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법정
이런 분에게.
개별 뮤지컬의 팬이나 뮤지컬을 좋아하여 감상의 여운을 복기하고 싶은 분
창작을 할 때 법적 지점에서 고민이 되는 분
뮤지컬을 보기 전에 관람 포인트가 궁금한 분
뮤지컬 <마타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스파이로 활동한 유럽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서 외국 원작이 있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국내 창작 뮤지컬이다. 작품의 관람 시간은 삼연부터 인터미션 포함해서 180분이고 내가 관람한 작품도 삼연으로 공연된 작품이다.
‘마타하리’란 이름은 미녀 스파이의 대명사처럼 쓰일 정도로 유명하다. 그녀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독일과 프랑스의 이중간첩으로 활동을 했던 인물로 본명은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Margaretha Geertruida Zelle)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마타하리의 일생 중에서 그녀가 스파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를 그리고 있다. 마타하리가 스트립 댄서로서 유명해지자 그녀는 프랑스로부터 독일군의 정보를 빼올 것을 강요당한다. 한편 그녀는 프랑스 군인 아르망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한테 집착하는 라두 대령으로 인하여 아르망과 헤어지게 되고 그녀의 인생도 점차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마타하리는 스파이가 되기 전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한 클럽에서 춤을 추는 스트립 댄서로 유명했는데 클럽에 드나드는 프랑스의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면서 프랑스 군인 라두 대령의 강요로 스파이 활동을 시작한다. 마타하리처럼 대부분의 스파이는 자신이나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중대한 위협 때문에 타의적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의가 아닌 타의로 스파이가 됐어도 나중에 적국에서 정체가 탄로 나거나 심지어는 스파이 활동을 강요한 국가에서조차 기밀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서 스파이는 대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그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슬픈 운명인 것 같다.
마타하리 역시 그저 유명한 스트립 댄서에 불과한 일반인이었는데 프랑스군의 강요와 지시에 따라 독일군 정보를 빼오는 스파이 활동에 가담하게 된다.
작품에서 프랑스 군인 라두 대령이 마타하리에게 지시한 임무는 독일군 장교가 참석하는 파티에 참석해서 기밀이 담겨있는 펜을 받아오는 것이다. 라두 대령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전시 상황에서도 그녀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을 넘나들며 독일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힘을 써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라두 대령의 강요를 거역할 수 없었다.
마타하리는 독일군 장교가 참석한 파티에 참석하여 마침내 라두 대령이 요구한 펜을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그 펜 속에는 독일군 부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고 적군의 기밀을 알아낸 라두 대령의 프랑스 군대는 전쟁에서 유리한 상황을 점하게 된다.
마타하리는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에 불과하지만 라두 대령의 강요로
스파이 활동을 했다. 즉, 프랑스 군인의 강요로 프랑스와 전쟁 중에 있는
독일군의 정보를 빼온 민간인의 행위는 법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을까.
마타하리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네덜란드 태생이다. 그녀가 파리에서 스트립 댄서로 활동하면서 프랑스로 국적을 바꾸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국적을 변경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여전히 민간인이다. 따라서 그녀는 프랑스군을 위해 독일군의 정보를 입수하는 첩보 행위를 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없다.
스파이 활동의 법적 취급에 대해 스파이의 국적국과 적국은 입장이 다르다. 이익을 취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그 국가를 위한 일이므로 스파이 활동을 처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나 적국 입장에서는 자국민의 반역죄에 준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이익을 취하는 국가에서 민간인을 강요하여 스파이 활동을 하게 만든
라두 대령의 행위는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행위를 조금 더 일반적인 상황으로 바꿔서 살펴보면 타인을 강요하여 위법한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타인을 협박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사례도 논리는 동일하다.
형법은 강요죄를 처벌하는데 강요죄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면 성립하는 범죄로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법정형이 낮지 않다. 강요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이 범죄는 사람의 의사결정과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피강요자는 원하지 않는데도 폭행이나 협박 때문에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법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해야 한다.
마타하리의 국적이 무엇이든 그녀는 민간인이므로 스파이 활동을 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없는데, 라두 대령의 협박 때문에 스파이 활동을 강요당함으로써 의사결정과 활동의 자유를 침해당했다.
강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폭행은 사람의 의사결정 및 의사활동을 강제하는 일체의 유형력 행사를 의미하고 협박은 해악을 고지하여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라두 대령은 마타하리의 본명과 정체를 알고 있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공연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녀의 신변에 위협이 생길 것처럼 위협하면서 스파이 활동을 강요한다. 라두 대령의 행위는 당시 전시 상황에서 민간인에 불과한 마타하리한테 공포심을 일으키는 해악을 고지한 것으로 협박에 해당한다.
따라서 라두 대령은 마타하리에 대한 강요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이 경우에 피강요자인 마타하리는 강요죄의 피해자에 해당할 뿐 강요에 의해 저지른 행위로 처벌받지 않는 게 원칙이다.
라두 대령은 마타하리가 프랑스 군인 아르망한테 마음을 주고 사랑에 빠지자 이를 질투해서 아르망을 전쟁 위험 지역인 바텔로 보낸다. 아르망은 소위계급을 가진 군인으로 라두 대령의 부하에 해당한다. 즉, 군대에서 상사가 부하 군인한테 위험 지역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린 것인데 라두 대령의 명령을 위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라두 대령의 명령이 위법한 지 의문이 드는 이유는 라두 대령이 아르망 소위한테 가라고 명령한 바텔이 전쟁 위험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상황에서 위험 지역과 비위험 지역을 나누는 것 자체가 기준이 애매하고 상사가 부하 군인한테 특정 지역으로 가라고 명령하는 것이 특별히 부하 군인의 직무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등의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명령 자체로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아르망 소위는 군인이므로 전쟁 위험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한편 라두 대령의 명령이 직권남용은 아닌지 문제 될 수도 있는데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라두 대령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비록 라두 대령한테 질투심이라는 불순한 동기가 내심 있어도 대령으로서 소위의 근무 지역을 변경하는 명령이 직권남용이라고 보기 어렵고 아르망 소위 입장에서도 위험한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이 군인으로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라두 대령이 아르망 소위를 비텔 지역으로 보낸 명령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마타하리는 비텔로 간 아르망 소위가 독일군의 포로로 잡혀서 독일의 한 병원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독일에 입국하기 위해 자신의 본명인 마가레타 이름으로 발급받은 여권의 유효기간 날짜를 수정한다. 공연 목적으로 독일에 가는 것이 아닌 한 프랑스의 허가를 받을 수 없어서 마타하리 여권으로 독일에 입국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가레타가 마타하리의 본명에 해당해도 그녀가 마가레타 이름의 여권에 있는 유효기간 날짜를 수정하는 행위는 문서변조에 해당한다.
일상에서 위조와 변조는 구별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률상으로는 다른 개념으로, 위조가 변조보다 법정형이 더 무겁기 때문에 구별할 필요가 있다.
‘위조’란 권한 없이 타인의 명의를 모용해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을 말하고, ‘변조’란 권한 없이 이미 진정하게 성립된 타인 명의 문서 내용에 동일성을 해하지 않을 정도로 변경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위조는 타인의 문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고, 변조는 이미 만들어진 타인의 문서 내용 중 일부를 임의로 수정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타인 명의로 대학교 졸업장을 만들면 위조가 되지만 이미 존재하는 타인 명의 졸업장의 졸업 연도를 수정하면 변조가 된다.
마타하리가 마가레타 명의 여권의 날짜를 바꾼 행위는, 여권이 타인 명의가 아니기 때문에 문서 위조는 아니지만 변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여권은 원칙적으로 공문서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공문서란 우리나라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 작성한 문서를 말하고 외국의 공문서는 형법상 공문서로 보지 않는다.
마타하리는 네덜란드 태생이고 마가레타 명의 여권이 네덜란드 여권이라면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판단해야 한다.
현재 마타하리의 국적이 여전히 네덜란드라면 네덜란드 공문서인 마가레타 명의 여권을 변조한 것은 공문서변조죄가 되고, 만약 마타하리가 프랑스로 국적을 바꾸었다면 마가레타 여권을 변조한 것은 사문서변조죄가 된다.
공문서변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형이지만 사문서변조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공문서변조죄가 사문서변조죄보다 처벌이 훨씬 무겁다.
작품을 관람하기 전에 마타하리가 댄서로 유명했고 그녀의 외모와 직업적 특성이 스파이 활동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뮤지컬에서 보여 줄 마타하리의 댄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마타하리의 댄스에서 크게 감흥을 받거나 그녀의 존재감이 매우 강렬하다는 인상까지는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작품에 대한 평은 만족하는 의견이 많다. 마타하리라는 인물이나 그녀의 댄스 공연이 궁금하다면 마타하리 역할을 맡은 배우를 기준으로 공연을 선택하고 관람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