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을 멈추고 오늘에 머무는 법
새해가 된 지도 어느새 열흘이 지났다. 그 사이 일본에 놀러 온 친정엄마와 4박 5일간의 짧은 듯 짧지 않은 일본 국내 여행을 하고 이곳에 와 친해진 한국인 육아 동지의 집에 놀러 가 함께 스시를 시켜 먹으며 육아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진한 토론을 나누기도 했다.
다시 돌아봐도 충실하게 현생을 살았던 그 열흘동안 내 원고는 멈춰있었다. 아니, 멈춰 세웠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나는 이번 연말연시 연휴기간 동안은 글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줄줄이 잡혀있는 굵직굵직한 일정들 사이사이에 얼마든지 짬을 내면 글을 쓸 수는 있었지만 그랬다간 글을 쓰지 않는 다른 시간들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살면서 써지는 글'을 좋아하는 나에게 글쓰기와 삶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글보다는 '삶'이 더 우선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먼저 좋은 삶을 살라던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내 삶을 잘 살아야 글도 나온다는 마음으로 나는 열흘의 멈춤을 택했다.
그러다 어제 투고를 염두 중인 출판사에서 투고 관련 안내문을 올린 인스타 피드를 확인했다. 에세이만 전문으로 출간하는 그곳은 벌써 2027년 초까지 출간 일정이 꽉 차 있고 구두 계약까지 포함하면 2028년 초까지도 출간 일정이 차 있다고 했다.
그걸 본 순간 아직 채 완성되지 않은 내 원고를 어서 빨리 다듬어서 투고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일었다. 아직 채 열 편이 안 되지만 일단 출간 기획서를 쓰고 지금까지 써온 꼭지들을 수정해 보자는 데까지 미친 생각을 나는 급하게 멈춰 세웠다.
급하게 해서 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글은, 특히 출간용 원고는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해서는 안 된다. 그건 지금 쓰고 있는 원고에 대해서도, 그걸 읽어주길 바라는 독자들에게도 예의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최애 출판사의 향후 출간 계획이 아니다. 그 원고를 쓰고자 마음먹었던 최초의 동기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묵묵히 적어내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원고는 완성될 것이고 출간도 할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믿고 격려하면서.
어쩌면 현재에 집중하는 삶은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실시간으로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두서없이 이것저것 해치우며 사는 삶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에 나의 모든 시간과 마음을 다하는 삶.
그렇게 사는 삶은 아마 좋은 삶이 될 것이다.
사는 대로 받아 적기만 해도 누군가에게 읽힐 가치가 있는 글이 되고 책이 되는 그런 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