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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Apr 12. 2023

무료 신문의 쓸모

일본 생활 기록부

종량제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들어오기 직전. 습관적으로 현관 앞 우편함을 열어봤다. 안에는 적당한 두께의 종이신문 2개와 공과금 고지서가 들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유료 구독 중인 신문은 한국 경제신문뿐이다. 그것도 전자판으로 구독 중이라 이렇게 종이신문이 배달될 일은 없다.


하지만 구마모토로 이사 오고 딱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에는 내가 신청한 적도 없는 신문지 뭉치가 계속 쌓여간다. 바로 무료 주간지들이다. 오늘처럼 2개가 연달아 올 때도 있고, 한 며칠 뜸하다가 또 하나씩 배달올 때도 있다.


대부분의 무료 신문이 그러하듯 막상 신문을 펼쳐보면 거의 광고로 도배되어 있어서 대개의 경우 그대로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곤 하는데 오늘 배달된 2개는 나름 실려있는 정보가 알차서 설거지하기 전에 대충 훑어봤다.


처음 집어 든 건 보기만 해도 영양가 넘치는 재료들이 정갈히 담긴 도시락 통이 눈길을 잡아 끄는 주간지였다. 매일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나로서는 ‘간단 도시락 기본 룰’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져 있는 그 신문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신문에 따르면 도시락을 쌀 땐 전날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 같이 재료 손질을 해두는 게 좋다고 한다. 지금까지 나는 저녁을 해 먹은 다음에 자기 직전쯤 되어서야 다음날 남편 도시락에 넣어줄 반찬에 필요한 재료 손질을 따로 하곤 했는데 전날 저녁 식사 준비할 때 도시락용 재료까지 미리 손질해두면 두 번 세 번 설거지할 필요도 없고 간단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또 밥과 반찬에는 다섯 가지 정도의 다른 색이 들어가면 도시락 자체가 좀 더 맛있어 보이고 중간중간 틈 사이에 넣으면 좋을 식재료까지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큰 팁은 아니지만 이런 소소한 팁이라도 적절히 활용하면 입뿐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도시락을 싸줄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해당 내용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서 저장했다.



다음으로 집어 든 건 지진이 났을 때를 대비하여 평소에 준비해 두면 좋을 것들을 스텝별로 알려주는 내용이 담긴 주간지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올해로 5년째 일본에 살고 있는데도 나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지진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실 오사카에 살던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큰 지진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지진에 대해 어떤 대비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은 일본 내에서도 규모가 큰 활화산이 활발히 활동 중인 규슈지역이다. 이 지역에 산 지 이제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간 내가 겪은 크고 작은 지진이 벌써 다섯 손가락 이상은 꼽는다.


심지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2016년에 일어난 구마모토 대지진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꽤 컸던 동네였다고 한다. (현재는 너무 멀쩡하게 복구돼서 지진이 일어났는지 어땠는지 조차 잘 모를 정도지만.)


이런 동네에서 사는 사람치고 지진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신문에 실린 내용을 꼼꼼히 체크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재난가방 준비하기’. 재난가방은 재난 시 필요한 물품(인스턴트식품이나 물, 손전등이라든가 라디오 같은)을 가방에 넣어 미리 준비해 두는 걸 말하는데 일본은 아마존이나 코스트코 같은 온 오프라인 마트에서 아예 ‘재난 가방 세트’ 같은걸 따로 팔기도 하는 등 나름 다양한 종류의 재난용 가방을 판매 중이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구마모토로 이사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용 가방 2개에 필요한 물품들을 미리 담아둔 상태였다. 다만 미리 넣어둔 인스턴트식품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기한이 넘어갈 것 같은 음식은 빨리 소진한 뒤 새로운 것들로 채워두면 좋다는 내용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이달 주말에 예정된 이벤트들(플리마켓이라든가 공원 야간 개장이라든가)을 표로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도 좋았다. 덕분에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한 올해 마지막 벚꽃을 야간에 볼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는데 며칠 전까지 내내 날씨가 우중충하고 비까지 왔던 터라 가봤자 볼만 한 벚꽃이 남아 있을까 싶긴 하다.



마지막으로 이번주 주간 운세까지 재미 삼아 봤는데 나는 이번주 일복이 좋은가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말고 성실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네?(근데 생각해 보면 이건 뭐 당연한 소리 같기도….?)


예전엔 한국에서도 이런 무료 주간지나 일간지를 손쉽게 구해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도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일본의 이런 부분이 번거로울 때도 있지만 가끔 이렇게 반갑게 여겨질 때도 있다.


평소엔 별로 달갑게 느껴지지 않던 무료 주간지가 때로는 이렇게 도움 될 때도 있다니. 앞으로는 받자마자 바로 재활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지 말고 오늘처럼 대충이라도 한 번 훑어봐야겠다.


그나저나 요즘 꾸준히 일본어 상용한자 공부를 해와서 그런가 전보다 훨씬 한자 읽는 게 편해졌다. 

주간지를 그냥 버리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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