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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den Jan 29. 2023

누군가에게는 내가 맑눈광일지도?

MZ오피스를 본 직장인의 자아성찰

SNL MZ오피스 코너는 요즘 나의 웃음벨이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 그리고 대사 사이사이 괄호로 표현되는 속마음 나레이션이 취향저격이다. 아무튼 여기에는 늘 에어팟을 끼고 상사의 말을 먹어버리는 '맑눈광'이 등장하는데 대충 '개념 없는 요즘 것들'을 웃기게 표현한 캐릭터이다.


이걸.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올라갑니다.

여기저기에서 MZ타령을 하며 요즘 것들(Z세대)을 찾지만, 사실 94년생(한국식 나이 30살, 사업부 나이서열 뒤에서 2등)인 나조차도 Z가 아닌 M세대이다. 어찌 됐건 내가 요즘 것들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낄낄거리며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와 혹시 누군가에게는 나도 저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 누군가(아마도 우리 팀장님)의 입장에서, 나를 최대한 엄격하게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10시 전에만 오면 되는 자율출근제를 시행 중인 S정유사. 그럼에도 부장급들은 9시면 모두 착석해 있다. 하지만 9시 35분에 당당하게 4년 차 홍PM이 들어온다. 이미 앉아있는 선배들 사이에서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낸다. 쟤도 신입사원 때는 8시 45분에 왔다고 하던데 세월 참 좋아졌다.
아! 생각해 보니 오늘 거래처랑 저녁자리가 있었다. 까먹고 이부장한테만 이야기를 했네. 뭐 홍PM이 담당하는 거래처는 아닌데 그래도 함께 자리하면 좋을 것 같다. 같이 나갈 생각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쟤는 뭐 그렇게 바쁜 게 많은지, 퇴근하고 PT가 있어서 오늘은 못 나갈 것 같다고 한다. 당일취소가 안된다고? 아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PT비용을 내줄 것도 아니고. 다음엔 가야 되는 자리면 내가 미리 말해야겠다.
다음 주는 오래간만에 팀 회식을 하기로 했다. 메뉴는 통상 막내에게 고르라고 하는 편이다. 소고기? 또? 맨날 소고기 노래를 부른다. 얘는 전생에 소에게 쳐 맞기라도 한 걸까? 막내한테 메뉴를 고르라고 하는 것은 소고기를 먹자는 말과 동의어이다. 아무튼 원하는 대로 창고43에 예약을 하라고 했다. 조직관리비를 너무 많이 썼나? 흠.. 다음에는 김치말이 국수 먹자고 해야겠다. 상무님 눈치가 보인다.
오후에는 판매전략 보고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넷이서 회의실에서 자료를 만들다가 속이 좀 출출하다. 카페에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 오라고 막내에게 카드를 주었다. 법인카드 결제 알림이 울린다. 카페에서 42,000원? 많이도 샀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통이 큰 것 같다.

막상 너무 얄밉게 표현했나 싶기도 한데,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회사의 정해진 룰을 어긴 부분은 없다. 즉 나는 선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얘 좀 비호감인데?, 선 넘네...'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비호감이 아니라고 생각해 주시면 ㄳ) 사규에서 정한 선을 넘지 않았는데 왜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여기서 잠깐 이놈의 '선'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요즘 사람들은 타인이 나의 선을 넘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 선을 넘지 않는 것이 곧 매너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다행히도 근무시간, 업무분장 등은 통상 규칙이라고 하는 것이 그 선을 정해준다. 덕분에 우리는 많은 부분에 있어 어떤 선을 지켜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규칙이 정할 수 없는 태도라던가, 업무분장이 불분명한 영역을 대할 때 난감해진다. 우리는 각자의 선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서로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게 되고 갈등이 생긴다. 그리고 각자가 그어 놓은 선 뒤에 숨어서, 이 선을 넘지 말라고 말하며 나에게 유리한 유권해석을 해버린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규칙에 있어서는 법을 따르는 게 당연히 맞겠지만,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영역에 있어서는 서로 배려를 좀 하자는 이야기이다. 나의 작은 경험들에 따르면, 젊은 이들은 통상 규칙이라는 선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기성세대들은 선을 그을 수 없는 영역에 있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을 긋는 젊은이들의 태도에 대해서만 얘기를 한다. 자연스럽게 말이 안 통한다. 그냥 그게 갑갑해서 한번 써본 글이다. (애초에 말이 통할 거였으며 브런치 들어와서 이런 글을 읽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위에 너무 스스로를 폐급처럼 묘사한 것 같아서 변호를 좀 해보자면 유연출퇴근과 공유좌석제를 잘 이용하지만, 우리 팀장님께서 아래 같이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혹시나 이글 보시는 저의 지인들이 저의 회사생활을 걱정하실까하여...ㅎ)

그래도 팀에 이상한 잡무나 심부름 있으면 다하고, 요즘은 안 가도 되는 회식자리도 꽤 따라나가고 우리 막내 많이 컸다. 지난번엔 행사 가서 회장님들한테 나름 싹싹하게 하던데 말이야. 좌석도 아예 다른 층 앉는 게 아닌 게 어디냐. 에휴 천천히 출근하는 것도 뭐 야근해서 근무시간은 넘치게 채우니까 할 말도 없다. 참 요즘 애들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이런 MZ들까지 이해하는 나란 팀장. 존나 쿨내나네.

세상만사 갈등이 많은 현대 사회라 그런지 요즘은 사상보단 일상이 좋고, 뉴스보단 블로그에 손이 간다. 아무튼 수많은 갈등 중 사무실 한정, 요즘세대(MZ)와 기성세대에 대한 글을 써보았다. 


MZ와 기성세대, 선 그어지지 않는 그 사이에 DMZ가 필요하다.


(늘 저에게 넓은 DMZ를 내어주시는 우리팀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충성충성^^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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