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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Feb 21. 2024

출산이 맺어준 인연들

엄마는 나도 처음이라서

일본에서 아기를 낳기로 하고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조리원 동기’를 만들 수 없다는 거였다.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육아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엄마에게 있어(특히 나 같은 초산모에게는 더더욱)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소중한 존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E상도 바로 그런 존재 중 하나다.


E상은 내가 출산한 병원에서 주최한 ‘엄마 교실’에서 처음 만났다. 엄마 교실은 출산일이 임박한 임산부와 그 가족(주로 남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교육으로 참가자들은 조산사의 주도하에 교육이 시작되기 전 모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E입니다. 초산모이고요, 7월 말 출산 예정이에요. 아이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며 꾸벅 인사하는 E상은 눈 한쪽이 부자연스러웠다. 초점이 불분명하고 눈동자의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E상은 어렸을 때 큰 병을 앓고 나서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한쪽은 거의 안 보여서 특수 렌즈를 끼고 생활 중이라고 했다.


그러한 외모적인 특징 때문에 기억에 남았던 E상이 내가 출산 후 입원한 병실에 먼저 들어와 입원 중이었다.


“어머 너무 반가워요, E상! 그런데 아직 출산 예정일 좀 남지 않았어요? 왜 벌써 입원하셨어요?”


커튼 뒤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웃고 있던 E상이 반갑다가도 순간 걱정이 됐다. 내가 아기를 낳은 건 6월 말이었다. E상의 예정일은 7월 말이었으니 약 한 달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상황. 미리 입원을 했다는 건 E상 본인 혹은 태아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아래쪽으로 머리를 돌리는 침 치료를 받고 있어요.”


역아의 경우 보통 제왕절개로 출산하게 되는데 E상은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서 침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그냥 포기하고 제왕절개 하라고 권했지만 E상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다들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건 알지만 그래도 괜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물론 하다 하다 안 되면 당연히 제왕절개를 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주위 사람들 말에 등 떠밀려서 수술하는 건 싫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E상의 말에 나는 속으로 놀랐다. 그동안 일본에서 살며 만났던 일본인 중에서 이토록 자신의 의견을 확고하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E상을 안 좋아하려야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E상은 예전에 한국어 공부를 좀 했다고 했다. 자신이 아는 한국어 단어와 문장을 더듬더듬 말하며 내게 이것저것 먼저 말 걸어와 준 E상 덕분에 나는 가족의 면회가 일절 금지되었던 5박 6일이라는 입원 기간 동안 전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친해진 E상 덕분에 S상도 알게 되었다. S상은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 때문에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기로 하고 미리 병원에 입원해 있던 분으로 나와 E상이 처음 만났던 엄마 교실에서 함께 교육을 들었던 분이기도 했다. 딱 두 시간짜리 교육에서 만난, 어쩌면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인연들이었지만 ‘출산’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E상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그룹 채팅창에서 우리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물론, 퇴원 후에도 틈만 나면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가 찍은 사진(주로 아기 사진)을 공유했다.


“너무 힘들지만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또 힘이 나요!”


S상은 아기가 품에서 떼놓기만 하면 잘 자다가도 매번 깬다고 푸념하면서도 아기가 너무 예뻐서 모든 게 다 용서된다고 했다. 당시 나는 아기가 모유를 잘 못 먹는 게 최대의 고민이었는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S상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기도 모유는 거의 못 먹지만 연습하듯이 조금씩 먹이다 보면 점점 먹는 양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모유 먹이다가 안 먹으면 그냥 분유 주면 되죠! 지금은 우리도 아기도 다 연습 중인 거예요! 그러니까 기운 내봐요, 우리!”


이렇듯 S상의 장점은 엄청나게 긍정적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출산 후 체력적인 한계는 물론 정신적인 한계에까지 몰려 엄청나게 우울했을 때 나는 S상의 에너지 넘치는 말들에 자주 위로받았다.


M님도 임신과 출산으로 맺어진 고마운 인연 중 하나다. M님은 내가 지금 사는 도시에 와서 처음 사귄 한국인이자 나와 출산일이 하루밖에 차이 나지 않는 분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일본 규슈의 지방 도시이다. 그러다 보니 도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에 비해 한국인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심지어 나와 출산일이 비슷한 산모는 더더욱!)


그런데 작년에 남편이 주재원 발령이 나서 내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 오게 됐다는 M님의 글이 내가 가입한 네이버 맘카페에 올라왔고, 그 글을 계기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같이 아기도 돌보고 싶었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차가 없으면 이동이 매우 불편해서 임신 중에는 물론이거니와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도 직접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실제로 만난 건 딱 두 번밖에 없지만 나는 M님의 아기가 언제 뒤집기를 했고, 무슨 장난감을 가장 좋아하며 언제 이가 났는지까지 다 알고 있었고, M님 역시 우리 아기가 오늘은 몇 시간을 잤고, 모유는 얼마나 먹었으며 언제 처음으로 옹알이를 했는지까지 다 알고 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밤에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하루종일 카톡을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각자 아기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E상도 S상도 M님과도 예전만큼 자주 연락하며 지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기가 2시간에 한 번씩 깨서 젖 달라고 보채던 그 암흑 같은 신생아 시기에 힘조차 잘 들어가지 않는 손목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부여잡고 열심히 화면을 두드렸던 이유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누군가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공감과 위로가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아기를 낳으면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본인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그 기간이 짧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두 달이 돼도 세 달이 돼도 컨디션이 잘 회복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엄마니까 그 정도 힘든 건 당연하지’, ‘엄마가 그러면 애기는 어떻게 해’와 같은 날 선 말들이 아닌, ‘오늘도 육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 또한 지나갈 거예요. 우리 같이 힘내봐요’와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다.


나에겐 ‘조리원 동기’는 없지만, 가족도 친구도 때로는 나마저도 알아주지 않는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해 주는 ‘랜선 육아 동지’들이 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나의 랜선 육아 동지들의 하루가 누구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기를 낳고 나서야 가족을 제외한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출산이 내게 가져다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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