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재래시장 경험기 1
* 2025년 11월 말 기준
그린바자르(Green Bazaar)는 카자흐스탄의 예전 수도이자 대표적 도시인 알마티에 있는 전통 재래시장인데,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굉장히 많이 이용하는 시장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재래시장을 꼭 방문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작정을 했고, 이것저것 산 후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말이 통하는 한국에서도 온오프라인 시장이나 마트에서 한 번 산 물건을 다시 교환하려면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는데,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돈거래가 끝난 상품을 교환하는 것은 진짜 스트레스를 받는 경험이었다.
꼭 알마티의 그린바자르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지역의 시장에 가든 물건을 살 때는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린바자르의 위치는 알마티 시내의 주요 여행지인 젠코프 성당, 판필로프 공원과 가깝고 걸어서 갈 수 있다.
시장의 어느 방향 입구로 들어가냐에 따라서 조금 차이가 있지만, 보통 입구 쪽에 견과류나 기념품으로 가져갈만한 물건들을 팔고, 내부로 더 들어가면 고기, 과일, 각종 요거트나 치즈, 반찬 등을 파는 섹션이 나온다. 과일도 생과일부터 건과일까지 다양하고, 고기는 소, 양, 닭고기가 주로 있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말고기도 팔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라서 돼지 고기는 별도 코너에서 구매할 수 있고, 카자흐스탄 글자를 읽지 못해도 각 판매처마다 동물 그림을 그려놔서 어떤 종류의 고기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시장을 갈 때마다 견과류는 꼭 구경하고 적당한 가격이면 샀는데, 이번에 간 중앙아시아 3국은 어디를 가든 견과류 품질이 상당히 좋았다. 크기가 클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호두같은 경우에는 공산품과 달리 형태가 그대로 보존된 고퀄러티 상품도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우리가 산 문제의 상품은 마카다미아와 캐슈넛이다.
마카다미아는 껍질이 딱딱하고 두꺼운 편인데, 껍질이 있는 채로 진열해 놓으면 상품의 품질 확인이 어려우니까 껍질을 전부 깐 상태로 팔거나, 껍질을 절반만 깐 상태로 진열되어 있었다. 견과류 가게 앞에서 가격도 확인할 겸 구경을 하고 있으면 사장님이 계속 견과류를 하나씩 주면서 먹어보게 만들고, 결국 공짜로 시식한 게 미안해서라도 그 가게에서 뭐라도 사게 만드는데, 당연히 그들의 영업 전략이다. 적절히 시식하면서 사고 싶지 않으면 강단 있게 안 사고 빠져나와도 되지만 그건 정말 성격과 경험의 영역인 것 같다.
특히 우리가 구경을 할 때 특정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과 계속 마주쳤는데, 유독 그날만 그랬는지 그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은, 커플이 됐든 친구끼리 온 팀이든 가게 사장님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계속 시식하면서도 싹 입 닦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그렇더라도 아무나 그들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사장님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국적이 나오기 마련인데 국가 이미지를 우려해서라도 입만 닦고 안 사고 사라지는 것은 보기에 좋진 않았다.
우리는 견과류를 살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꼭 마카다미아는 아니었는데, 사장님이 주는 대로 마카다미아 시식을 하다 보니 정말 신선하고 고소한 게 맛있었다. 그래서 얼결에 마카다미아를 사게 됐고, 비싼 견과류답게 역시 무게 대비 가격이 비쌌다. 모든 견과류는 100g당 얼마라고 기본 가격을 제시한 후 흥정을 하는 단계를 거친다. 만약 흥정 없이 샀다면 거의 무조건 비싸게 샀다고 생각하면 맞다.
우리는 신선한 제품을 사려고 껍질이 있는 마카다미아를 골랐는데, 껍질이 절반만 벗겨진 상품이니까 남아있는 껍질 무게만큼은 손해지만 신선함을 선택한 대가로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상술이 숨어 있었다.
분명히 앞에 진열된 마카다미아는 껍질이 절반만 남은 것들이고 우리가 시식한 것도 사장님이 그것을 집어서 껍질을 까줬는데, 마카다미아를 사려고 하니까 사장님이 자신이 앉아 있는 안쪽에서 마카다미아를 담아주는 것이다. 문제는 안쪽에서 담은 마카다미아는 껍질이 하나도 안까진 상태의 상품이라는 점이었다. 당연히 껍질 무게만큼 양이 적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장님의 노림수라고 보였다. 게다가 껍질에 쌓여 있으니까 상품의 상태도 확인이 안 되고, 뭐랄까, 진열된 마카다미아는 사장님이 퍼 담을 때 어떤 게 들어가는지 내 눈으로 확인이 되는데, 저 안쪽에서 퍼 담으니까 상품의 상태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땅콩처럼 껍질이 있어도 무게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으면 몰라도, 마카다미아 껍질은 그 자체로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낸 돈의 일부는 껍질을 산 셈이다.
물건을 사는 당시에는 너무 순식간에 휙 담아서 무게를 확인시켜 주고, 자, 무게 맞지? 이러면서 돈거래가 끝나버리니까 미처 제지할 틈도 없이 정신을 차려보니 돈은 지불된 상태고 우리 손에는 껍질에 쌓여서 생각보다 작은 양의 마카다미아가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결국 그다음 날 아침 그린바자르가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물건을 교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해결하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고 다음날 아침에 첫 일정으로 이 문제를 끝내야 그 후 일정을 즐길 수 있다.
다음날 아침에 바로 달려가서 사장님한테 받은 그대로 마카다미아 봉지를 주면서, 다른 견과류로 교환을 요청했다. 당연히 사장님은 떨떠름을 넘어, 전날 우리한테 물건을 팔 때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굳어진 표정으로 응대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견과류로 교환할지 고민하고 선택할 여지는 전혀 없고, 전날 마카다미아와 같이 샀던 캐슈넛으로 가격과 무게를 맞춰서 교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화만 안내도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무사히 캐슈넛으로 교환을 마친 우리는 그다음 난제를 풀기 위해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이것은 더 큰 문제였고, 별개의 글로 쓰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사장님의 마지막 상술이 숨어있었다.
그린바자르에서는 손님을 꼬드길 때는 앞에 진열된 굉장히 고품질의 견과류를 먹어 보게 하고 마치 그것을 파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데, 막상 상품을 사려고 하면 진열된 상품이 아닌 사장님이 앉아 있는 안에서 퍼주는 게 가게를 불문하고 똑같았다.
그래서 전날 마카다미아와 같이 산 캐슈넛도 앞에 진열된 굉장히 크고 상태가 좋은 상품을 보고 사기로 했음에도 막상 우리가 산 캐슈넛은 안에서 퍼 담았는데 솔직히 크기가 약간 차이 나고 더 부서진 상품이었다. 하지만 마카다미아 껍질 무게에 온 신경이 가 있어서 캐슈넛 크기를 비교하고 차이를 확인했지만 그 정도는 그러려니 했다.
물건을 교환할 때 숨어있던 상술은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 캐슈넛을 살 때도 안에서 상태를 알 수 없는 상품으로 퍼 담았는데, 마카다미아를 캐슈넛으로 교환해 줄 때는 당연히 안에 있는 봉지에서 퍼 담을 것은 알고 있었다. 사장님은 마카다미아에 해당하는 캐슈넛 무게를 무뚝뚝한 얼굴로 확인시켜 줬고, 우리는 화를 안 내고 그나마 교환이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 하면서, 캐슈넛 무게만 확인한 뒤 고맙다고 말하고 바로 받아왔다.
그런데 그 후 캐슈넛을 먹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꽤 황당했다. 결국 우리는 그 가게에서 캐슈넛을 두 번 산 셈인데, 그 두 개의 품질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첨에 산 캐슈넛은 진열된 상품만큼은 아니어도 크고 맛도 정말 신선했는데, 마카다미아와 교환한 캐슈넛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는데 막상 먹어보니 눅눅한 것이다. 이럴 수가. 진짜 나중에 먹으면서 배신감이 조금 느껴졌다.
이 경험을 통해 공산품으로 만들어서 지퍼백에 담긴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무게를 직접 달아서 상품을 살 때의 교훈을 얻었다.
진열된 상품의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내가 사는 것은 그게 아닐 수 있고, 마카다미아는 껍질이 벗겨진 것을 파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눅눅한 캐슈넛을 완전히 피하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는 것도 숨겨진 진실이다. 이것은 비단 캐슈넛뿐만 아니라 다른 견과도 마찬가지인 게, 사장님이 모종의 이유로 안에서 눅눅한 봉지에 있는 것을 담아준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순식간에 지나가는 거래 과정에서 정신을 차리고 상품을 퍼 담는 사장님한테 그 봉지에 있는 것을 한 개 요청해서 먹어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품질을 확인하는 게 방법이라면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전 세계 재래시장에 임하는 공통 노하우는, 적당한 몰염치와 쌩까기, 적극적인 흥정 마인드를 장착하고 가서 사거나,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내가 조금 비싸게 샀을 거야, 를 미리 염두에 두면서 사면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