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Feb 14. 2024

출산이라는 선택

엄마는 나도 처음이라서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선택을 내리게 된다. 삶의 갈림길에서 내가 어떤 생각으로 무슨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이 내게 보여주는 풍경은 크게 달라진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내게도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크게는 현재 거주 중인 일본에서 아기를 낳을 것이냐, 아니면 친정이 있는 한국에서 낳을 것이냐부터 세세하게는 어떤 병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아기를 낳을 것이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조금씩 배가 불러오고 산달이 다가올수록 ‘어떤 출산을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시기 역시 성큼성큼 다가왔다.


우선 나는 일본에서 아기를 낳기로 했다. 처음엔 조리원 시설이 잘 갖춰진 한국에서 아기를 낳을까 했지만 그렇게 되면 아기가 태어나고도 최소 반년 정도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라나는 매 순간을 남편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조리원 천국은커녕 타지에서 일가친척의 도움 없이 오로지 부부 둘이서 신생아를 케어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였지만 그런 힘든 순간조차 남편과 함께 손 맞잡고 헤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아이를 낳기로 하자 제왕절개는 자연스레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내가 출산하기로 한 병원은 태아가 역아로 있거나 산모에게 고혈압 등 특정 질환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산모가 원한다고 해도 제왕절개를 해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선택지에서 제외된 건 무통 주사였다. 일본도 산모에게 무통 주사를 놔주는 병원이 있긴 하지만 모든 병원에서 전부 다 무통 주사를 취급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처음 다녔던 여성 전용 클리닉은 자연분만 시 무통 주사를 놔주긴 하지만 한 번에 7만 엔, 우리 돈으로 약 70만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내야 했다.


또 다른 산부인과 전문 병원도 무통 주사를 맞을 순 있지만 역시나 비슷한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검진을 할 때마다 예약을 하고 가도 최소 3-4시간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늘 사람이 많고 차로 가도 집에서 약 1시간 정도는 걸릴 정도로 멀었다.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병원은 무통 주사는 맞을 수 없지만, 집에서 차로 10분 이내에 있고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도 갖춰진 3차 종합병원이었다. 여기도 예약을 하고 가도 약 1시간 정도는 대기했다가 진료를 보게 되고, 심지어 입원 기간 내내 가족을 포함한 모든 외부인과의 면회가 일절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서른다섯이라는 내 나이 때문이었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식단도 조절하여 건강하게 몸을 유지해 왔다고 해도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만 서른다섯이 넘으면 ‘노산’으로 분류된다.


당시 나는 만으로 딱 서른다섯이었다. 요즘은 마흔에도 초산인 경우가 많다, 더 늦게 낳는 사람도 건강하게만 잘 낳았다, 등등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모든 ‘좋은 케이스’가 나에게도 해당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없고 입원기간 동안 가족들의 면회도 일절 금지되는 3차 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건 아주 현명한 결정이었다.


아기를 낳기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내가 들었던 말은 늘 비슷했다. 양수도 많고 아기도 잘 크고 있다. 엄마 몸무게도 적당하다. 단백뇨도 없고, 혈당치도 정상이다. 모든 말을 종합해 보자면 나의 임신은 대부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출산 당일에도 자궁문이 다 열리기까지 주치의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것이 교과서에 실린 내용 그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약 8시간의 진통 후 자궁문이 다 열리고 나서부터였다.


“진통이 약하네요. 촉진제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진통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척추가 뽑히고 하반신이 빠질 것처럼 아픈 이 진통이 약한 거라니. 이 이상의 진통을 과연 내가 참고 버틸 수 있을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뱃속의 아기는 도통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약 1-2시간 상황을 지켜보던 의사가 결국 촉진제 투여와 양수를 터트리는 처치를 권했다. 이대로라면 아기의 머리가 산도에 오래 끼어있어 아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내 아이가 힘들 수도 있다는 말에 수긍하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촉진제 투여와 양수 파열이 동시에 진행됐다. 그런데도 내 출산은 너무도 더디게 진행됐다.


“산모님. 이 이상 출산이 길어지면 아기가 힘들 수 있어요. 동그란 컵 같은 도구를 아기 머리에 붙여서 끄집어내는 ‘흡입분만’으로 진행해도 될까요?”


흡입분만은 자연분만 중 출산이 더디게 진행될 때 시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의사는 이게 안 된다면 제왕절개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때가 약 10시간의 진통을 무통 주사 없이 온몸으로 다 겪고, 마지막 힘주기를 시도한 지도 대략 3시간이 지나가던 시점이었다.


1분에 한 번씩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극심한 진통을 3시간이나 참고 버티던 나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자연분만이든 흡입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뭐든 상관없었다. 그저 아기가 건강하게 잘 태어나고 내가 느끼는 이 죽을 것 같은 통증도 얼른 사라질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었다. 의사는 내게 선택권을 주는 듯 말했지만 그땐 이미 내가 선택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기 나옵니다!”


다행히 흡입분만을 시도한 지 얼마 안 가 드디어 아기가 나왔다. 그런데 아기가 너무 조용했다. 몸도 축 늘어지고 움직임도 거의 없어 보였다.


‘왜 안 울지? 우리 아이는 좀 조용한 편인가?’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던 내게 의사의 설명을 듣고 온 남편이 말했다. 아기가 가사(仮死) 상태로 태어났다고. 출산 시 신생아의 상태를 보고 점수를 매기는 ‘아프가 점수’가 1점밖에 되지 않았다고.


아프가 점수는 출산 후 신생아의 외모와 피부 색깔, 맥박 수, 반사 흥분도, 활동성 등을 보고 매기는 점수로 전체 수치의 합이 10점 만점이다. 대부분의 신생아는 생후 1분의 아프가 점수가 8점에서 10점인데 비해 우리 아기는 겨우 1점이었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게 아니라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반 기절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다행히 빠른 조치 덕분에 5분 뒤 다시 재봤을 땐 8점으로 점수가 올라갔다. 스스로 호흡도 하고 미약하게나마 울기도 했다. 하지만 태어난 직후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신생아 집중 치료실에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단다.


의사의 말을 전하는 남편의 얼굴은 담담했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내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 주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남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남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눈에는 이미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내가 힘을 잘 못 줬기 때문일까? 자연분만이 아니라 그냥 제왕절개를 하는 게 나았을까? 괜히 일본에서 낳았나? 한국에서 낳았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출산은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설사 내가 무통 주사를 맞으며 자연분만을 했던 부분 마취를 하고 제왕절개를 했던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낳았든, 모든 게 지금보다 잘 흘러갔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나를 책망하게 됐다. 내가 잘못해서 아이가 힘들었다고. 내가 못나서 아이가 괴로웠다고. 끊임없이 드는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좀 먹어갔다.


그렇게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병실에서 지낸 지도 어느덧 이틀이 지났다. 다행히 아기의 회복이 빨라서 내일이면 아기와 함께 같은 병실에서 지낼 수 있었다. 때마침 대기를 걸어둔 1인실도 자리가 났다. 그전까지는 1인실이 자리가 없어서 4인실에서 지내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개인물품을 가방에 정리하던 바로 그때, 공간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되는 침대 앞 커튼이 촤르륵 열렸다. 그리고,


“여기 밥 놓고 갔다고 하던데 혹시 보셨....어? 김 상?”


낯익은 얼굴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게 '임신'이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