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를 보고
주인공이 시내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나를 울린 영화.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곳은 열아홉까지 전주에서 자란 내가 웃고 놀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실화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미리 눈물이 났다. 그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소희>는 2017년 콜센터 현장실습 도중 실적 압박 등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업계고 3학년 홍수연 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현장실습은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60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법을 어기고 말도 안 되는 계약을 업체에서 따로 만들어 아이들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장 실습의 실태다. 그로 인해 많은 아이들은 죽어갔다. 산업재해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 노동 착취로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끔찍하게도 다양했다. 그렇게 잊을만 하면 다시 등장하는 이야기에 나는 무뎌졌고, 부끄럽게도 눈을 돌려왔다. 그러던 와중 <다음 소희>는 내게 찾아왔다. 내가 청소년기를 보내고 운이 좋아 떠나온 곳에서 그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
이 작품은 크게 1, 2부로 나뉘어진다. 1부는 소희가 죽음을 선택하게된 이유를 다루며, 2부는 그 이유를 뒤늦게 좇는 형사 유진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영화의 다른 점은 2부이다. 이 작품은 홍수연 양의 사건을 소재로 삼으며, 동일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1068화를 참고한 작품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살펴보면 이 작품이 현실과 무엇이 다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형사의 태도이다. 형사는 이를 단순 자살로 치부하며, 이유를 좇는 것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 말한다. 그러나 유진은 다르다. 유진은 이유를 좇는다.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들이 그랬듯 말이다. 결국은 밝혀진 진실이지만, 유족들은 이 일을 제도권이 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유도 모르는 죽음은 더욱 아프다. 그리고 이렇게 진실을 좇는 행위는 다음 소희가 존재하지 않도록 돕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 <다음 소희>는 해냈다. 앞으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의 보호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1월과 3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것으로 지난달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한 뒤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었다고 한다. [출처: ‘다음 소희’가 해냈다…현장실습생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이렇게 현실과 미디어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변화를 이끄는 작품이 계속 나와야하지 않을까. 사실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면 제도적인 보호는 이미 존재했다고 한다. 취업률을 대학 진학률처럼 취급하는 학교와 교육부의 행태가 관리감독의 소홀을 불러왔다. 결국 제도의 부재보다는 이들의 의도적인 무관심이 아이들의 죽음을 이끈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제도적 진보 뿐만 아니라, 인식의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것이 다음 소희 없는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첨언:
배두나의 형사 역할이 지겹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밀의 숲> 이전에 이 영화를 만든 정주리 감독 <도희야>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정주리 감독이 형사로서의 배두나가 핏하다는 걸 먼저 발견했다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