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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E Jul 27. 2020

잘못된 진심보다 위선이 필요한 때

넷플릭스 시리즈 〈더 폴리티션〉을 보고

끔찍한 한 달이었다. 한국에 대한 남은 기대는 충분히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부족했나 보다. 총선 결과에 대한 실망에 이어, 한 달간 이 나라의 정치계는 상상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였다. 물론 나쁜 쪽으로 말이다. 안희정은 모친상을 겪으며, 같은 정당에 속했던 정치인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고 대통령은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적힌 화환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원순 서울 시장은 자신의 비서에게 성추행을 저지른 것이 세상에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선택했고, 이에 또다시 정치권은 위인을 잃은 양 굴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


일찍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안희정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느꼈던 감정은 개인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이었지만, 그가 감옥에 간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정치권에 펼쳐지는 대단한 남성 집단의 끈끈한 연대에 대한 감상은 절망에 가깝다. '그'들만의 리그의 굳건함은 성범죄 이력 따위로는 깨지지 않나 보다.


이 시리즈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는 주인공 페이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미국의 대통령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즌 1에서는 학교의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분투를 하고, 시즌 2에서는 뉴욕 시의 상원의원이 되고자 분투한다. 현실 정치, 그것도 몇십 년째 콘크리트 지지층을 유지하며 자리를 보전 중인 디디 스탠디시가 그의 경쟁자가 되자 그는 '전략적'으로 그녀가 얻기 힘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환경 정책을 내세운다. (디디를 비롯한) 기성세대가 망친 지구를 살리겠다는 것이 페이튼의 약속이며, 그는 발품을 팔아가며 캠페인을 통해 자신의 이념과 정책의 차별성을 홍보하고자 노력한다.

 

지금 환경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전략과 그에 따르는 행동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즌 2의 5화 '유권자'편을 보면 왜 환경을 선택했냐는 지지자의 진지한 물음에 환경 문제에 감명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표를 얻기 위한 마음도 있었다고 페이튼은 솔직하게 말한다. 만일 디디를 이길 수 있는 아젠다가 다른 것이었다면 다른 것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환경에 대한 뜻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심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분명 젊은 세대의 표를 얻기 위해 환경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는 척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 나쁜가.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사실 안희정과 박원순의 문제도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남성 정치인들의 페미니스트 선언을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나는 그 선언이 진심이길 바란 적은 없다. 문제는 말로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관련 정책을 개발하는 데 힘을 쓰기는커녕, 동료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하며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선언을 무화시켰고, 문제가 밝혀진 이후에도 대가를 치르기는커녕 부적절한 처신으로 자신을 외려 피해자로 포장했다.


그리고 동료들은 우습게도 그들의 쇼에 동참하고 있다. 물론 과거의 동료로서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 또는 그의 죽음이 안타까울 수 있다. 그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을 테다. 그러나 나는 전혀 당신들의 진심이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정치는 보여주기가 거의 전부 아닌가. 그러니 제발 당신들의 애도는 숨어서 해달라. 드러나는 이상, 당신들은 그들의 범죄 사실에 동조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죽은 이의 다른 업적들을 언급하며 그의 진정성을 그만 언급해달라. 행위보다 중요한 진정성은 없다.


당신들이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받고 싶다면 달리 말해 2030 여성 지지층이 빠질까 두렵다면,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를 내달라(21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피해자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조문을 거부한 국회의원은 정의당의 소속 의원 두 사람뿐이며, 이들은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이 위선이어도 상관없다. 그런 위선이 성추행 의혹을 묻는 질문이 예의가 아니라며 버럭 하는 한 의원의 진심보다 나에게는 훨씬 큰 의미를 가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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