, 어르신들 대상 봉사활동을 마치고 쓴 글

1주 차부터 쓰려고 했던 행밥. 6주 차가 되어서야 처음 글로 쓴다. 봉사활동이라고는 시간 채우기 용으로 관공서에 가서 껌이나 떼던 내가, 제대로 된 요리라고는 별로 해본 적도 없던 내가 어르신들과 함께 요리하는 프로그램의 팀장이 되었다. 부끄럽게도 처음에는 스펙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잠과 바꾸었지만 지나면 늘 보람찼고, 끝이 다가오면 어르신들만큼 나도 아쉬웠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제도적 변화를 통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바뀌었고, 그 대신 소소한 나눔의 가치를 배워간다. 내가 이렇게 이 활동에 애정을 가지게 될지 몰랐는데, ‘해야만 하는 것’들 사이에서 발견한 ‘하고 싶은 것’은 참 큰 감정을 안겨준다. ‘힘들다’, ‘바쁘다’를 달고 사는 요즘이지만, 단순한 봉사가 아닌 감정의 교류를 통해 마음도 스물다섯을 향해 성숙해진다.


5. 2017년 가을, 청소년 대상 멘토링 활동을 하고 쓴 글

두 번째 정기투어가 지나갔다. 두 학기 연속으로 강연을 했는데, ‘우리는 왜 노력을 할까?’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이야기했다. 노력은 성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사실 살면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나름의 철학(?)이 이것밖에 없다. 다만 입시가 아닌 인생의 방향이라는 목적함수를 두어야 하다 보니, 청소년기보다 답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이다.

강연의 마지막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이야기지만, 여러분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사실 피드백을 받은 적은 없는데, 무심코 인스타 태그를 구경하다가 내가 말한 내용을 포스팅한 학생의 글을 봐서 새삼 뿌듯하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멋진 일이다.


6. 2017년 겨울, 1학기짜리 봉사활동을 마치며 쓴 글

이름부터 그렇지만 행복한 밥상의 중심은 요리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요리에 시선을 빼앗기고, 더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다. 우리가 이 활동을 하는 이유는 어르신들과 교감하고, 이를 통해 그분들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가끔은 사람의 눈을 보지 않고 도마 위를 보고 있으니, 중요한 것을 놓칠 수밖에. 그럼에도 매주 프로그램에 오는 이유를 ‘요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닌 ‘너희를 보기 위해서’라고 말씀해주시는 어르신들 덕에 정답을 찾고 프로그램을 마무리한다.

누구나 외로움을 품고 사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 나를 매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힘들다를 연발하면서도 이렇게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밥상을 차리러 왔다가, 행복만 먹고 간다.


7. 2018년 6월, 학기를 마치고 든 생각

지난 연말에 서울로 돌아오면서 듣던 노래를 다시 듣고 있다. '끝나지 않은 노래' 라니, 제목이 참 맘에 드는 노래다. 바쁘게 살다 보니 한고비를 넘길 때마다 안도를 하지만, 이내 찾아올 새로운 무언가를 걱정하는 습관이 생겼다. 남은 반년은 노래 가사처럼, 새롭게 찾아올 일에 두려워하기보다 설레며 보내고 싶다.


8. 2018년 8월, 현대자동차에서의 인턴을 마치고 든 생각

인턴 나부랭이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아닌 인생의 후배 그리고 팀원으로 생각해 주셔서 진심으로 행복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사람도 생각도 많이 얻어 올 수 있었다.

- 예의와 적극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 넓은 생각을 위해 다양한 경험이 얼마나 필요한지

- 아직 대학생인 나의 젊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배워간다. 유럽으로 가기 전에 기분 좋은 예방 주사를 잔뜩 맞은 기분.


9. 2018년 8월, 유럽 교환학생을 떠나며 든 생각

아직 설렘보다 두려움이 크지만 출국합니다. 일상처럼 만났던 사람들은 물론 아미가의 호박죽, 커피수공업의 분위기, 포트카페의 강아지까지 그리울 것 같아요. 2019년에 만나요!




오랜만에 꺼내 보니 창피하기도, 그 시절의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요즘은 공허함이나 감성적인 순간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어떤 활동을 마치며 느낀 감정을 성장일기로 남기곤 했다. 성취의 순간을 일기로 쓰는 것은 '아무도 주지 않는 훈장을 열심히 산 나에게 스스로 달아주는 일'과 같았다. 이제 와서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어떻게 그리 바쁘게 살았을까?' 싶기도 한데, 나라는 캐릭터를 레벨업하며 느끼는 성취감이 너무 좋아서 피곤함도 몰랐던 것 같다. 거기에는 스스로 달아준 훈장이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예전 글을 보면 지금에 비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더 따뜻했다. 지금도 나름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고 하는데, 예전과 달리 행동(ex. 봉사활동)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니 '따뜻한 시선'이 성립되려면 일단 '시선'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요즘 동태 눈깔을 하고 있다. 무관심이 미덕인 시대에 너무 잘 적응한 탓일까? 나의 영역은 좁아졌고, 영역 밖의 일에는 시선을 두지 않는다. 따뜻함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나, 시선이 닿는 범위를 마냥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국 더 넓은 영역에 온정을 보낸다는 것은 더 큰 에너지의 소비를 의미한다. 그러고 나면 체온을 유지할 내 안의 에너지가 정작 부족할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나는 바깥세상을 사랑하는 것만 따뜻함인 줄 알았다면, 지금은 스스로를 챙길 줄도 아는 멋진 (이기적인) 어른이 되었다.  


과거의 내가 했던 생각은 일부는 유지되고 있고, 일부는 바뀌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쌓여가며 만들어지는 것이겠으나 과거의 생각이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퇴적되었다고 해서 그 지층이 반드시 보존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내가 어떤 생각을 글로 남길 만큼 깊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과, 사진/기억만으로 되살리기 어려운 것들을 글로 되새김질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좋았다'라는 말로 퉁쳐놓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뒤에 올 문단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내 문장으로 표현하면 좋겠지만, 글 잘쓰는 블로거의 문장이 내 생각을 더 잘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휘발되는 듯한 시간도 과거가 되면 머지않은 언젠가에 내게 많은 것을 줄 거란 걸 이젠 잘 안다. 아, 아는 것은 아니고 배웠다. 나는 언제나 양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날 통과한 나의 시간들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기에 생 전체를 결산하면 나는 늘 이득을 본 사람이 된다. 지난 흔적이 손으로 쥘 수 있는 어떤 결정체로 전환되기까지 불가피한 공정 처리의 시간이 필요할 뿐. 그것들은 이미 내게 고유한 자양분으로 오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내가 선택한 헤엄' 중 '어제를 졸업한 내가 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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