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는게 벌써 무서워요

마음은 저속노화하고 싶어요

by Caden

완전 핫했던 폭싹 속았수다를 남들보다 2~3주쯤 늦게 완주했다. (보면서 소용돌이쳤던 감정들은 잠시 접어두고) 주인공의 일생을 16편 만에 너무 몰입해서 보다 보니, 인생이 참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현재진행형의 감정으로 말하자면, 젊음이 너무 짧은 것 같았다. 두려웠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태양계 밖으로 점점 멀어져 가는 보이저호와 겹쳐 보였다. 처음엔 설렘을 안고 우주여행을 시작했던 보이저호도 해왕성의 궤도를 넘어설 즈음엔 두렵지 않았을까?

드라마 보면서 오열해놓고, 정작 다른 사고의 흐름으로 이어져버렸다.

몇 살까지가 젊은 나이일까? 아마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제는 술 마신 다음 날이 예전 같지 않아요~” 하며 너스레 떠는 늙은이 호소인 20대도 있고, 여전히 청춘이라며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사는 40~50대도 있다. 젊음에 대한 자각은 정말 다양하다. 우리 회사엔 신입사원이 거의 없다 보니, 몇 년째 나는 조직 내에서 막내급이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나는 젊으니까 MZ스러운 행동을 해서, 사람들에게 ‘젊은이’라는 인식을 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하리만큼 절대적으로 젊음과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흐르고 아저씨가 되어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텐데, 단순한 생물학적 흐름이 아니라 내 인생의 페이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몇 장을 건너뛴 느낌이다. 중간에 이야기가 끊긴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며칠간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를 곱씹어봤다.


내가 찾은 나름의 이유는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거였다. 만 31년 짜리 인생에서 학생이었던 시절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다. 초·중·고 때는 대학을 잘 가려고, 대학생 때는 직장을 잘 가려고 목표의식에 미쳐 있었고, 성장과 성취의 도파민에 절여져 있었다. 그 과정에서의 설렘이,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덮어버리곤 했다.

회사에서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아직 갈 길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업무를 파악하고 나니 새롭게 성취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 뭔가 해보려는 게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설렘과 용기는 사라지고, 현실의 책임과 두려움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장의 과정에서 설렘을 느끼던 소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이런 마음이 들면 그게 바로 젊음을 잃어가는 순간일까?


근데 그러긴 싫다. 외모가 갑자기 폭싹 늙어버리는 것도 싫지만, 내 마음이 늙어버리는 건 더 싫다. 요즘 저속노화가 유행이라는데, 내 마음도 저속노화 시키고 싶다. 와이프도 소년미 있는 사람이 좋다고 했다. 살다 보면 목표의식 없이 그냥 흘러가는 시기도 있을 테지만, 그 상태에 스스로를 너무 오래 방치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 없는 직장인입니다(https://brunch.co.kr/@koblenz/40) 하고 글을 쓴 게 벌써 1년 반 전인데, 성장 없이 방치된 마음이 이렇게 늙는 건가 싶다.


찾아보니 보이저 1호의 원래 임무는 목성과 토성을 관측하는 거였다고 한다. 이 친구도 담당하던 행성까지 보고 나선 잠깐 우주여행이 시시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하다보니 재미있는 걸 또 찾아서 아직도 임무를 수행 중이다. 잠깐 재미없고, 잠깐 두려웠을 순 있어도, 묵묵히 할 일을 하며 계속 나아간다. 나도 그래야겠다. 그게 마음 저속 노화의 길이다.

보이저1호는 목성/토성을, 보이저2호는 천왕성/해왕성을 탐사한 후, 태양권을 벗어나 성간우주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다.

나이를 먹고 몸이 할아버지가 되어도, 마음만은 소년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놈의 회사, '탈출은 지능순' 이거 맞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