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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23. 2019

양이냐 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나의 마스터피스보다 여러 개의 실패작을 목표로 하다

양이 먼저일까 질이 먼저일까? 글을 쓰다 보면 내 글의 완성도에 대해서 신경이 쓰인다. 특히 브런치와 같은 공개적인 플랫폼에 내보이는 글의 경우 더 그렇다. 혼자 쓰고 혼자 보는 일기 같은 글은 나 외의 독자가 없다. 그런 글은 나만 좋으면 된다. 내가 읽어서 재밌고, 감동이 있거나 글을 쓴 것 자체로 후련함을 느낀다면 그 글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적인 곳에 올리는 글은 다르다. 나 하나만 보는 글에 비해 불특정 다수가 보는 글은 상대적으로 더 긴장하게 된다. 나의 거칠고 서툰 표현에 혹시나 상처 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혹은 나의 생각이 공감받기보다 비난받고 부정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앞선다. 이런 생각이 심해지면 글이 멈춘다. 문장 하나 시작하는 것에 주저하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한글 창을 꺼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일단 쓴다. 뭐라도 써야 뭐라도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쓰는 게 우선이다. 글의 퀄리티가 높건 낮건 지금의 내겐 별로 중요치 않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쓰는 글은 퀄리티가 높네 마네를 논할 정도의 레벨도 아니다. 


글을 안 쓰는 시간엔 책이나 브런치를 통해 다른 작가들의 글을 자주 읽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의기소침해진다. 이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가 있는 거지? 이런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니. 대단하다. 그에 비해 나는…으로 시작하는 자기 비하와 한탄이 길게 이어지다 보면 또다시 기분이 가라앉는다. 


나 같은 게 글을 쓰겠다고 덤벼들다니. 글 쓰는 것만으로 먹고살아보겠다니. 역시 아직 때가 아닌가. 글을 쓰기보다 책을 더 읽고 좋은 문장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렵사리 마음을 다잡는다. 또 도망치고 싶었던 거다. 나보다 날고 기는 대단한 사람들을 보면서 거보라고 너 따위가 전업작가라니. 가당키나 하냐고. 꿈 깨고 그냥 살던 대로 살라고. 또다시 현실에 안주할 수 있는 핑곗거리를 찾고 싶을 때에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나를 주저앉혔던가. 내가 원해서라기보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포기한 시간은 지금까지로 족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글을 쓴다. 그것도 많이. 되도록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분량으로. 잡생각이 들 땐 일단 컴퓨터를 켜고 한글 창을 펼치고 한 글자라도 써보는 거다. 마치 운동과 같이 말이다. 



운동을 할 때 가장 힘든 시간은 실제로 운동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운동을 하러 가기까지가 제일 고민되고 힘들다. 아 오늘은 왠지 몸이 좀 뻐근한데. 무릎도 좀 아프고.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속이 좀 안 좋은데… 등등, 오늘 하루 정도는 운동하지 말고 쉬어도 좋다는 갖가지의 핑계들을 떨쳐내고 운동하러 체육관에 가는 그 시간이 가장 고되다. 


운동을 하고 싶지 않고,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순간의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다. 움직이면 된다. 생각을 하지 말고 기계처럼 그냥 움직이는 거다.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체육관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앉아 아무것도 없던 하얀 백지에 하나 둘 글자를 만든다. 문장을 잇고 하나의 글로 완성시키는 행동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때론 마법 같은 일이 글 쓰기라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글은 많이 쓰는 게 좋을까, 아니면 하나의 글을 쓰더라도 질을 높이는 게 좋을까. 이에 대한 답은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무조건 양이다. 나는 아직 삶에 대한 대단한 통찰력과 그를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필력이 없다. 하나의 마스터피스를 만들 수 없으니 여러 개의 실패작들을 생산하려고 한다. 더 쓰고 더 읽고 더 생각하고 더 표현하며 아직은 부족하고 서툰 글을 하나씩 만들다 보면 내 글도 조금씩 발전이라는 걸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며 한 가지 발전한 점이 있다. 바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태도를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예전엔 행동하기 전에 혼자서 미리 결과를 예측하고 ‘어차피 안될 거 뭐하러 하냐’고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면 이제는 어려워 보이는 일이라도 ‘일단’ 시도는 해본다. 물론 끝까지 이어가는 일은 많이 없지만 그래도 안 하고 미리 포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작하면 언젠가 대작가 된다고 해요


최근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멘토인 김 팀장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다. ‘좋은 책’을 추천해주십사 연락드렸다고 하면서.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를 묻기 전에 책부터 추천해달라는 나의 막무가내 인사에도 팀장님은 친절히 답해주셨다. (추천해주신 책이 전부 다 좋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뒤늦은 안부인사를 전하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목표는 질보다 양이라는 내 말에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다작하면 언젠가 대작가 된다고 해요. 응원합니다.” 내 글이라는 수많은 실패작을 만들면서 틈틈이 좋은 책과 문장을 접하며 내 글의 수준을 끌어올리다 보면 언젠가 양이 질을 압도하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글자 하나, 문장 하나, 글 하나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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