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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앤 하이드> 선악 대결의
최종 법적 책임

뮤지컬 법정

by 고봉주

이런 분에게.

개별 뮤지컬의 팬이나 뮤지컬을 좋아하여 감상의 여운을 복기하고 싶은 분

창작을 할 때 법적 지점에서 고민이 되는 분

뮤지컬을 보기 전에 관람 포인트가 궁금한 분


줄거리와 작품 소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원작이고 이를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작곡한 뮤지컬이다. 하지만 뮤지컬로 만든 작품은 원작과는 상당 부분 다르다.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선한 본성의 지킬 박사와 악한 본성의 하이드 사이의 대결이라는 소재 외에 내용이나 등장인물이 원작과 꽤 다르다. 관람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해서 약 170분인 대표적인 대극장 뮤지컬이고 나는 팔연으로 공연된 작품을 관람했다.


작품의 줄거리는, 헨리 지킬 박사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스스로 피험자가 되고 그 결과 지킬의 악한 본성만 가지고 있는 하이드가 탄생하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하이드는 처음에는 사람을 폭행하며 악한 본성을 분출했으나 점차 그 폭력성이 심해지면서 급기야 사람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는 지킬이 실험 약물을 직접 복용해서 만들어낸 자아이므로 두 개의 자아는 육체적으로 한 사람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내면이 분열되어 두 사람처럼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이드의 힘은 더 강력해지고 무자비한 악행을 저지르지만 지킬도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그들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작품의 주된 법적쟁점은, 지킬이 다른 인격의 하이드로 변신해서 저지른 여러 사건에 대해 육체적으로는 한 사람인 지킬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 여부다.




하이드가 저지른 살인은 지킬 책임?


사람은 죄를 지으면 형법상 형사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형법상 심신장애에 해당하면 형의 감면을 받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신장애’는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의 정도에 따라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으로 구분된다. ‘심신상실’은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상실된 경우이고, ‘심신미약’은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상실까지는 아니고 부족한 정도를 말한다. 심신상실자의 범죄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심신미약자의 범죄행위는 형을 감경 할 수 있다.


누구나 일시적으로 심신장애자가 될 수 있는데, 이를 테면 만취한 상태, 약물을 주입한 상태(예: 마약 등), 수면 상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래서 범죄가 발생하면 수많은 피의자(또는 피고인)가 술에 취해서 기억이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킬도 같은 변명을 하는 게 가능할까.


누가 봐도 지킬과 하이드는 같은 사람인데, 하이드가 저지른 다수의 살인 행위는 지킬이 약을 먹고 심신장애 상태에서 저지른 것이라는 변론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다.


심신장애 인정 여부에 대한 판례의 원칙적인 입장은 부정적이다. 실제 사건에서 살인죄를 포함한 다수의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경계성 인격장애를 주장했는데 그에 대한 판례의 판단을 그대로 살펴보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된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성격장애의 일종으로, 설령 피고인에게 충동 조절 관련하여 다소간의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은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고, 피고인의 위 인격장애가 매우 심각하여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만한 사정이 없어 보이는 점, 그 밖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동기, 범행 방법 및 태양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지킬의 악한 본성만 발현된 하이드는 일종의 성격장애라고 볼 수 있다. 판례에 의하면 성격장애가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한 정도가 아니라면 성격장애는 심신장애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이드는 성격장애가 문제 되는 것이고, 예를 들어 범행 당시에 자신의 몸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통제 불능 상태였던 것은 아니므로 명정상태나 다른 심신장애사유가 문제 되는 사안은 아니다.


그렇다면 법률 규정에 따라 판례가 성격장애를 원래의 의미의 정신병으로 인정해서 처벌하지 않은 사례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데, 매우 드물지만 형사책임을 부인한 경우가 있다.


피고인이 정신분열증으로 인하여 피해자를 ‘사탄’이라 생각하고 그를 죽여야만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고 살해한 실제 사건에서 피고인이 범행 당시 심신상실상태였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고 피고인의 심신상실상태를 인정해서 형사책임을 부인한 판례는 거의 없다.


하이드의 경우를 살펴보면 범죄를 저지를 때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결과(사람의 사망)를 가져오는지 명확하게 인식했다는 점에서도 심신상실상태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지킬은 하이드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전혀 다른 자아가 저지른 행위라는 변론으로 형사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병원 이사회의 ‘증거불충분’


작품 초반에 지킬이 병원 이사회에 참석해서 인간의 본성을 실험할 수 있도록 승인해 달라고 요청하자, 반대표를 던졌던 이사 중 한 명이 “법률용어론 증거불충분”이라고 말한다(팔연으로 공연된 작품 기준이고, 공연마다 대사는 다를 수 있다). 갑자기 이사회에서 형사 법률용어가 왜 나올까?


‘증거불충분’은 검사가 피의자의 혐의사실에 관하여 수사를 한 후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할 때 그 근거로서 사용하는 법률용어로, 피의자의 혐의를 증명할 객관적인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병원 이사회가 지킬의 실험 요청을 반대하면서 위 법률용어를 언급한 것이 맥락상 뜬금없지만, 지킬의 실험 승인 요청을 이사회가 찬성하기엔 그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의미로 선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존의 칼에 찔려 사망한 지킬: 살인죄와 자살죄


결국 지킬은 자신이 만들어 낸 다른 자아인 하이드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고 존이 하이드를 향해 칼을 겨누었을 때 지킬로서 의식을 가진 순간 스스로 그 칼에 찔려 죽음을 택한다. 육체적으로 지킬이면서 동시에 하이드인 사람의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하여 존을 과연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먼저 존과 지킬의 각 행위를 존의 살인 또는 지킬의 자살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사건의 전후 사정을 보면 존이 칼을 뽑아 들었고 그 칼에 지킬이 달려들어서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했지만, 존이 적극적으로 찌른 것이 아니므로 죽음 자체는 지킬의 자살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 경우에도 지킬의 자살 수단이 존이 뽑은 칼이기 때문에 존한테 지킬의 자살에 대한 교사 또는 방조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즉, 중한 죄(살인)를 의도했는데 경한 죄(자살관여죄: 자살교사죄, 자살방조죄)가 발생한 경우에 중한 죄의 고의를 경한 죄의 고의로 인정(전용)할 수 있는지가 쟁점인 것이다.


학설에 따라 결론이 조금씩 다르나, 다수의 학설과 판례의 일반적 태도에 의하면 살인죄의 고의는 자살관여죄의 고의로 인정될 수 있다. 어느 학설에 의하더라도 살인죄 고의에 대한 법적 평가는 피하기 어려워 최소한 살인미수죄의 죄책은 논하게 된다.


그런데 존이 칼을 뽑아 죽이려고 했던 대상은 하이드이고 지킬은 아니었기에, 지킬에 대한 고의로 볼 수 있는지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만 하이드와 지킬이 육체적으로 한 사람이기 때문에 존의 (고의) 대상에 대한 착오는 문제 되지 않고, 존은 지킬이면서 하이드인 ‘사람’의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해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


마지막으로 존한테 지킬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더라도 존이 칼을 뽑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존재하는지, 즉 법률적으로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하이드가 엠마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존이 하이드를 향해 칼을 겨눈 것이므로, 설령 존한테 하이드를 향한 살인의 고의 (이것은 지킬에 대한 고의로 인정된다)가 인정되더라도 엠마에 대한 정당방위로 볼 여지가 있다.


결과적으로 존이 뽑은 칼에 지킬이 달려들어서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했지만, 존이 적극적으로 찌른 것이 아니므로 지킬의 자살로 보는 게 타당하고, 존이 칼을 뽑아 든 행위는 엠마에 대한 정당방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어, 지킬의 사망에 대해 존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리뷰와 관람 포인트


개인적으로 지킬이 죽음을 선택한 결말(비록 바꿀 수 없는 결말임을 알더라도)이 아쉬웠고, ‘신성록 배우’가 연기한 지킬을 관람했는데 배우의 연기가 무척 인상 깊어서 그 죽음이 더 안타까웠다.


이 작품은 원작과 상당히 다르지만 뮤지컬 자체로도 충분히 완성도가 높다. 공연이 팔연을 넘어 계속 이어지는 작품은 재미가 확실하게 보장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공연 중간에 관객들이 놀라는 지점이 몇 군데 있는데 작품 정보를 미리 숙지하고 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공연의 모든 부분을 놓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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