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성과 줄거리 리뷰
1. 영화 구성
영화는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쓴 테니스 자매 선수 비너스 윌리엄스, 세리나 윌리엄스의 아버지 리차드 윌리엄스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초점은 비너스와 세리나가 아니라 그 둘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낸 아버지 리차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두 자매가 조금 성장한 이후(추측컨대 10세가 조금 안되었을 때로 보임)부터 비너스가 첫 프로 데뷔하는 시점까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세리나보다는 비너스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자매가 선수가 되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그런 모습보다는 비너스가 어떻게 프로 데뷔 전까지 연습하고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실력을 쌓았는지 그리고 모두가 궁금해하는 프로 데뷔의 모습을, 드디어 짠! 하고 보여주면서 끝나고, 그 후 비너스, 세리나 자매의 역사는 엔딩 내레이션으로 설명한다.
2. 영화 줄거리와 리뷰
영화 시작은 리차드가 코치들을 찾아다니면서 계획서를 보여주고 딸들을 위해 코치가 되어달라고 프레젠테이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리차드는 딸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저한테는 78페이지의 계획서가 있습니다. 애들이 태어나기 전부터요, 1977년에 테니스 시합에서 비르지니아 루지치가 시합 후에 4만 달러를 받는 걸 봤어요. 저는 1년에 5만 2천 달러는 버는데. 집에 가서 아내에게 아이 둘을 더 낳아야겠다고 말했죠. 그날 밤 비너스와 세리나를 위한 이 모든 계획을 만들었어요’.
당시 테니스는 백인들의 스포츠였고, 빈민가 콤프턴에 사는 리처드의 부탁을 들어주는 백인 코치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얼토당토않는다는 식으로 비웃었다.
리처드는 독학으로 테니스의 기초를 익혀서 딸들한테 테니스를 가르치면서 아내와 함께 키운다. 리처드 부부한테는 총 5명의 딸들이 있는데 모두가 비너스, 세리나의 테니스 훈련을 위해서 가족 모두가 노력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가족 전체가 하나의 팀이었다. 다른 딸들은 테니스 공을 줍고, 현수막을 걸고 테니스 코트의 불이 꺼질 때까지 비너스, 세리나와 함께한다.
영화는 스포츠 드라마지만 스포츠 훈련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얼마나 기량이 늘어나는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철저히 가족에게 맞추었다. 리처드는 야간에 보안 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낮에는 딸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키고, 부인 오라신은 2교대로 근무하면서 낮에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한다. 온 가족이 비너스, 세리나의 테니스 선수로서 성공을 위해 각자 맡은 역할을 분담하면서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자녀들에 대해서는 완전 무관심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리처드의 생각은 우리는 가족이고 한 팀이다, 삶은 계획하고 준비해야 성공할 수 있다, 배우고 생각하고 그것을 열심히 실천하고 노력해야 이 빈민가에서 떠날 수 있고 삶을 바꿀 수 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비너스와 세리나는 학업 성적도 훌륭해야 한다. 에이 학점을 받아야 테니스 훈련을 할 수 있고 성적이 안 좋으면 테니스 훈련이 의미 없다. 그래서 첫째 딸 툰데도 전교 등수에 들고 학교 성적이 굉장히 훌륭하다. 리처드가 어릴 때 흑인으로서 인종 차별을 겪었고, 가난을 겪었기 때문에 딸들은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를 바라고 리처드는 딸들이 더 나은 환경으로 갈 수 있도록 아버지로서 보호자, 버팀목이 되고자 했다. 그러한 가족에 대한 사랑, 믿음을 기본으로, 비너스와 세리나의 실력과 성공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가족을 위해 철저히 희생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자매들도 비너스와 세리나의 성공을 믿고 온 가족이 똘똘 뭉쳐서 비너스와 세리나를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영화이기 때문에 각색이 들어간 것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자녀들이 비너스, 세리나에 대해 가족 전체의 생활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전혀 질투나 불만은 없었는지 현실적인 의문이 들긴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모습이 가족 간 갈등이 아니라 가족애와 그들의 시련과 역경의 극복, 성공담이기 때문에 그러한 지엽적인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한 점은, 성공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치밀하게 준비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이 당연히 아니다. 성공이 노력만으로 담보된다면 왜 성공이 어렵겠나. 그런 점에서 비너스 자매의 성공은 리처드의 철저한 계획과 뚝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비너스 자매의 타고난 능력(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하고 물질적으로 투자해도 재능이 없으면 안 되는 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으로는, 타고난 재능이 훌륭해도 그것을 알아봐 주고 싹을 틔울 때까지 잘 기르고, 올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어주지 않으면 재능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스러지는 경우도 현실적으로 많이 존재한다. 꽃을 피우기는커녕 평범한 삶이었다면 보통 일반인의 삶을 살았을 텐데,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더 불행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그래서 선천적 재능이 중요하냐, 후천적 노력과 가르침이 중요하냐 이런 진부한 논쟁이 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두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만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전자인 선천적 재능보다는 후자에 포커싱을 한 것이다(선천적 재능은 의심의 여지없이 있다고 전제를 해버리고 영화 속에서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리처드가 한결같은 믿음으로 당시 테니스 선수 시스템의 관행(당시엔 주니어 대회에서 성적을 올려서 그 성적을 기준으로 에이전트와 계약을 하고 에이전트의 지원을 받고 프로로 데뷔하는 게 수순이었음)에 맞지 않는 자신의 계획을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심리 상태를 추측케 하는 장면들이 몇 개 나온다.
리처드는 콤프턴 빈민가에서 흑인 청년들이 마약을 하고 가출, 폭력행위 등을 하고 다니다가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을 목격하기도 한다. 자신의 딸들은 그러한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섯 자녀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학업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비너스를 코치를 비롯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니어 연맹전에 참가시키지 않고 3년 동안 연습만 시키고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어린 선수들의 부모가 자녀들을 끊임없는 경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딸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경쟁 속에서 소모되고 심지어 주니어 대회에서의 적당한 성공으로 자만해져서 그 정도에서 멈추거나 하락할 것을 우려해서이다. 당시 상위 랭킹에 있던 어린 선수가 마약을 하고 뉴스 속 사건 보도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비너스를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으려는 장면이 나오는데, 리처드와 코치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리처드란 사람의 특징이 중요한데, 좋다 나쁘다를 일도양단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신념은 달리 말하면 독선이고, 경쟁 속에 소모되지 않게 아이들에게 압박을 주지 말라고 코치한테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는데 그러는 리처드는 학업 성적 에이를 받지 못하면 테니스를 못 치게 하겠다고 교육시킨다. 그것도 압박이라고 볼 수 있다. 운동을 하는데 성적까지 잘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심리적 압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리처드의 주장은 솔직히 모순적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에서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고, 그게 자식을 위한 진정한 마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들도 종종 인터뷰를 통해서 폭로하지만, 운동선수들은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하기 때문에 학업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고, 심지어 공부는 못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도 존재했었다. 그래서 출석 일수를 못 채우거나 결석하는 것도 당연시했었다. 하지만 이런 관행과 인식은 그 선수 당사자의 인생을 놓고 보면 엄청난 리스크다.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확률은 정확히 수치는 모르지만 공부로 성공하는 확률보다 더 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운동은 노력만으로는 안되고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부 확률보다 희박한 확률을 믿고 공부라는 세컨드 플랜은 아예 준비조차 해주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운동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그들은 공부 방향으로라도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백업을 전혀 해주지 않는 것이 관행인 것이고, 그것은 달리 말하면 어린 선수들의 인생을 놓고 하는 도박이다. 그런 면에서 리처드는 딸들의 재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아버지기 때문에 한 발 더 나아간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코치는 아무리 훌륭해도 연습은 미친 듯이 시킬지언정, 공부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
영화 기자 회견에 두 배우가 실제 참석했는데 비너스 윌리엄스가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 영화는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에 대해서도 잘 보여주는 점을 꼽았다. 영화나 티브이 속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지만 그 이상은 주지 못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어머니가 그저 옆에만 서 있던 사람이 아니고 우아하고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는 대답을 했다. 이 영화에서 오라신은 실제로 리처드에게 자녀 교육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고 리처드의 독선적 결정에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실제로도 2교대를 하면서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에 오라신도 리처드 못지않게 자녀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희생을 했고 그 믿음을 실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러닝타임이 144분 정도다. 굉장히 길다. 개인적으로 영화 러닝타임에 대해 예민하다. 영화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영화가 길수록 그만큼 시간이 굉장히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영화 관련 기사에서 읽었는데(아마 한국 영화의 영어 번역 작업을 하는 외국 번역가? 가 쓴 글로 기억함), 영화 러닝타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대작이라고 불리는 영화일수록 러닝타임이 긴 특징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 러닝타임이 길다고 해서 무조건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러닝타임이 짧아도(장편영화는 짧아도 최소한 90분은 넘는 것 같음) 그 시간 안에 영화의 기승전결을 모두 넣고 마무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잘 만든 영화 연출이고 능력이라는 취지였던 기사였다. 매우 매우 공감하면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도 2시간이 넘는데 그 긴 시간 내내 계속 집중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초반 1시간 정도는 지루하기도 하고, 이 영화를 이렇게까지 길게 늘여야 할 이유가 있었나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전형적인 아메리칸드림을 보여주고, 실제로 그 역할을 한 배우 윌 스미스도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한 배우이자 좋은 아버지고, 윌 스미스는 영화 제작자도 맡았다. 운동 서사가 아니라 가족애의 서사를 방향으로 잡은 영화의 방향이 영리하다고 느꼈다. 대중에게 더 잘 먹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컨셉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우리도 어버이날 영화로 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영화 홍보 측면에서도 범용성이 더 좋다. 영화 기자 회견에 참석한 윌 스미스가 주연 외에 제작자까지 맡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혹시 누가 이 영화를 망칠까 봐 그랬다(웃음). 나 정도의 커리어에 이르면 실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조심스러워진다. 책임감을 느끼는 거다. 이 영화는 앞으로 계속해서 윌리엄스 가족에게 회자될 영화이기에 무엇보다 그들의 인정을 받는 일이 중요했다. 인정을 받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충분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윌 스미스는 실제로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