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인구 멸종의 시대에 책을 만드는 마음

출판사를 차리긴 했는데요

by 코붱

오늘로 예정되어 있던 작가님과의 미팅을 한 주 미뤘다.


하반기 출간 예정인 원고의 1교 작업을 마치고 작가님의 추가 수정을 거쳐 함께 얘기를 나눠보기로 한 자리였지만, 원고를 직접 출력해 살펴보니 여기저기 손 봐야 할 곳이 생각보다 많아서 일단 혼자서 끝까지 다듬고 싶다는 작가님의 뜻을 존중해 드리기로 한 것이다.


이 원고는 이달 말에서 4월 중에 공고가 올라올 예정인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제작비 지원사업에 응모할 예정이었다. 아직 몇 주 더 시간이 남긴 했지만, 지금 단계에서 수정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마감시한을 못 맞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님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원고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작가다.


출판사는 원고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조언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이 되어 나온 순간, 그 모든 책임은 작가에게 돌아간다. 작가가 만족하지 못한 원고는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된다. 지원사업 마감을 못 맞추더라도.



둘째, 이 원고는 지원사업을 위한 원고가 아닌, 작가가 써낼 수 있는 최고의 원고가 되어야 한다.


애초에 이 원고는 올해 하반기 출간을 목표로 진행 중이었다. 예정대로라면 5월 말쯤 원고를 확정하고 그 이후에 표지 디자인 등을 알아볼 계획이었는데, 제작비 지원사업이라는 변수를 만나 일정이 두 달쯤 앞당겨진 상황이었다.


두 달이나 당겨진 일정 안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건,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무리다. 억지로 밀어붙여봤자 결국 작가도 출판사도 만족하지 못하는 원고가 나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셋째,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않더라도 이 원고라면 된다는 확신이 있다.


얼마 전 스레드에서 왜 1인 출판사를 차리기로 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 돈 몇 백을 태워서라도 이 책은 반드시 세상에 필요한 책이라는 확신이 들어서요. 사심도 한 스푼 섞었고요. 내가 이 작품을 책으로 보고 싶었거든요."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선정되면 좋다. 안 되더라도, 이 책은 낸다. 그게 내가 작가님의 의견을 존중한 가장 큰 이유였다.


독자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지원금마저 포기하는 것이 무모해 보일지 모른다. 실제로 며칠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5년 성인 종합독서율은 38.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40%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성인 단행본을 만드는 입장에서, 제작비 지원사업이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될지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준비되지 않은 원고를, 작가가 생각하는 최고가 아닌 원고를 세상에 내놓는 건 더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경험 없는 햇병아리 출판사 대표의 이상주의적 사고라고 여겨져도 상관없다. 이 생각만큼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동안 놓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발행 예약을 해둔 바로 다음 날, 작가님이 카톡 메시지를 보내왔다.


'검토 완료! 월요일까진 수정해서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 집필 중인 작품 외에 다른 작품을 한 국가 지원사업에 응모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왔다. 이것 역시 책의 제작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인데 선정되면 이것도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괜스레 눈가가 시큰해졌다.


고백하자면 나는 얼마 전까지도 '일이란 원래 하기 싫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출판업에 뛰어든 이후로, 그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여러 번 깨닫는다.


물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이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출판사 일도 하기 싫고 힘든 순간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잘했다고 여기는 순간이 그렇지 않은 순간보다 훨씬 많다. 바로 지금처럼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작가님과 내가 같은 마음으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는 이 일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하기를 잘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평생의 업으로 여겨도 좋을 일을 찾은 사람은 아마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 운을 믿고, 나는 오늘도 기꺼이 고집 센 이상주의자로 남기로 했다.


평소 좋아하는 철학자인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마라.


내 인생의 좌우명이기도 한 이 말처럼, 나는 느리지만 단단하게 세상에 필요한 책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설령 이상주의자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나와 내 작가님들을 믿으며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어갈 것이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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