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첫사랑의 주인공

아직 이름 없는 출판사의 첫 투고 원고

by 코붱


내게 원고를 투고한 작가님과의 인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몇 주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주말의 이른 새벽.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난 나는 우리 출판사의 첫 책이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내 원고를 어떻게 고쳐봐야 하나 고민하며 이런저런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머리나 좀 식히자 싶어서 들어온 브런치에서 엄청난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소재에 누구도 쉽게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도 재밌게 쓰시는 분의 작품을.


앉은자리에서 그분의 작품을 거의 다 읽은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브런치의 제안하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쓴 제안 메일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작가님 작품 너무 재밌다. 혹시 책 계약이 되어 있느냐. 내가 출간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그럴 능력도 경험도 없어서) 그럼에도 작가님의 작품이 너무 재밌어서 꼭 책으로 소장하고 싶다.

나는 에세이도 쓰고 번역서도 낸 사람인데(지금 생각해 보니 출판업계에 조금이나마 발을 걸치고 있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듯) 혹시 작가님께서 아직 출간 계약 전이라면 출간 기획서 작성을 도와드리거나 작가님의 책과 결이 맞을 것 같은 출판사를 소개해주고 싶다.


지금 다시 봐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메일을 썼는지 도통 알 수 없다만 그때의 나는 그 메일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 때 브런치에서 좋은 글을 찾아 낭독하는 오디오 형식의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일(feat. 글 읽는 밤)을 했던 사람이자 최근까지도 여러 번역서들을 읽고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보는 일(feat. 검토서 작업)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건 된다! 싶은 작품에는 속된 말로 한순간에 눈이 돌아가버리는 것이다.


그 작품은 답도 없는 내 원고에 침침해져 있던 내 눈의 시야를 한 번에 탁 트이게 만들어줬다. 이건 된다. 무조건 된다!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그 새벽에 미친 듯이 그분의 글을 다 읽고 저런 메일을 보낼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 뒤, 작가님의 답장이 왔다. 자존감 올라가는 메일 너무 감사하다고. 아직 계약은 안 되어 있지만 올 한 해는 긴 호흡으로 글을 써나가고 싶다고.


나의 제안 같지 않은 제안 메일에도 이토록 다정하게 답장을 보내주시다니. 작가님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그 작가님 자체에 대한 애정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렇게 약 몇 주간 나는 작가님의 작품을 즐겁게 읽어 나갔다. 평일 주 5일을 연재해 주시는 작가님의 엄청난 연재 주기는 작가님의 글을 목 빠져라 기다리는 나에겐 가뭄에 내리는 단비이자, 육아의 힘듦도 한방에 날려주는 정신적 에너지 드링크였다.


그러다 현재 연재 중인 작품을 출판사에 투고 중이시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또다시 나의 이 몹쓸 오지랖이 제멋대로 발동해 버렸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른 제목(책 출간 시의 제목)을 댓글에 쓰며 이런 건 어떠냐고 묻고 작가님의 원고와 유사한 책은 이거 같다는 둥 묻지도 않은 것들을 혼자 주저리주저리 댓글에 적었다.


작가님께서는 그런 내 댓글에도 친절히 답변을 달아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갑자기 내 메일함에 작가님의 원고투고 메일이 온 것이다.


아직 다른 출판사로부터 답변이 오길 기다리고는 있지만 내게도 정식으로 원고를 투고하고 싶다는 작가님의 메일을 읽으며 나는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정말 애정하는 작가님의 귀한 작품이 아직 이름조차 정하지 못한 우리 출판사의 첫 책으로 나와도 정말 괜찮을까? 아직 제대로 된 책 하나 만들어보지 못한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의(그것도 애정해 마지않는 작가님의) 작품을 책으로 만들 자격이 있나?


그런 생각으로 차마 계약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나는 더듬더듬 답장을 써나갔다.


보내주신 메일 보고 놀라면서도 감사했다. 다만 내가 과연 이 작품을 좋은 책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안 선다.

지금까지는 독자로써 작가님의 작품을 즐겁게 읽기만 했지만 이제는 제작자의 마인드로 작가님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연락드리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아직 우리는 계약 여부를 결정짓지 않았다. 다만 나는 이미 해보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상태다. 작가님의 메일을 받고 마음 한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점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격이 없다느니 능력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건 이 책을 제작하는 데에 따른 금전적, 시간적, 체력적 부담을 지고 싶지 않은 핑계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핑계만 대다간 평생 책은커녕 책 쪼가리 같은 것도 하나 만들지 못할 거라고.


해보지도 못하고 접느니 일단 저지르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편이 낫다.


우리의 만남이 끝내 잘못된 만남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날 밤 자기 전에 책장 정리를 했다.


내 책장의 1열을 채우고 있던 번역과 주식 관련된 책은 책장의 제일 밑칸으로 내려갔고 책장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꽂혀있던 글쓰기, 책 쓰기 책들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차곡차곡 꽂아놓았다.


다음 날 아침, 새 단장이 끝난 책장 1열에 꽂힌 책들을 하나씩 읽어 나갔다.


첫사랑을 만난 사춘기 소녀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내게 온 이 원고를 어떻게 하면 더 근사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곰곰이 고민하면서.







출판사 이름 추천받습니다......(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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