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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Sep 26. 2019

오버 페이스는 금물

깝(?)치다 탈 났다

일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 일이 돈까지 벌어다주면 더 좋겠지만 아직 내 일은 나 혼자 좋아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글을 규칙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때때로 몰려오던 우울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번번이 안 되는 취직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던 경단녀의 모습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매일 아침 8시 30분. 남편의 데스크톱 앞에 앉아 한글 창을 켜고 40분으로 세팅된 스톱워치의 시작 버튼을 누른 뒤 빈 문서에 뭐라도 적기 시작하는 전업작가 지망생이 등장한 지 어언 한 달 째다. 


최근 읽고 있는 서울대 배철현 교수의 <수련: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의 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낚아채십시오!” 그 말 그대로 나는 요즘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내가 생각한 대로 원하는 일들만 하며 보낼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만족감을 준다. 삶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내가 삶을 이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본인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들뜨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매일 아주 작은 일이라도 본인이 주도권을 쥐고 행동하게 된 사람은 어느새 들뜨게 된다. 더 많은걸 하고 싶고 실제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가끔 그러다 탈 난다. 바로 나처럼. 



어제부터 오른쪽 손목과 팔꿈치가 아프다. 파스를 군데군데 붙여줬는데도 별 소용이 없다. 글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거냐고 누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즉답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하루 중 글 쓸 때보다 매일 밤 3-40분씩 운동하면서 팔근육을 더 많이 쓴다. 


아마도 그저께 옮긴 생수 박스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집은 1박스에 3.8리터 페트병 6개가 든 생수를 1주일 동안 마신다. 그동안은 1주일에 한 번씩 결제해서 시켰는데 아마존도 정기배송을 하면 5%에서 10% 정도 가격이 저렴해져서 이번 달부터 정기배송을 시켰다. 그리고 그저께 4박스가 한꺼번에 도착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같이 옮겨도 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걸 다 내가 옮겨보겠다고 용을 썼다. 요즘 체력에 자신감이 붙어서다. 그동안 집에서 맨몸 운동을 꾸준히 했더니 얼마 전엔 남편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턱걸이를 3개나 해냈다..! 


턱걸이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몸의 반동 없이 자신의 등근육과 팔근육만으로 몸을 들어 올리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런데 그걸 내가 해내다니..! ‘이제 제법 몸에 근육이 붙었나? 힘이 좀 세진 건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폭발했고, ‘저 정도 생수 박스야 내 몸무게보다 가벼운데 혼자 옮기지 뭐. 남편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라는 겁 없는 생각을 해버렸다. 


결국 전부 혼자서 다 옮기긴 했지만 그 여파로 오른팔에 탈이 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1박스에 24킬로나 되는걸 4박스나 번쩍번쩍 들어서 옮겼으니. 이만하길 다행인지도 모른다. 내 깜냥으론 아직 무리인 일을 하면 이렇게 꼭 어딘가 탈이 난다. 


이래서 들뜨면 안 된다. 마음이 들뜨면 자신의 한계를 넘는 무모한 짓을 할 수가 있다. 어젯밤까진 손목과 팔이 너무 저려서 내일은 글도 못쓰고 쉬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졌다. 순간의 객기(?)로 받는 벌이라기엔 너무 가혹했다. 그것도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육체노동 때문에 내가 제일 좋아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할 수가 없다니. 


다행히 자고 일어났더니 저린 감각이 많이 없어져서 오늘도 일단 글을 쓰고는 있다. 그래도 곧 갖게 될 휴식시간에는 스트레칭도 하고 주물러주기도 할 거다. 아마존에서 바른 자세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등쿠션도 주문했다. 자세가 안 좋아서 손목까지 저린 건가 싶어서다. 



글쓰기는 장거리 달리기와 같다. 긴 호흡이 필수다. 시작한 순간 폭발적인 힘을 단기간에 쏟아내는 단거리와 달리 장거리 달리기는 적절한 체력 안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오버페이스를 경계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면 간혹 엄청나게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미친 듯이 달리다 보면 고장 난 내 팔처럼 어딘가 꼭 탈이 난다. 매번 그렇게 글이 술술 나오진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머리를 쥐어 짜내도 마음에 쏙 드는 글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꽤 많다. 


이럴 때 오버페이스로 달린 사람은 쉽게 지친다. 어제는 잘만 써졌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막히는 거지. 역시 난 재능이 없나 봐. 자책하기 시작하고 우울해하다가 결국 글 쓰기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글을 쓰면서 자신만의 글쓰기 패턴을 알아내는 게 필요하다.  


내 경우 분량보다는 시간을 정해두고 글 쓰는 게 잘 맞았다. 어차피 하루 이틀 글 쓸 거 아니니까 일정한 시간을 들여 매일 쓰다 보면 그 글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다. 오늘 글이 잘 안 나와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일 또 쓰면 되니까 상관없었다. 


오늘은 팔이 아프니까 1시간만 글을 쓰려고 한다. 내일도 계속 아프면 그때도 1시간만 써야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지언정 멈추지만은 않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나의 상태를 살피고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욱신거리는 한쪽 팔을 훈장처럼 달고서. 


 … 그나저나, 파스가 다 떨어졌네. 이제 그만 쓰고 파스 사러 마트나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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