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너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에 대해 생각하다.
어제 남편과 오랜만에 심각한 말다툼이 있었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다툼은 있었지만 내가 <심각한>이라는 말 그대로 심각한 수식어를 사용한 이유는 그 정도로 거대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라, 내 남편의 마음에.
발단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내 기준에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주로 아마존에서 쌀과 물 등의 기본 식료품을 정기적으로 구매하고 있는데 라인(일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 어플)에서 이번에 새롭게 발행하는 모 신용카드가 결제 시 금액의 4%를 아마존 포인트로 적립해주는 혜택이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일본에서 사용 가능한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고 싶었지만 지난 1년간 우리 부부의 신용카드 발급 신청은 번번이 거절되었다. 아무래도 이전에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한 이력이 전혀 없기에 신용도가 최하위로 측정되어 그랬지 않을까, 짐작은 하지만 답답한 건 마찬가지.
그나마 다행인 건 체크카드는 바로 발급이 되어서 잘 사용 중이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갑자기 큰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기도 하기에 일본에서 엔화로 바로 결제되는 (별다른 환전 수수료 없이) 일본 발 신용카드 한 장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남편은 올해 4월로 일본 회사에서 근무한 지 딱 1년이 지났고, 마침 적당한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가 맞춘 것처럼 짠! 하니 나타난 것이다.
어제 남편은 회사를 쉬었다. 회사 자체에서 어제 하루를 휴일로 지정했다고 한다. 이런 날이면 남편은 주로 콜 오브 듀티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를 하거나 유튜브에서 주식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쉬곤 하는데, 어제는 오전 내내 컴퓨터 책상에 앉아 고개를 처박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신용카드 발급을 위해서다.
한참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조작하고 있던 남편이 결국 신청 과정을 끝내지 못하고 나에게 말했다. <이것 좀 해줘.>
그때 나는 점심으로 먹을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뭔데 그래? 신용카드 신청. 무슨 신용카드인데? 아마존 포인트 적립해주는 거래. 간단한 거 아냐? 그렇긴 한데...
한참을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대화 끝에 내가 한 말은 이거였다.
“그럼 자기가 해.”
결국 카드 발급 신청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나와 함께 마주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던 남편에게 나는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 거면 자기가 하라고. 나는 뭐 노냐고.
실제로 나는 바빴다. 막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도 바빴다. 마음이. 나는 얼른 점심을 해치우고 내 <일>을 하고 싶었다. 다음 주 분의 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나는 현재 유튜브에 매주 3개의 영상을 올리는 중인데 다음 주는 기존에 예정된 3개의 영상 외에 하나의 영상을 추가로 업로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저절로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 내 말에 남편은 얼굴이 굳었다. 너무 남일 대하듯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나는 말했다.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나한테까지 시키냐고. 그러자 남편은 곧 알겠다며 묵묵히 떡볶이를 먹었다. 그리곤 다시 컴퓨터 책상으로 가 고개를 처박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한참을 스마트폰을 조작하던 남편이 이윽고 고개를 들고 게임을 켰다. 옆에서 내 <일>을 하던 내가 다 했냐고 묻자 <아니>라는 답이 돌아온다. 왜 다 안 했냐니까 너무 복잡해서 못했단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게 발단이었다. 그 일은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것도 매우.
‘겨우’ 그런 걸로 마음이 상하다니. 너무 쪼잔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처음엔 남편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뒤늦게나마 남편의 기분을 알아채고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려다 되려 나까지 마음이 상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경우가 전에도 몇 번 있었다는 거다. 신용카드 발급으로 서로 기분 상한 경우가 또 있었다는 게 아니라 이와 비슷한 이유로 남편이 내게 마음이 다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때는 남편과 내가 연애를 막 시작한 7년 전 무렵부터였다. 당시의 나는 이기주의의 끝판왕이었다. 내가 제일 중요했고, 내가 가장 소중했다. 남편은 나의 첫 남자 친구이다. 내가 처음으로 나 외의 사람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그랬다. 나는 타인을 ‘사랑’한 경험이 없었다. 7년 전,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살피는 일은 곧잘 했지만 남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고 그들의 기분을 살피는 일엔 쥐약이었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지독한 나르시시즘. 당시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는 딱 그런 상태였다. 쉽게 말해 <나 밖에> 몰랐다.
그랬기에 그런 나와 연애하던 남편은 자주 마음이 다쳤다. 그럼에도 장장 6년을 내 옆에 있어줬다. 단 한 번의 <헤어짐>도 고하지 않고,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에 서투른 나를 기다려줬다. 그렇게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 외의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줬다.
떡볶이를 먹고 한 시간 정도 게임을 하던 남편이 낮잠을 잤다. 1시간 뒤에 깨워 달란다. 나는 직감했다. 그때가 타이밍이었다. 서로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풀어줄 최고의 타이밍.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러 침실에 갔다. 남편의 옆에 모로 누웠다. 그리고 남편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했다. 아까 왜 그랬냐고. 어떤 게 불편했냐고. 남편이 말했다. 없는 돈에서 한 푼이라도 더 아껴보려고 신용카드를 만들고 싶었단다. 겨우 4%밖에 안되지만 그거라도 포인트를 받아 결제할 때 쓰면 조금이나마 집안 가계 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단다.
우리 집은 외벌이다. 남편 혼자 돈을 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내게 돈을 벌어오라고 닦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돈 아끼라는 소리도 일절 하지 않았다. 어디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묻지도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벌이만으로는 결코 넉넉하게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남편이 월급을 타도 남는 게 없었기에 그렇다. 월세 내고, 생활비로 쓰고 나면 정말 남는 게 몇 없었다. 저축은커녕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밥 한 끼 사 먹는 것도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은걸 찾았는데 ‘네가 알아서 하라’는 나의 태도에 남편은 상처 받았던 것이다. 이건 우리 <부부의 일>인데, 마치 <내 ‘일’이 아닌 듯> 대하는 나의 차가운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남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나의 실수를 인정했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사과했다. 다시는 그렇게 남일 보듯 우리 <부부의 일>을 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나의 노력의 시간은 매우 짧다. 남편과의 연애기간인 6년과 결혼 후 함께 보낸 약 2년의 시간. 도합 8년이 채 안 됐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종종 내 예전 모습이 튀어나온다. 남들의 마음이야 어떻든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나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못된 심보가 불쑥 튀어나온다.
이런 나를 남편은 이번에도 기다려줬다. 내가 그에게 사과할 기회를 줬고, 나의 사과를 단 한 번의 오해도 없이 받아주었다. 내가 결혼을 참 잘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이런 넉넉한 마음에 있다.
처음엔 내가 호수 같은 사람과 결혼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우리 남편은 잔잔하다. 일희일비하는 법이 없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저 고요히 고여있는 호수 물처럼 남편의 감정은 쉽게 넘치지도, 일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살아보니 남편은 호수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호수보다는 바다에 가까웠다. 우리 남편은 호수처럼 한결같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고여있지만도 않았다. 조금씩 커져갔다. 무엇이 커졌냐고 물으면 음, 어떤 단어를 골라야 하나 좀 고민이 되긴 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그릇’의 크기가 점점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호수처럼 바닥이 있고, 일정량 이상의 물은 수용할 수 없어 넘쳐버리는 한계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바다처럼 끝 모를 넉넉한 그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불어나 결국 범람할 수도 있는 호수와는 달리 바다에는 범람이 없다. 간혹 쓰나미 같은 거친 파도를 보여줄지언정, 그 어떤 거센 비바람에도 절대 넘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함부로 줄지도, 넘치지도 않는 사람. 끝을 모르는 지평선을 품고 그 위로 흘러들어오는 모든 물줄기와 빗방울을 전부 다 품어주는 바다와 같은 사람. 나는 그런 사람과 결혼을 했고 이는 내가 내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최대의 이유가 되어줬다.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거진 2시간을 얘기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거실로 나왔다. 남편은 컴퓨터를 켰고, 나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몇 개 꺼냈다. 오늘 저녁은 삶은 달걀에 바나나, 단백질 셰이크를 먹고 후식으론 오렌지를 먹기로 했다. 그렇게 삶아진 계란을 까려는 내 옆에 남편이 슥, 다가왔다. 내가 이거 깔 테니까 자기는 오렌지 까. 키친타월을 깔고 그 위로 톡톡 계란 껍데기를 떨궈내기 시작한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생각했다. 역시 나는 결혼을 잘했다. 그것도 매우.
살면서 써지는 글을 좋아하는 저는 이런 글도 종종 쓸 것 같습니다. :)
TMI지만 우리 남편은 제 브런치를 구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껏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ㅎㅎ
그럼, 저는 이번 주 일요일 밤 9시에 역대급으로 재밌고 역대급으로 보고 난 후의 여운이 긴 [글 읽는 밤]의 새로운 영상과 함께 다시 찾아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