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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 길에 떨어진 노트를
주워도 될까

뮤지컬 법정

by 고봉주

이런 분에게.

개별 뮤지컬의 팬이나 뮤지컬을 좋아하여 감상의 여운을 복기하고 싶은 분

창작을 할 때 법적 지점에서 고민이 되는 분

뮤지컬을 보기 전에 관람 포인트가 궁금한 분


줄거리와 작품 소개


뮤지컬 <데스노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고 일본에서 먼저 뮤지컬로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작이 워낙 유명해서 만화책으로만 접한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삼연(앵콜)으로 진행된 공연을 봤고 관람 시간은 조금씩 변화가 있었는데 삼연의 관람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해서 170분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사신이 등장하는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사신들은 자신의 노트에 죽음을 앞둔 인간의 이름을 적고 사망하면 데려가는 일을 하는데, 사신 류크는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껴 일부러 자신의 노트를 인간 세계에 떨어뜨린다. 이름이 적힌 인간은 죽게 되는 사신의 노트를 길에서 주운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


노트의 비밀을 알게 된 야가미 라이토는 범죄자들의 이름을 노트에 적기 시작하고 그 결과 전 세계 범죄자들이 의문의 심장마비로 죽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를 반기면서 그를 ‘키라’라고 부르고 신봉한다. 그러나 범죄자라고 해서 공권력에 의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범죄에 해당하고 키라를 잡기 위해 천재 수사관 엘이 나선다. 엘은 키라의 정체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이제 키라가 된 야가미 라이토와 엘의 치열한 두뇌 게임이 시작된다.


원작만화의 내용이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약 170분 동안 공연되는 뮤지컬은 당연히 핵심 등장인물과 줄거리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은 노트의 비밀로 시작해서 노트를 주운 야가미 라이토의 활약, 엘의 등장, 키라와 엘의 대결 그리고 두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결말로 진행되는데, 원작을 몰라도 뮤지컬만으로 작품의 기승전결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사신이 버린 노트


라이토는 우연히 사신 류크의 노트를 길에서 줍는데 노트의 비밀을 알게 된 라이토는 흉악범들의 이름을 노트에 적어서 죽게 만든다. 비록 그들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여도 라이토의 행위가 범죄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므로 이 점은 따로 논의하지 않고 길에 떨어진 사신의 노트를 가져간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자.


사신 류크는 자신의 소유물인 데스노트를 인간 세계에 일부러 떨어뜨리는데,
라이토가 우연히 그 데스노트를 주워서 가져가면
원래 소유자 류크와의 사이에서 어떤 법률관계가 생길까.


이것은 류크가 데스노트를 떨어뜨린(버린) 의도에 따라 법률관계가 달라진다.


만약 류크가 데스노트를 분실한 것이라면 류크는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하려는 의사가 없었다고 봐야 하고 이 경우에 라이토가 류크가 분실한 데스노트를 임의로 가져가는 행위는 점유이탈물횡령죄가 되어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뮤지컬처럼 류크가 일부러 데스노트를 길에 떨어뜨리고 누구든 줍는 자가 그 노트를 이용하게 할 의도였다면 류크와 노트를 주운 자 사이의 법률관계는 달라진다.


여기서도 류크의 의도를 두 가지 경우로 다시 나눌 수 있다.


먼저 류크가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고 잠시 빌려주려고 의도한 경우이다. 누구든 데스노트를 줍는 자로 하여금 일정 기간 동안 노트를 사용하게 할 생각이었다면 류크와 노트를 주운 자 사이에는 사용대차 법률관계가 발생한다.


‘사용대차’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무상으로 사용·수익 하게 하기 위해 목적물을 인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은 물건을 사용·수익한 후 그 물건을 반환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을 말한다. 한마디로, 무상으로 물건을 빌려주는 것을 사용대차라고 보면 되는데 빌려주는 것이므로 그 물건의 소유권은 여전히 원래 소유자한테 있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비교되는 개념으로 ‘소비대차’가 있다. 이것은 당사자 일방이 금전 등의 소유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하고 상대방이 금전 등을 반환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서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관계가 소비대차이다.


따라서 만약 류크한테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경우라면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길에서 발견하고 가져가도 류크와 라이토 간 법률관계는 사용대차에 해당하여 류크가 여전히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보유한다.


두 번째는 류크가 데스노트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그것을 줍는 사람한테 소유권을 이전하겠다는 의사를 가진 경우인데 이것은 증여에 해당한다.


‘증여’는 당사자 일방이 무상으로 재산을 상대방에게 수여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하는 계약을 말한다. 증여의 목적물은 돈이나 물건 등 모두 가능하고 특히 소유권이 상대방(수증자)에게 이전되는 점이 소비대차와 같지만 상대방이 증여자한테 그 목적물을 나중에 다시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소비대차와 다르다(돈을 빌려주면 갚아야 하지만 돈을 증여하면 갚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노트를 떨어뜨린 류크의 의사가 누구든 데스노트를 주운 사람한테 소유권을 이전할 생각이었다면 그것은 증여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류크의 의사에 따라 라이토와 사이에 사용대차나 증여의 법률관계가 발생한다. 그리고 류크는 데스노트를 분실한 것이 아니고 일부러 떨어뜨렸기 때문에 점유이탈물횡령죄는 처음부터 문제 되지 않는다.


노트 증여 또는 사용대차


그런데 여기서 사용대차나 증여는 그 법적성질이 계약인데, 류크가 데스노트를 누가 가질지도 모르는데 노트를 줍는 사람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계약을 법적으로 분석하면 청약자의 청약과 승낙자의 승낙이 합치해서 성립하는데 청약은 불특정 다수인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격표를 붙인 상품을 진열하거나 자동판매기를 설치하는 것은, 누가 손님이 될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청약이다.


류크도 누가 노트를 주울지 모르지만 누구든 줍는 사람한테 노트를 빌려주거나 증여한다는 의사로 길에 떨어뜨려 아무나 발견하면 가져갈 수 있게 놓아둔 것이고 이것은 청약에 해당한다. 위 예에 빗대어 설명하면 류크가 자동판매기에 데스노트를 무상으로 가져갈 수 있게 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상대방이 특정되지 않았어도 계약은 성립할 수 있고 류크의 의사에 따라 라이토와 사이에 사용대차 또는 증여계약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범죄수사에 사형수를 이용한 공권력


천재 수사관 엘은 라이토를 잡기 위해 사형집행이 예정된 사형수를 엘로 위장해서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그 방송을 본 라이토는 사형수를 엘로 오인해서 방송에 나온 사형수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어 사형수를 죽인다.


비록 당일에 사형집행이 예정된 사형수라고 해도
범죄수사에 이용하는 공권력의 행사가 적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사형수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


우리나라는 형의 종류와 집행방법에 관하여 형법에서 열거하고 있다. 따라서 법에서 정하지 않은 형을 과하거나 법에 있는 형벌이어도 법에서 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집행을 하면 위법하다.


형법에서 정하고 있는 형의 종류에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가 있고 이 외에 형벌의 종류를 임의로 만들어서 부과하는 것은 금지된다. 예를 들어, 태형은 법에서 정한 형벌이 아니므로 태형을 집행하면 그 자체로 위법하다.


형벌의 집행방법에 대해서도 사형은 교정시설 안에서 교수형으로 집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형집행을 교수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임의로 집행하면 위법하고 이에 대해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작품에 대입해서 살펴보면, 방송에 엘로 위장되어 나온 사형수는 비록 방송 당일에 사형집행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형법에서 정한 교수형이 아니라 법에서 정하지 않은 방식(라이토가 죽는 방법을 기재하지 않았으므로 심장마비 사인)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 집행도 교도소 내에서 집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예정된 사형집행 시각보다 이른 시각에 방송을 했다면 논리적으로 사형수는 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빨리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어느 모로 보나 적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할 수 없다.


국가배상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말한다.


엘과 경찰이 공권력을 이용해서 사형수로 하여금 엘로 위장하여 방송에 나가게 만든 것은, 그 사형수가 키라(라이토)에 의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한 행동이다. 따라서 수사라는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적어도 과실은 인정된다)로 법을 위반했고 그 결과 그 사형수한테 손해를 입혔으므로 사망한 사형수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리뷰와 관람 포인트


나는 원작인 일본 만화로 이 작품을 먼저 접했지만 내용이 방대해서 완결 편까지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뮤지컬을 통해 작품의 결말을 알게 됐는데 예상과 다르지만 한편으론 납득할만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 후속 편 없이 완전 종결을 전제한다면 그 이상의 깔끔한 결말은 생각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데스노트의 세계관을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어떻게 연출하고 구현해 낼지, 과연 작품 속 매력의 큰 축을 담당하는 사신은 얼마나 잘 묘사되고 표현될지 궁금했는데 원작을 재미있게 본 사람으로서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밀도 있게 작품을 감상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또 다른 사신 렘의 매력은 의외의 발견이다. 원작의 팬은 물론이고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뮤지컬을 즐기는데 전혀 무리가 없고 잘 만든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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