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원과 대학병원의 진료 시스템은 참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의원 선생님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중 내내, 저녁에도 오후 7시 혹은 8시까지도 진료를 보시고, 토요일에도 오후 두세 시까지는 진료를 보시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에 비해 대학병원에서는 각기 차이는 있지만 대개 일주일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네 번 정도만 진료를 하고, 토요일에는 돌아가면서 진료를 보거나 혹은 아예 진료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병원 교수는 진료시간이 아닐 때는 한가하게 쉬고 있을까요? 사실 적지 않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는데요. 그럼 제가 외래 진료가 아닐 때 어떤 일들을 하는지, 저의 일상을 살짝 공유해 볼까 합니다. 오해(?)가 풀리기를 바라면서... :)
아침에 출근하면 바로 주말 동안 입원해 계시던 환자들의 회진을 시행합니다. 주로 금요일 경에 수술을 받으시고 주말 동안 회복하셨던 분들인데요. 지난주 수술하셨던 환자분들은 모두 괜찮으셔서, 오늘 오전에 모두 퇴원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컴퓨터 앞에 앉아 다소 차분하게 각종 '학회'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날이네요. 학회에서 강의할 내용에 대해 논문을 검색하고 읽거나, 행사 준비와 관련된 실무를 하거나, 이외에 학회에서 맡고 있는 업무들을 처리합니다. 오늘은 지난 주말에 개최했던 연수강좌와 관련한 정산 처리, 제가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학술지의 정식 홈페이지 개설, 연구회 온라인 모임 공지, 다른 교수님들이 쓰신 논문의 심사 업무 등등이 있네요.
오후에는 내일 수술할 분들이 입원하십니다. 따라서 오후 4시경 환자분들을 만나 뵙고, 내일 수술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가능한 합병증 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직접 설명드리는 회진 시간입니다.
병원별로 좀 다르겠습니다만 대개 대학병원에서는 각 교수들이 수술하는 요일이 정해져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화요일인데요. 아침 8시부터 첫 수술이 시작하여 오후 4시 정도까지 적으면 7~8건, 많으면 10건 이상의 수술을 진행합니다. 특히 학생들이 수술을 많이 받으러 오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되면, 하루에 수술을 15건 이상 하는 날도 있답니다. 이런 날은 정말, 저녁에 퇴근하는 대로 바로 쓰러져 자기 일쑤이죠.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날입니다.
화요일에 수술받으신 많은 환자분들의 회진을, 수요일 오전에 시행합니다. 제가 맡고 있는 분야인 코 수술은 사실 수술 다음날 퇴원하실 수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아침에 경과 관찰을 하고 간단한 주의사항들을 알려 드리고 바로바로 퇴원하실 수 있도록 안내드립니다. 그러고 나서 연구실로 돌아온 후, 그럼 오전에는 또 무엇을 할까요?
요즘은 많은 교수들이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국가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료하고 있는 질병의 기전을 좀 더 자세히 밝히기 위한 연구라든지, 혹은 질병의 진단이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기를 개발한다든지... 각자 자신의 관심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국가에 직접 제안하고, 연구비를 수주받아 연구를 수행합니다. 물론 교수가 연구비를 신청한다고 국가에서 모두 지원하지 않습니다. 사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 기본적으로 1:5 이상, 심하게는 몇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연구비를 수주할 수 있습니다. 국가 연구비 자체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돈이다 보니, 우수한 연구에 연구비를 주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연구비를 수주하면, 연구원을 고용하고 연구 장비와 기자재를 구입하여 연구를 진행하게 되지요. 연구원들과 진행 상황이라든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저는 주로 수요일 오전에 갖는 편입니다. 제 연구실에는 박사님 한 분, 연구원 선생님 두 분, 그리고 임상 코디네이터 한 분 등 네 분의 연구원이 소속되어 있는데, 각자 맡은 분야를 진행해 오면 오전에 모여서 결과들을 토론합니다.
오전에 회의를 마치고 나면 오후에는 외래 진료를 보게 되네요. 연구 진행은 연구원들에게 맡기고, 의사의 본업인 외래 진료에 충실합니다.
저희 과에서는 목요일 오전 7시부터 교수와 전공의들이 모두 모여 환자 증례에 대해 토론하고 최신 논문을 함께 읽는 증례 토론을 매주 진행합니다. 그래서 목요일이 가장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이지요. 증례와 논문에 대해 토론하면서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최신 지식을 알려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날입니다.
목요일은 제가 종일 외래를 보는 날입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진료를 보는데요, 얼핏 생각하면 개인의원에 비해 시간이 적으니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은 개인의원에서 진료하다가 차도가 없어서 오시는 환자가 많고, 각종 검사 및 수술에 대한 설명들도 많아 환자 한 분당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루 종일 적게는 70명, 많게는 90여 명 환자를 보고 나면 저녁때쯤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날도 종종 있답니다.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많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만, 각종 학회나 공식일정 같은 일 때문에 외부로 출장을 나가야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학회 구성원들끼리 실제로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거나, 다른 대학의 대학원생 논문 심사 때문에 출장을 간다거나 등등...
이러한 정규 일정 이외에, 집에서 쉬다가도 갑자기 병원에 나와야 하는 응급 상황이라는 것이 늘 생기기 마련입니다. 갑자기 위중한 환자가 응급실에 온다거나, 다른 병원 혹은 우리 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의 경과가 좋지 않다거나... 물론 이런 환자들을 우선 즉시 진료하기 위해 당직 전공의 선생님이 있지만, 상태가 좋지 않거나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교수가 바로 병원으로 와야 하겠지요.
진료시간 이외에 대학병원 교수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다소나마 궁금증과 오해(?)가 좀 풀리셨을까요? 앞으로는 이러한 일정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