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에 대한 나만의 개똥철학
어떤 한 분야에서 특출 난 이력을 가진 사람, 혹은 성공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대부분 가슴이 뛰고 설렜던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저렇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까 싶어서다.
오늘 아침 공부한 원서에서 처음 본 표현이 있었다. ‘知りたがり屋’. 처음에 이 표현을 봤을 때 ‘뭐든 다 알고 싶어 하는 가게?’라는 표현만 떠올랐다. 단순히 직역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본문의 내용을 봤을 때 ‘뭐든 다 알고 싶어 하는 가게’는 절대로 어울리는 표현이 아니었다.
잠시 원서를 덮고 한국에서 출간된 번역서를 폈다. 그곳엔 ‘참견러’라는 표현이 적혀있었다. 아, 맞네. 이렇게 표현하면 되는구나. 그 순간, 나는 또다시 큰 깨달음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뭐든 다 알고 싶어 하는 가게’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쓰는 내가 번역을 하겠다니. 제정신이냐고. 번역을 너무 얕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어디 가서 번역일 하겠다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말들에 흔들리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은 또다시 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인 것 아니냐고. 다 알고 있으면 공부를 왜 하냐고. 모르니까 공부하는 것이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꽤 쏠쏠하지 않으냐고.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경험을 몇 번 반복해보니 알겠더라. 내가 번역을 참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때마다 희열보다는 절망감을 더 자주 느끼는 일을 쉬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의 보람과 언젠가 얻게 될 달콤한 성과보다도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겪게 될 괴로움과 역경들을 먼저 떠올린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