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봉주 변호사 Jun 17. 2022

영화 <블루 재스민> 리뷰 (2)

영화 줄거리와 리뷰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 재스민의 회한


그렇다면 재스민은 왜 자폭했을까. 재스민은 결코 정의롭거나 진실된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다. 재스민은 굉장히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며, 현실을 직시하는 날카로움보다 망상에 잘 빠지고, 듣기 싫고 보기 싫은 것은 외면해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재스민이 할의 사업을 고발한 이유는, 정의를 위해 불법을 고발하려는 생각은 당연히 1도 없고, 순간적인 분노에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저지르게 된’ 행동에 불과했다. 재스민이 분노한 이유는 할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재스민만 몰랐지 할이 재스민과 할 두 사람 주변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재스민 외에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재스민한테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재스민의 친구는 그 이유를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할의 외도는) 내가 상관 할바 아니니까 말하지 않았다” 친구의 대답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친구로서 진실을 말해줘야 하는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친구의 표정과 말투를 보고 있노라면, 재스민의 삶과 인간관계에 진심이란 것이 있었던 것일까 의문이 든다. 그저 돈으로 유지된 인간관계는 아니었을까. 



재스민은 자신의 친구, 트레이너까지 할이 바람을 피운 상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재스민이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든 한방은 할이 보모로 일하는 10대 프랑스 여자와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서 할이 그 어린 여자와 사랑하는 관계라면서 재스민과 이혼을 암시한 행동 때문이다. 그 순간 재스민은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바로 전화기를 들고 FBI한테 할의 사기 행각을 신고해버린다. 영화 후반부에 재스민은,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후회를 했다고 말한다. 재스민이 (아마도) 인간적으로 가장 사랑하고 아꼈던 의붓아들 대니(할의 아들) 앞에서 한 말로, 재스민이 대니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그저 둘러댄 말이 아니라, 재스민은 진짜 그 즉시 후회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재스민의 회한이 있다. 



재스민의 성격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는데, 진저의 대사를 통해서다. 진저는 과거에 재스민의 화려한 뉴욕 저택에 남편 오기와 함께 방문을 하는데 재스민은 진저 부부가 5일이나 뉴욕에 머문다는 소식에 앞에서는 반기지만 뒤에서는 5일 동안이나 자신과 수준이 맞지 않은 진저 부부와 놀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끔찍해한다. 그래서 진저 부부한테 리무진과 기사를 붙여주고 둘이 뉴욕을 구경하라고 보내버리는데, 진저가 리무진을 타고 뉴욕을 구경하다가 형부 할이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날 밤 재스민이 주최한 파티에서 할과 키스한 여자가 재스민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진저는 재스민한테 우회적으로 할이 친구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재스민은 오히려 진저의 의심을 못난 사람의 행동으로 치부해버린다. 진저는 남편 오기한테 할의 외도 사실을 재스민한테 알려줬지만 재스민이 믿지 않는다면서, “재스민은 뭔가 인정하기 싫으면 외면해버린다”라고 말한다. 역시 동생이 재스민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진저의 이 말이 재스민의 모든 변명에 대한 반박이 된다. 



재스민은 할의 사업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하지만, 재스민은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불법이 있는지 그 정도까지는 몰랐을 수 있지만, 할이 불법적으로 돈을 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있었다. 하지만 재스민은 할이 벌어오는 돈이 있어야만 재스민의 허영을 채우는 화려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불법을 모른 척한 것일 뿐이다. 재스민이 외면하지 않고 진실을 알려면 알 수 있었다. 재스민 역시 과거를 회상하면서 ‘돈을 벌어도 정말 좀 많이 벌어와야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통해서 당시에도 할이 사기를 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단 할 수 있다. 



재스민이 아무리 이성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할이 바람을 피운 사실에 화가 나서 스스로 망하는 길을 자초했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재스민이 할의 사업이 사기라는 사실 외에 할의 외도 역시 이미 알고 있었거나 최소한 의심은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프랑스인 보모라는 새로운 외도 상대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재스민이 정신을 놓아버린 것은 아니고, 더 강력한 충격이 재스민을 강타한 것이다. 할의 변명처럼, 앞의 외도 상대들은 단지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면 재스민은 화려한 삶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실을 들고일어나서 분란을 만들기보단 외면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프랑스인 보모는 앞선 외도 상대들과 다르다. 할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면서 재스민과는 이혼할 것이라는 암시를 한 것이다. 즉 재스민이 추구하는 상류층 삶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것을 깨달은 재스민이 결국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아 버리고 순간적으로 자폭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재스민은 자폭 버튼을 누르자마자 후회했다. 



재스민이 할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할의 외도를 알면서도 돈 때문에 외면을 선택했다는 점이 재스민의 성격을 보여주고, 재스민이 정말 행복했을까 질문에 물음표를 가지면서 보게 만든다. 아마도 그럴수록 재스민은 더욱 허영스러워지고 강력한 물질을 추구하게 됐을 것이고, 그 끝에 있는 것은 공허함이다. 그래서 재스민은 과거 화려한 삶을 살 때도 신경안정제 같은 약을 복용했다고 생각한다.



회한이라는 감정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한탄이 주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과거를 후회하지만 후회의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자신에 대한 후회와 원망. 이게 회한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회한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회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 사람은 누구나 과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게 있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회한에만 빠져있는 건 건설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삶의 한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회한에 진하게 한 번 빠져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낀 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우먼 인 골드> 리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