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출판사 이름은 정했냐고요?

출판사를 차리긴 했는데요

by 코붱

가끔 브런치나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독자분들(내지 출판 업계 관계자분들)이 내게 묻곤 한다.


"필명이 무슨 뜻이에요?"


코붱이라는, 평소에 자주 접할 수 없는 필명의 뜻이 뭔지 궁금해하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없는 쥐구멍이라도 파서 숨고 싶을 정도로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참 민망한데) 코붱은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현 남편)가 나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작은 부엉이(일본어로 '코(小)'는 '작은'이라는 뜻)라는 뜻으로 눈이 큰 나를 보며 부엉이를 닮았다면서 남자 친구가 지어준 별명을 필명으로까지 쓰게 된 케이스.


여기까지 말하고 나면 다들 반응은 비슷했다. '아.. 그러시구나.' 혹은 '어... 그런 뜻이었군요' 등등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주로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별생각 없이 지어 보이는 필명이니까 딱히 뭐라고 더 반응해 주기가 어려웠을 테지.


물론 '실명으로 글을 쓰는 건 무섭고 자신이 없어서 그 당시 이름보다 더 자주 불리던 애칭으로 필명을 정했다'라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이유일 뿐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또 '아... 그러시구나.'라는 반응 외엔 딱히 재미도 감동도 없는 그저 그런 필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출판사를 차리고 난 뒤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바로 이름이었다.


이번엔 무조건 좋은 이름을 지어야지. 너무 뻔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리 출판사의 결을 한눈에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을 짓자.


그런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름을 떠올리며 고군분투했던 지난 2주간의 고민 끝에 나온 여러 후보들을 하나씩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첫 번째 후보 - 마음자리


당시 기획하고 있던 우리 출판사의 첫 책이 될 뻔한 내 원고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성 에세이가 될 예정이었기에 떠올려본 이름이었다.


'마음이 머무는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라는, 나름 그럴싸해 보이는 캐치 프레이즈까지 정하고 나서 주변 지인들에게 어떤지 물어봤다가 돌아온 답 중 하나.


"언니.. 근데 복음자리라는 회사가 생각나요."


복음자리는 1976년에 김수환 추기경이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위해 세운 공동체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대표 과일 가공 전문 브랜드라고 한다. 주로 잼 종류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고.


아주 좋은 일을 하는 회사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 회사는 출판사다. 우리 이름을 보고 책이 아닌 잼을 먼저 떠올리면 곤란하므로 이 이름은 탈락!



2) 두 번째 후보 - 다음문장


나는 삶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생각해 본 두 번째 이름.


'인생의 다음 문장을 잇게 하는 책'이라는 의미를 담아지어 봤는데 이걸 본 남편이 그런다.


"감성 에세이만 팔 것 같은데?"


처음엔 에세이 위주가 될 것 같긴 하지만 나중엔 자기 계발서까지 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이것도 탈락!



3) 세 번째 후보 - 길목 출판사


두 번째 이름 후보였던 다음문장의 의미를 살리면서 결은 좀 다르게 해서 지어본 이름.


자기 계발서와 실용서를 주로 출간하는 길벗 출판사가 떠오르는 이름이긴 하지만 '인생의 길목에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보여주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라는 의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 끝까지 고수했던 이름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걸로 출판사 등록까지 하기 직전까지 갔는데..........!!!


.... 이미 사용 중인 이름이었다.


https://book.mcst.go.kr/html/main.php

(막간 정보 공유 - 출판사 등록을 하려면 아직 사용 전인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이 사이트에서 대한민국에 등록된 모든 출판사의 이름을 조회해 볼 수 있다.)



여기까지 오자 이제는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그 뒤로 '사잇길 출판', '이음 출판' '이음길 출판(이건 출판사는 없었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교육회사가 있었으므로 패스!)' 등등,


삶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가 한눈에 보일 수 있는 이름을 찾기 위해 여러 날을 씨름했다.


그러다 문득 내 첫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정해진 인생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작일 수 있다는, 세상을 향해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누구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담았던 나의 책.


나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 말고 오직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들고 싶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살짝 방향을 바꾼 이야기. 새로운 생각과 관점을 갖게 해주는 이야기. 정체되어 있는 생각과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은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출판사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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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공개할 예정!

(첫 책이 세상에 나오는 날, 가장 근사하게 공개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아직 출판사 신고조차 안 했다. 이러다 어렵게 정한 이름을 또 누군가한테 뺏기는 거 아닌가 잠깐 불안해졌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럼 좀 어때.

그땐 다른 이름으로 하면 되지!!


나는 이제 안 되는 이유보다 되는 이유를 찾는다. 할 수 없다며 포기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만이 어렵게 시작한 내 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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