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법정
이런 분에게.
개별 뮤지컬의 팬이나 뮤지컬을 좋아하여 감상의 여운을 복기하고 싶은 분
창작을 할 때 법적 지점에서 고민이 되는 분
뮤지컬을 보기 전에 관람 포인트가 궁금한 분
뮤지컬 <레베카>는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의 소설 <레베카>가 원작인데, 이 작품이 유명해진 이유는 원작을 영화로 제작한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레베카> 덕분이다. 소설 원작과 영화, 뮤지컬은 각 장르의 특징 때문에 조금씩 차이가 있고, 뮤지컬은 원작 소설보다 영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관람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해서 175분이고, 나는 칠연으로 공연된 작품을 관람했다.
<레베카>는 과거를 회상하는 작중 화자인 ‘나’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나’는 미국인 반 호퍼 부인한테 비서 겸 하인 비슷한 역할로 고용되어 부인의 말벗도 해주면서 시중을 들며 몬테 카를로를 여행 중이다. 호퍼 부인은 돈은 많지만 교양이 부족한 중년 여인으로 묘사되므로 둘의 관계가 어떨지 짐작된다.
‘나’는 몬테 카를로에서 영국의 유명한 귀족인 막심 드 윈터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별의 아픔이 있는 막심과 결혼하여 이를 못마땅해하는 호퍼 부인을 뒤로한 채 막심의 저택인 영국의 맨덜리로 향한다.
그러나 ‘나’는 맨덜리 저택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막심의 전부인 레베카의 흔적과 그녀를 어렸을 때부터 보살피며 함께 맨덜리에 온 집사 댄버스 부인의 알 수 없는 적대감 때문에 점점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던 와중에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고 막심과 레베카 사이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나’는 막심을 위해 어떤 결심을 한다.
줄거리를 보면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 보인다. 바로 작품의 제목이자 인물 간 갈등의 핵심인 레베카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서만 회자될 뿐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표면상으로는 ‘나’가 화자이면서 주인공이지만 뮤지컬을 보고 나면 진짜 주인공은 레베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나’가 주인공인 영화와 다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주요 등장인물 세 명이 공교롭게도 모두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 행동이 비록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더라도 범죄가 된다는 점은 변함없는데, 인물별로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막심은 레베카와 결혼한 후 그녀의 이중적인 사생활 때문에 그녀를 증오하게 되지만 가문의 명예 때문에 이혼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애증이 계속 쌓여가던 어느 날 막심은 런던에 다녀온 레베카로부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는 막심과 자신의 밀회 장소인 보트 보관소에서 만나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심지어 그녀는 맨덜리의 후계자가 될 그 아이를 다른 사람들은 막심의 자녀로 알 테니 멍청한 아빠 연기를 계속하라고 그를 조롱한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막심은 소파에 누워 있는 레베카를 밀쳐 버리고, 그녀는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혀 죽게 된다.
레베카의 사망에 대해 막심은 살인죄의 책임이 있을까.
살인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어야 하지만 고의는 꼭 확정적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주변에 각종 공구가 많은 장소에서 사람을 밀치는 행위를 살펴보자.
그런 장소에서 사람을 밀치면 넘어질 수 있고, 넘어지면서 자칫 위험한 물건에 머리를 부딪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결과 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 사람을 밀쳤고, 예상대로 밀쳐진 상대방이 어딘가에 부딪혀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다면 이 경우 고의가 인정된다. 한마디로,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고 사망을 용인하거나 감수하는 의사는 살인의 고의로 취급되는 것이다.
반면, 죽을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고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밀치기만 했는데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고의로 인정될까.
일단 사람을 밀치는 행위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에 해당한다. 폭행의 고의를 가지고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한 것이므로 폭행치사죄가 되고 이러한 범죄를 ‘결과적가중범’이라고 한다. 가해자가 폭행의 고의를 가지고 있어 단순 과실범인 과실치사죄가 아니라 폭행치사죄 또는 상해치사죄가 된다.
폭행과 상해는 사람의 신체에 발생한 상처가 중대한 정도에 따라 구분하고, 상해가 폭행보다 무거운 범죄로 상해죄가 되려면 폭행이 아닌 상해의 고의가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둘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폭행이나 상해로 인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면 결과적가중범인 폭행치사죄 또는 상해치사죄로 처벌받는데, 상해가 폭행보다 무거운 범죄지만 피해자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두 결과적가중범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동일하다.
막심이 레베카를 밀쳤을 때 죽이겠다는 확정적 고의는 없었다. 하지만 임신한(당시 레베카가 임신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막심을 조롱했고 이것 때문에 화가 나서 그녀를 밀쳤으므로, 막심은 레베카가 임신 상태라고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레베카를 강하게 밀치면 그녀가 넘어질 수 있고, 넘어지면서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의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용인했다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막심한테 미필적 고의가 있다는 것은 검사한테 증명책임이 있는데 내심의 의사를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검사가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막심은 살인죄가 아닌 폭행치사죄로 처벌받는다. 폭행치사죄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고,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막심의 변호인은 두 사람이 다투다가 레베카가 막심을 조롱하자 막심이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레베카를 밀친 것에 불과하고, 설마 레베카가 죽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막심한테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열심히 다투어야 한다.
레베카에 대해 막심이 저지른 다른 범죄도 있다.
막심은 사망한 레베카의 시신을 보트에 태우고 바다에 수장시켜 버리는데, 시체를 수장시키는 행위는 시체은닉죄가 된다. ‘은닉’은 시체 등의 발견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심히 곤란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매몰, 침몰 등이 있다.
따라서 막심이 레베카 시신을 땅에 묻거나 바다에 수장시키는 행위는 전형적인 시체은닉죄로서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레베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레베카의 위선과 거짓말로 인하여 막심은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궁극적인 가해자는 레베카가 아니라 막심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레베카는 막심을 속이고 결혼한 것인데,
감정적으로 더 괘씸하게 느낄 수 있는 이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레베카는 막심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결혼에 성공하자 막심한테 계약을 제안하는데, 그 내용은 레베카가 막심의 아내 역할은 제대로 할 테니 자신이 어떤 생활을 하든 (즉, 레베카는 ‘이중생활’을 하겠다고 대놓고 요구했다)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레베카의 이중생활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결국 문제 되는 행동은 레베카의 남자 문제다.
레베카는 막심하고 결혼했어도 계속 다른 남자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연애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법률상 배우자인 막심에 대해 불법행위가 된다. 그러나 간통죄가 폐지되었으므로 범죄는 아니라서 형사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 후 부정행위를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고 결혼을 했다면 이것은 법적으로 문제 된다. 혼인 후 부정행위를 하겠다는 의도는 혼인 전에 상대방에게 알려야 할 중요한 사항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혼할 상대방이 혼인 후에도 자유로운 연애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행하겠다는 의사는 혼인 여부를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심은 레베카가 결혼 후에도 자유로운 연애 관계를 유지하면서 부정행위를 하겠다는 것을 속이고 자신과 결혼했기 때문에, 이것을 이유로 기망에 의한 혼인취소를 주장할 여지가 있다. 이때 혼인취소청구는 속았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해야 하는데 기간이 매우 짧아서 기간을 준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혼인취소청구는 실효성이 높은 방법이라고 보긴 어렵다.
결국 막심은 레베카를 상대로 재판상 이혼청구를 하고 부정행위에 대한 위자료청구 소송도 할 수 있지만 막심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 것을 우려해서 레베카와 이혼을 하지 않는 한 위자료청구는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결국 막심과 레베카의 비밀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 계기는 레베카의 시신이 있는 보트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막심과 레베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나’는 막심한테 법정에서 레베카는 자살한 것이라고 진술하도록 부추긴다.
‘나’는 막심이 레베카를 밀치는 바람에 레베카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레베카가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심이 레베카에 대한 살인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자 막심한테 레베카는 보트를 타고 나가서 자살한 것이라고 진술하도록 시킨다.
레베카의 사망에 대해 막심한테 어떤 범죄가 인정되든 막심이 무죄는 아니다. 따라서 레베카는 범죄의 피해자임이 명백하고 막심이 그 시체를 보트에 태워서 수장시킨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즉, 레베카는 살아서 직접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간 것이 아니라 죽은 후 타인에 의해 시신이 보트로 옮겨진 것이다.
그런데 레베카가 보트를 타기 전에 살아 있었고 스스로 보트를 타고 나가서 자살한 것이라고 진술하면, 이것은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명백한 허위에 해당한다. 위증죄는 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을 하면 성립하는 범죄이다.
막심은 레베카가 스스로 보트를 타고 나가서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막심이 ‘나’가 시키는 대로 진술을 하면 막심의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이 되므로 막심이 위증죄, ‘나’는 위증교사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문제 된다.
결론부터 살펴보면, 위증죄는 선서를 한 증인이 저지르는 범죄인데, 피고인은 증인이 아니기 때문에 피고인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거짓말을 해도 위증죄는 아니다. 범인은 대개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부인하는데 범죄를 부인했다고 해서 이것을 전부 위증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심은 레베카에 대한 사건에서 증인이 아니라 피고인이므로 막심한테 위증죄가 성립하지 않는 한, 비록 ‘나’가 막심한테 거짓 진술을 하도록 시켰어도 ‘나’한테 위증교사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나’가 막심이 아닌 막심의 친구 등 제3자한테 막심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허위 진술을 하도록 시켰다면, 이 경우에는 친구 등 제3자는 증인이므로 그들한테 위증죄가 성립하고, 이를 부추긴 ‘나’는 위증교사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 외에 사소하지만 ‘나’가 직접 레베카를 향해 저지른 범죄도 있다.
원칙적으로 형사는 고의범만 처벌하므로 재물손괴죄는 고의로 손괴한 경우만 처벌하고, 과실손괴는 처벌하지 않는다.
‘나’는 맨덜리 저택에 도착한 후 초반에 레베카의 소유였던 큐피드상을 실수로 떨어뜨려서 깨뜨리는데 이 때는 실수였기 때문에 재물손괴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가 레베카의 비밀을 알게 된 후 작정하고 큐피드상을 깨뜨린 행위는 고의적 손괴이므로 범죄이다.
‘나’는 큐피드상을 고의로 손괴했고, 그 큐피드상은 레베카가 사망하면서 법률상 배우자인 막심이 상속받아 현재 막심의 소유물인데 나와 막심은 법률상 부부이다. 하지만 손괴죄에는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법률상 배우자인 막심 소유의 재물을 손괴하면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아 손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나는 <레베카>를 영화로 먼저 접했다. 히치콕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뒤에 나온 영화로 봤는데 영화상으로는 ‘나’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나’한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나’가 레베카보다 중요한 주인공임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뮤지컬은 레베카가 ‘나’에 못지않은 비중임을 전제로 하는데 레베카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댄버스 부인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이것이 영화와 가장 다른 특징이다. 이 점은 댄버스 부인과 ‘나’의 역할에 캐스팅된 뮤지컬 배우들을 봐도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특히 댄버스 부인의 뮤지컬 넘버를 놓치지 않고 잘 듣는 것이 뮤지컬 <레베카>를 밀도 있게 관람하는 방법이다. 작품 후반에 등장하는 맨덜리 저택의 화재 장면도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화려한 무대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