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 감정 폭력
<이 책에 관심이 생긴 이유>
1.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폭력 이야기'라는 부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2. 프롤로그부터 초반 부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 (일상에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아왔던 감정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에 매우 공감했다.
3. 심리 상담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으로서 평소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던 분야의 책이어서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은가>
1. 모든 건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빠져 상처 받아왔을 사람들 (감정 폭력의 피해자들)
2. 모든 건 '네 잘못'이라는 얘기를 하며 주위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처 입혀온 가해자들
3. 심리학이나 상담분야에 대해 공부 중이거나 공부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 혹은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
<가장 감명 깊었던 내용 3가지만 꼽아 보자면>
정신적 폭력은 이중으로 과소평가받는다.
첫 번째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행동이 분명한 감정적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이유로 별일 아닌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로 감정적 폭력을 통한 상처는 눈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피해가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정신적 폭력으로 받은 괴로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온전히 혼자서 감당하라고 강요받는다.
『감정 폭력』,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손희주 옮김, 걷는나무(2019)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고 감정적인 폭력도 물리적인 폭력에 준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체감한 적은 솔직히 말해서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감정적 폭력의 위험성과 그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 절실히 깨달았다.
골절을 했거나 피부가 찢어지는 등,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사람들의 이해를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내면의 아픔과 상처는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해주기 어렵다는 것. 심지어 그러한 심리적 상처를 받은 당사자조차도 힘들어하는 자신이 이상한 것이고, 힘들다고 느끼더라도 혼자서 알아서 그 힘듦을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게 되기 쉽다는 것이 무척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모두 때때로 누군가에게 무시받거나 비난당하고 질책받는다. 이런 일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인데 이렇게 심각한 문제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문제의 핵심은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라는 것이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폭력'이라고 강하게 명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를 그냥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기다가 그 상처가 쌓이고 쌓여 더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감정 폭력』,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손희주 옮김, 걷는나무(2019)
백수인 내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이 내게 해 준 말 중 실제로 도움이 되었거나 스스로 납득할만했던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은 내게 감정적인 폭력을 휘두른 것이었는데, 처음엔 나도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들의 말이 옳은 게 아닐까,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흔들렸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그들의 그런 행동과 말은 모두 무례했고, 나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폭력적인 일이었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자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인 '감정 폭력'에 대해 '폭력'이라는 말을 왜 붙여야 하는지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동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보호'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괴롭힘이나 비열한 폭력이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라 '가해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정 폭력』, 베르너 바르텐스 지음, 손희주 옮김, 걷는나무(2019)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상처 입은 사람은 잘못이 없다. 누군가 휘두른 폭력에 속절없이 맞았을 뿐,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스스로를 비하하며 더 깊은 상처를 받을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받아왔던 감정적 폭력들에 스스로를 자책하며 더 큰 상처를 받아왔을 감정적 폭력의 피해자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당신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당신들에게 무례하게 굴고 당신을 상처 입힌 그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을 매우 논리적으로 잘 얘기해준다.
다만 딱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첫째. 감정적 폭력이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관계에서 발생하기 쉬운지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알려주지만 그러한 감정적 폭력에서 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
둘째. 책 한 권에서 다루고 있는 케이스들이 무척 광범위하다 보니 뭔가 재미있는 논문 수십 개를 읽은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들었다. 그만큼 작가가 '감정 폭력'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면 이랬을까.. 싶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각 장마다 핵심 내용을 요약한 페이지가 있다는 것인데, 전문을 다 읽기가 피로하게 느껴질 땐 각 장의 맨 마지막에 있는 마무리 요약 내용만 봐도 해당 장의 핵심 내용이 한눈에 파악이 되었다.
이렇게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감정 폭력'이 결코 우리의 삶에서 뚝 떼어져 있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직장에서, 집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한 말 한마디에서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매우 '흔한 일'이라는 점을 철저하고도 집요하게 파헤쳐 풀어낸 책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심리 상담 분야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볼 생각이 있거나 이미 공부 중인 사람들은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