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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Oct 09. 2019

멘토는 멘티로 인해 완성된다

멘티가 없는 멘토는 존재할 수 없다

때로는 멘토보다 멘티가 나를 더 성장시킬 때가 있다.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 생각들을 동경하며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멘토라면 나도 누군가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만드는 사람이 멘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고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주로 멘토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나 스스로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고 그것을 묵묵히 걸어갈 때는 멘토보다 멘티를 보며 힘을 얻는다. 의지를 다지게 된다고 할까.


이게 내 삶의 방향이라고. 이렇게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거라고. 나라고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을 멘토라고 생각하며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멘티에게 성공을 보장하는 지름길을 보여줄 순 없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고 군말 없이 따르는 나약함이 아닌 스스로가 납득할만한 인생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억척스러움을 보여주고 싶어 진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멘티가 나에게도 있다. 편의상 S라고 하겠다. 며칠 전, S는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개천절 휴일에 이어서 연차를 한 개 더 붙여서 써서 왔다는 S는 결혼 전 우리 부부와 함께 반년 간 헬스장을 다니며 같이 운동했던 헬스 친구이자 나와는 약 1년간 같이 인천, 김포 지역을 누비며 외근을 했던 직장동료였다. 그랬던 S가 우리 집에 오다니! 나는 물론이거니와 남편 역시 S의 방문에 한껏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유명한 맛집을 검색해서 맛있는 밥을 먹고 예전엔 혼자 왔었던 명소에 이번엔 남편과 가장 좋아하는 동생과 함께 가며 즐겼던 3박 4일의 시간은 빛과 같았다. 그만큼 순식간이었고, 그만큼 눈부셨다.


사실 내가 정말 좋다고 느낀 시간은 따로 있는데 셋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들이다. 유명한 명소에 가서 멋진 풍경을 눈에 담고 사진을 찍으며 노는 시간도 좋긴 했지만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동하던 전철 안에서, 일정이 다 끝난 뒤 집에 돌아와 자기 전 맥주캔을 까고 과일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밀려있던 그간의 일상을 공유하고 최근들어 하고 있는 생각과 막막하기만 한 미래의 걱정들을 털어놓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줬던 그 짧은 시간들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5살이 어린, 올해 28살인 S는 30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직장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했다. 자신이 생각한 28살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S에게서 나는 5년 전의 나를 보았다. 내가 원하던 28살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닌데. 이런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건 상상조차 못 한 일인데. 이렇게 나이만 먹다간 평생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시도조차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두렵다며 불안해하고 막막함을 느꼈던 5년 전의 내가 눈앞에 그려졌다.


괜찮다고. 누구에게나 생계수단은 필요하다고. 너의 회사도 생계수단일 뿐 그 자체가 네 인생이 되는 건 아니라고. 회사에서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돈을 벌고 퇴근 후 집에 와서 하루 5분씩이라도 네가 원하는,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해보라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이제라도 시작하면 된다고.


내가 S에게 했던 말은 사실 S만을 위한 말은 아니었다. 5년 전의 나와 5년 후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네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이 사실 가장 빠른 시기인 거라고. 지금 늦었다며 안 하고 미적대다간 5년 뒤 더 큰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그냥 움직이라고. 일단 해보라고. 그래야 후회가 덜하고 미련이 남지 않는다고. 적어도 똑같은 고민을 몇 년 뒤에 또 하는 실수를 하게 되진 않을 거라고.


S는 알겠다고 했다. 돌아가면 하루 5분씩이라도 운동을 하고 예전부터 하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진행 중이다.

S의 도전은 며칠 이어지다가 현생의 괴로움에 밀려 또다시 멈출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는 멘토가 있는 S는 곧 다시 뛰기 시작할 거라고 믿는다. 지금 가는 길이 정답인지 아닌지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도전하고 행동하는 멘토의 모습을 보는 멘티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그랬고, 그간의 S가 그랬다.



내게 있어 멘티는 소중하다. 나로 하여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만드는 사람. 나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오는 이에게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써 스스로 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게끔 만드는 사람이 멘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개척 중인 사람에겐 멘토보다 멘티의 존재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멘티는 멘토의 행동을 이끌어낸다. 말만 그럴싸해서는 멘토가 될 수 없다.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멘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멘토는 멘티로 인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멘티가 없는 멘토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서두르지도 말고,
멈추지도 마라


내가 좋아하는 김우태 작가의 <오늘도 조금씩>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서두르지도 말고, 멈추지도 마라.” 괴테의 명언인데 낮에는 양계장 김 씨로, 밤에는 작가 김우태로 글을 쓰는 작가의 인생관이라는 설명이 책에 덧붙여졌다.


나 역시 서두르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을 작정이다. 전업작가라는 꿈을 지금 당장 이루지 않아도 좋다. 아니, 현실적으로 이루기도 어렵다. 그래도 괜찮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오히려 당장 전업작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볼 수 있는 일들도 생겼다. S가 다녀간 며칠간 글을 쓰지 않는 대신 생각을 정리했고 나는 새로운 목표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을 달성하기 위한 시도를 며칠 전부터 해보는 중이다. 이렇게 조금씩 내 인생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는 오늘도 S와 5년 뒤의 나라는 멘티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행동한다.

느리지만 꾸준히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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