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차리긴 했는데요
본격적인 표지 작업 의뢰를 하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책을 읽는 일이었다. (feat. 출판을 책으로 배웠어요)
여러 책들 가운데 내가 선택한 책은 아트북스 출판사에서 2015년에 출간한《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이었다.
표지를 직접 제작할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북디자인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 하는 1인 출판사 대표는 표지 제작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서 업무의 효율성을 따지면 굳이 이런 책을 읽을 필요도 시간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자고 마음먹은 건, 뒤표지에 적힌 이 책의 핵심카피 때문이었다. 뒤표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모르면 볼 수 없고,
제대로 볼 수 없으면 말할 수 없다.
이 책의 존재 자체를 모를 때부터 나는 북디자인 책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바로 이 핵심카피가 담고 있었다.
아무리 편집자라도 디자인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 전문가의 손길로 만들어진 표지가 좋은 표지인지 아닌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마치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만 같은 문구를 본 순간, 이 책은 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직감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확신했다. 이 책이 나의 인생책이 되어주리라는 것을.
편집자는 저자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로 풀어주는 사람이다.
-《8p,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아트북스, 2015)》
표지는 책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독자를 위한 공간인 탓이다. 편집자는 이를 명심해야 한다.
-《50p,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아트북스, 2015)》
이 외에도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 안정적인 표지 디자인의 형태와 특징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풍부한 예시는 이 책이 단순한 북디자인 입문서를 넘어 편집자들이 실무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심지어 그 지식이 매우 깊고 풍부한) 실용서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처럼 출판사 근무 경험도 없고, 책을 여러 권 내본 적도 없는 초보 출판사 사장에게는 곁에 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할 필독서였다.
그렇게 일주일 간 이 책을 절반가량 읽다가 우리 책의 샘플북 표지를 직접 만들어보게 되었다.
인디자인을 활용해서 표지를 만드는 것이 북디자인의 정석(?)이긴 하다만, 아직 인디자인은 공부해야 할 게 산더미인 데다가 현재 내 노트북은 램 용량이 딸려서 인디자인을 켜고 끄는 데에만 한나절이 걸리는 터라(조만간 램 16G인 남편의 게이밍 노트북으로 갈아탈 예정) 이번엔 우선 무료툴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표지를 비롯한 여러 이미지를 제작하는 무료 툴을 제공하는 회사는 대표적으로 캔바와 미리캔버스가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선택한 건 미리캔버스라는 회사였다.
예전에 첫 책이 나왔을 때 내가 직접 인스타용 카드뉴스를 제작했을 때도 미리캔버스를 사용해서 인터페이스가 익숙하기도 하고, 표지와 같은 큰 사이즈의 이미지를 직접 설정해서 작업할 때 미리캔버스는 무료버전에서도 가능했지만 캔바는 유료 버전만 가능하다는 것이 내가 미리캔버스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렇게 한 이틀 정도 혼자서 뚝딱거리며 만들어본 샘플북 표지는 아래와 같다.
무료 요소들로만 선택해서 작업했고 디자인의 'ㄷ'자도 모르는 내가 만든 것이므로 퀄리티 면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아주 많지만 작가님과 이런 표지가 되면 좋겠다고 미리 얘기 나눴던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들어봤다.
물론 실제로 출간될 책 표지가 저런 느낌으로 나와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실제로도 이런 귀여운 느낌으로 갈지, 아니면 좀 더 은은한 느낌으로 갈지를 두고 고민 중이다. (디자이너님께 원고를 보여드리고 의견을 구해보고 싶다고 생각 중이기도 하다.)
여러 옵션을 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해나가는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표지에 대해서 공부해 보자고 마음먹고 서툴더라도 실제로 제작해 본 건 엄청 잘한 일이었다고.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결과물이 허접하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도조차 안 했다면 나는 여전히 어떤 표지가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는 센스도, 능력도 없는 허울뿐인 사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참고로 샘플북은 추천사를 부탁드리고자 하는 분들께 참고용으로 드리기 위해 소량만 제작했다. 이 책과 작가님에 대한 소개를 비롯하여 책의 전체 목차와 책 원고 일부(약 30%)를 담아서 약 100페이지 전후 정도 분량이다.
이미 제작은 들어갔고 다음 주쯤 한국의 본가로 책이 도착할 예정이다. 과연 어떻게 나와줄까? 화면에서 본 색감 그대로 잘 구현이 되었을까? 모니터상으로만 봤던 원고가 독자로서도 보기 편하게 잘 편집되었을까?
그런 기대감을 갖고, 나는 나머지 작업을 이어갔다.
바로 정성껏 만든 원고가 비로소 상품이 되어 전국 서점과 독자들의 일상으로 퍼져나가게 돕는 출판 유통의 핵심, 배본사를 결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