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Dec 14. 2021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가

길었던 예열의 시간이 끝났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으로 한 메시지를 받았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연락한다고. 잘 지내시냐고. 브런치도 들어가 봤는데 올해 8월 이후로 쓴 글이 없어서 내심 놀랐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은 내 첫 책인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가 브런치에서 연재되고 있을 무렵부터 내 글을 좋아해 주시던 독자님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씩 나보다 더 내가 쓴 글을 깊이 이해하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분도 그런 고마운 분들 중 한 분이었다.


그분 덕분에 내가 브런치에 글을 안 쓴 지 3개월이 넘었다는 걸 알았다. 벌써 그렇게나 시간이 흘렀구나. 에어컨을 끄고 반팔 옷 대신 긴팔의 도톰한 스웨터를 꺼내 입어도 이상하지 않은 계절이 되었음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글을 안 썼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굳이 글을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한동안 글쓰기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 알바를 했고, 집안일을 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운동을 했다. 장을 봤고, 신문을 읽고, 요리를 했고, 가끔 책도 보고, 넷플릭스로 보고 싶은 드라마와 애니메이션도 봤다. 그렇게만 살아도 시간은 빠르게 지났고 하루하루는 부족한 것 없이 알차게 느껴졌다.


예전엔 글을 쓰지 않으면 괜히 좀이 쑤시고 하루를 허투루 보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면 이제는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불편하거나 부족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나의 글을 읽고 싶어 하는 분들이 나타나서였다. 몇 달 전 인스타그램으로 내게 집필 중인 글이 있다면 한 번 검토해보고 싶다는 편집자분이 나타났고, 며칠 전 나의 안부와 함께 내 글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독자님이 나타났다. 이제는 글을 안 쓰냐는 친구들의 물음이 있었고, 다음 책은 언제 나오냐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내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망설이던 마음의 불씨를 확 당겨준 책을 한 권 만났다. 출판 편집자이자 작가인 이윤주 님의 책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위즈덤하우스(2021)』다.


작가는 스스로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내가 불특정한 타인들에게 내 말을 좀 들어보라고 해야 하는가. 왜 저 무수히 훌륭한 책들 사이에(그보다 못할 것이 뻔한) 나의 책을 추가해야 하는가. 저자들로부터 그런 고뇌와 두려움을 직접 듣는다. 세상에 OOO 같은 작가가 있는데 왜 제가 굳이 보태야 할까요. 나는 대답한다.

“OOO은 자기 인생만 살아봤지, 작가님의 인생은 안 살아봤잖아요.”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윤주, 위즈덤하우스(2021) 중에서』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가. 단순해 보이는 이 한 문장짜리의 고민이 지난 몇 개월간 줄곧 이어져왔다. 내가 아니어도 세상엔 글 쓰는 사람이 많고 내 이야기보다 그들의 이야기가 더 기똥차게 재밌고 흥미진진한데. 굳이 내 이야기까지 글로 써서 세상에 알려야 할 이유가 있나? 


사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뭔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한 채 남의 (그것도 내가 쓴 것보다 훨씬 더 재밌고 잘 쓴 것 같은) 이야기를 주섬주섬 주워 읽어 오던 때, 이 책을 만났다. 맞네. 내 인생은 나만 살아본 거였지. 내가 겪은 일들, 감정, 깨달음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거였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를 주저하는 작가들에게 건넨 이윤주 작가님(이자 편집자)의 말씀에 나도 조금씩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물론 다시 글을 써서 공개하자고 마음먹었다고 해서 예전처럼 막 하루에 한 두 개씩 글을 써서 매일 올리지는 못할 것 같고, 1주일에 1개씩 줄곧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길었던 예열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첫 발을 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이 길은 또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가다 보면 뭐라도 될 것이다. 늘 그랬듯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코붱입니다 :)


그동안 '왜 글을 써야 하는가'와 그렇게 쓴 글을 '왜 굳이 공개 해야 하는가'를 두고 맹렬히 고민해왔는데요, 드디어 고민의 시간이 끝났습니다.


본의아니게 구독자님들을 오래 기다리게 만든 것 같아서 매우 죄송합니다..T_T


앞으로는 매주 월요일에 한 편씩 새로운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기다려주신 구독자님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책을 내고 1년이 지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