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법정
이런 분에게.
개별 뮤지컬의 팬이나 뮤지컬을 좋아하여 감상의 여운을 복기하고 싶은 분
창작을 할 때 법적 지점에서 고민이 되는 분
뮤지컬을 보기 전에 관람 포인트가 궁금한 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 뮤지컬로, 원작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과 줄거리는 그대로 가져오지만 세부 사항은 달라진 게 많다. 관람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해서 175분이고 나는 사연으로 공연된 작품을 관람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줄거리는, 19세기에 나폴레옹 전쟁이 발발했던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데, 주요 등장인물은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의사 앙리 뒤프레다. 빅터는 불멸의 인간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고 앙리는 신체접합술의 귀재로서 두 사람은 전쟁 중에 만나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생명 창조의 실험에 뜻을 같이 하면서 친구가 된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빅터의 고향 제네바로 돌아온 빅터와 앙리는 프랑켄슈타인 성에서 생명 창조 실험을 계속하고 우여곡절 끝에 빅터는 죽은 자를 되살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빅터의 실험으로 생명을 얻은 피조물은 빅터를 위해 자발적으로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친구 앙리였다.
그래서 1막에서 앙리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2막에서는 괴물이 된 피조물의 역할을 맡아 열연하는데 이 점이 공연의 특징이자 관람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누가 봐도 범죄인 게 명백한 사건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처럼 작품상으로도 범죄라고 나오는 사건이 아닌, 빅터와 앙리의 관계를 중심으로 등장인물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빅터가 생명 창조 실험을 하기 위해선 시체가 필요한데 실험에 사용할 시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법률의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가능하고 당시에도 쉽지 않았을 것임은 짐작 가능하다. 결국 빅터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시체를 구하기로 마음먹고 장의사한테 돈을 줄 테니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시체를 부탁하는데 돈에 눈이 먼 장의사는 더 많은 돈을 받으려고 사람을 살해하고 만다. 물론 장의사는 당연히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장의사가 살해한 사람은 알고 보니 빅터의 지인이었고 장의사가 자신한테 시체를 팔려고 사람을 일부러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된 빅터는 결국 분노로 장의사를 돌로 쳐서 죽이고 만다. 빅터가 장의사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앙리는 빅터를 기절시킨 뒤 자신이 장의사를 죽였다고 거짓말로 수사기관에 자수하고 이로 인해 앙리가 빅터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앙리는 실험의 성공과 빅터와 우정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것인데 이로 인하여 수사기관(경찰, 검찰)은 결과적으로 진범(빅터)을 놓치게 되었다. 앙리가 자발적으로 누명을 쓴 행위가 문제 되는 이유는 앙리가 거짓말로 자수함으로써 진범을 은닉하거나 도피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과연 자발적으로 누명을 쓰는 일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작품처럼 살인죄를 뒤집어쓰는 극단적인 경우는 일단 차치하더라도 음주운전 같은 자동차 사고에서 다른 사람이 범인의 죄를 뒤집어쓰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음주운전을 하던 중 사고가 나자 운전자가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동승자한테 대신 운전했다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종종 접한다. 이 경우에 동승자의 자발성 여부도 중요하다.
음주운전 사고의 운전자 바꿔치기 외에도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불법 영업 단속을 받자 소위 ‘바지사장’이 진짜 사장으로부터 모종의 이익을 약속받고 자신이 실제 업주라고 수사기관에 허위로 진술하는 경우도 비슷한 예시에 해당한다. 바지사장의 허위 진술 때문에 수사기관은 실제 업주를 체포하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저지른 범죄를 뒤집어쓴 사람도 처벌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누명을 쓴 사람의 적극성에 따라 결정되지만 분명한 점은 죄를 뒤집어쓰는 행위 자체로도 처벌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주로 문제 되는 죄는 범인은닉∙도피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다.
은닉과 도피의 차이점은, 범인을 은닉함으로써 진범의 체포와 발견에 지장을 초래하면 범인은닉죄고 범인을 숨겨준 행위가 동시에 범인이 도망갈 수 있게 하면 범인도피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은닉과 도피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하고 구별의 실익이 크지 않다.
범인이 아닌 자가 자발적으로 누명을 쓰는 행위가 처벌되는지 여부는
판례에 따라 세 가지 경우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범인이 아닌 자가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에 관해 조사를 받으면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단순히 묵비하거나 허위 진술을 하는 경우이다. 이 때는 그것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기만하여 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범인의 발견 또는 체포를 곤란 내지 불가능하게 할 정도가 아닌 한 범인도피죄는 되지 않는다.
이것이 판례의 원칙적인 기준이다. 왜냐하면 수사기관은 조사받는 자가 뭐라고 진술하든 그에 상관없이 수사권을 가지고 진범을 찾아서 체포할 권리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범인이 아닌 자가 처벌의 대가로 진범으로부터 모종의 이익을 제공받기로 약속한 후 수사기관에서 단순히 자신이 범인이라고 진술하는 것에서 나아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 등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허위 진술을 하거나 허위 자료를 제시하여 그 결과 수사기관이 진범을 발견 또는 체포하는 것이 곤란 내지 불가능하게 될 정도에까지 이른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이다. 이 때는 범인은닉죄 또는 범인도피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만약 범인이 아닌 자의 적극적인 증거 조작으로 인해 수사기관이 나름대로 충실한 수사를 했더라도 증거가 허위임을 밝히지 못해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될 정도까지 이른 경우이다.
이 때는 수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으로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인 범인은닉∙도피죄보다 무겁게 처벌되는 죄이다.
작품으로 돌아와서 앙리가 자발적으로 빅터의 살인죄 누명을 쓴 것은 죄가 될까.
판단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앙리의 행동을 시간 순서로 살펴보면 앙리는 빅터가 저지른 살인 현장에 같이 있었고 자신이 거짓으로 자수하기 위하여 빅터를 기절까지 시켰으며 빅터가 감옥에 갇혀있는 앙리한테 왜 죄를 뒤집어쓰냐고 묻자 빅터는 살아서 생명 창조 실험을 꼭 성공시켜야 하므로 자신이 대신 죽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앙리의 행동은 단순히 수사기관의 질문에 묵비하거나 허위 진술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범(빅터)을 숨기고 자신이 대신하여 처벌받는 것을 의욕하면서 수사기관을 착오에 빠뜨려 결과적으로 수사기관이 진범을 발견 또는 체포하는 것이 곤란 내지 불가능하게 될 정도에 이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범인은닉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앙리가 증거 조작까지 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므로 앙리에게는 범인은닉죄만 성립하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빅터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행위로 인하여 친구 앙리가 대신 처벌받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피고인 앙리에 대한 재판에서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수한다. 하지만 빅터의 연인 줄리아의 아버지 슈테판이 빅터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착란을 겪고 있어서 빅터의 자신이 진범이라는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슈테판이 의도한 대로 빅터가 스스로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앙리가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슈테판은 빅터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슈테판은 사위가 될 빅터를 위하여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인데, 이렇게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다.
위증죄란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하면 성립하는 죄로, 여기서 말하는 허위의 진술이란 객관적 사실인지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증인의 기억에 반하는 사실이라면 허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증인이 증언을 하면서 그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비록 그 진술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도 증인의 기억에 반하지 않기 때문에 위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슈테판은 이와 반대의 경우이다.
슈테판은 앙리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선서를 한 후 빅터가 진범임을 알면서도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빅터의 진술은 정신착란에 의하여 신빙성이 없다고 증언하는데, 이것은 슈테판의 기억에 반하는 것이므로 허위의 진술이 되고 슈테판은 위증죄로 처벌받는다.
이처럼 다른 사람이 저지른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허위 자수가 현실에서도 왕왕 발생하는데, 이 경우에 자발적으로 누명을 쓰는 행위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 실험을 통해 피조물이 탄생하고, <지킬 앤 하이드>는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인격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실험의 객체가 될 피험자가 꼭 필요하지만 당시에는 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이후 주인공이 하게 되는 어떤 결심과 행동이 줄거리의 중요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공통점 때문인지 극의 분위기나 무대 장치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두 공연을 모두 관람하면 각 작품의 특성이 더 잘 보인다.
만약 <프랑켄슈타인>과 <지킬 앤 하이드> 중 하나만 관람했는데 작품이 취향 저격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면 다른 작품도 분명히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나머지 작품도 꼭 관람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