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Aug 27. 2019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시작하는 것에 의의가 있고 지속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시작은 항상 어렵다. 이 한 문장을 쓰기까지 몇 번의 쓰고 지움이 반복되었다. 이게 뭐라고.


완벽하고 싶은 마음 탓이다. 좀 대충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혼자 끄적이는 이 글까지도 그렇게 남 눈치를 본다. 글을 쓰자고 마음먹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완벽을 바라는 마음이다. 처음부터 완벽을 바라는 건 욕심이고 자만이다. 나의 글은 완벽보다는 꾸준함을 목표로 해야 한다. 지난번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다. 한두 번 시도해보다가 맥없이 포기해버리는 것만큼은 피하자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였다.


그래도 기왕이면 방향 정도는 잡고 글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글이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끄집어내면 그게 ‘글’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렇다.


오늘은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더워서 깼다. 8월 말의 일본은 아침저녁으로 퍽 서늘해졌지만 아직 여름이긴 한가보다. 온몸에 둘둘 말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다다미 방으로 갔다. 남편은 아직 더 잘 시간이어서 깨우고 싶지 않았다. 컵에 물을 따라서 노트와 펜 하나를 들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을 잡기 위함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썼지만 꾸준히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바를 확실히 해야 했다. 그래야 쓰기도 더 쉽다.


왜, 무엇을, 누구를 위해
쓰는가

요즘 읽고 있는 이다혜 작가의 책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에서 그녀는 글을 쓰기 전에 다음의 3가지에 먼저 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왜’ 쓰는지, ‘무엇’을 쓸 것인지, ‘누구’를 위한 글인지.


3개의 질문을 가슴에 품고 나는 노트를 폈다. 먼저 브런치에 공개한 글의 제목들을 쓰고, 추가로 쓰고 싶은 글의 소제목들을 무작위로 적어봤다. 처음 한 두 개를 쓰기까지는 조금 망설였는데 하나 둘 소제목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머뭇거림은 사라졌다. 나에게 글이란 결국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겨 적는 일이었기에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니 차곡차곡 항목들이 늘어났다. 더러는 겹치는 내용도 있었고, 더러는 아예 글이 시작된 것처럼 긴 문장도 나왔다.  


이미 공개한 글 3개를 포함해서 총 29개의 소제목이 나왔다. 중복되는 항목을 제거하면 실제론 이보다는 더 적을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두서없이 나열된 제목들만 봐도 대강 감이 왔다. 29개의 문장으로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지만 결국 나는 글이 쓰고 싶고, 글로서 내 밥벌이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일의 소중함과 나처럼 작가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보였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책 한 권 제대로 출간해보지 못한 사람이 쓰는 글에 무슨 힘이 있을까 싶다가도 다시 또 마음을 고쳐 먹는다. 모든 위대한 작품들도 처음이 있었다. 세계적인 거장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인 ‘노인과 바다’를 200번 이상 퇴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시작은 초라한 것이 당연하다. 햇병아리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에 의의가 있고, 지속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요즘은 쓰레기도 그냥 버리지 않는다. 모아서 재활용할 것은 재활용한다. 그래도 내 글이 쓰레기라는 말은 좀 마음이 아프다. 쓰레기 대신 원석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가공을 거치지 않아서 투박하고 그다지 예쁘진 않지만 나의 정성과 노력으로 갈고닦아서 반짝반짝 빛나게 될 원석들을 하나씩 늘려갈 것이다. 모든 위대한 업적은 이러한 작은 노력에서 시작한다고 나는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양이냐 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