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영화제 영화 <파기상접> 관객과의 대화
아픈 과거를 들여다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파기상접: 깨진 그릇 붙이기 Kintsugi>의 소재가 되는 사건은 한 학교에서 벌어진 권력형 성범죄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현재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사건에 주인공은 그 시간을 되짚어 볼 용기를 낸다. 작품은 익명의 대자보로 시작된 투쟁의 행보를 따라가며 진행된다.
아래의 질의응답은 여성인권영화제의 관객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Q. <파기상접: 깨진 그릇 붙이기 Kinstgi>라는 제목이 독특한데요. 제목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임지수 감독: 이 영화를 기획할 때, 관련한 책들을 읽으면서 제 경험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리베카 솔닛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이에요. 그 작품에서 상처와 상처에 대한 회복과 수선을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킨츠기라는 기법을 소개하더라고요. 킨츠기는 부서진 그릇을 금과 옻 등으로 수리하는 기법을 가리키는데요. 깨진 그릇이 예전의 온전한 것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오히려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금빛의 반짝이는 무늬를 가지고 세상에 없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그 기법을 트라우마의 회복 과정을 겹쳐 설명한 것이 좋았어요.
그 과정에서 ‘파기상접’이라는 사자성어도 알게 됐어요. 파기상접은 깨진 그릇을 맞춘다는 뜻인데, 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손을 써보려는 모습을 향해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뜻도 함께 내포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제가 싸움을 이어가고 기록해 나가는 일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이 일을 다시금 마주하면서 깨진 그릇을 함께 붙이는 일을 기록해 보고 싶었습니다.
Q. 소재를 다룸에 있어 카메라 앞에 서는 데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임지수 감독: 제 안의 죄책감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저 자신에게 사건과 운동이 괴로운 일이었지만, 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어요. 이제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활동가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는 못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운동과 기록의 과정에서 저의 자책과 검열을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Q. 운동이라는 건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어떤 원동력이 필요하고요. 그 원동력이 어떤 것이었고, 지금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남아름 출연자: 저희가 원했던 바를 온전히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운동이 실패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2016년부터 1학년 1학기 때 학생들이 젠더 관련 수업을 필수로 듣게 되었고, 해당 교수가 3개월 정직 이후에 함부로 돌아올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온전한 성공은 아닐지언정, 분명한 성취들을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그 성취를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으려 했어요.
홍다예 출연자: 원동력도 중요하지만, 쉬고 싶을 땐 쉬었다가 힘이 조금 남을 땐 힘을 냈다가 하는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운동 자체도 중요하지만, 나를 가장 중심에 삼고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슬픔도 힘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어떤 이의 깨진 마음으로 시작된 이 기록은 단순한 슬픔으로 정의될 수 없다. 마냥 눈물을 쏟은 날도 있었겠지만, 손을 잡고 함께였던 그들은 자신들만의 농담과 유머 속에 웃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 희로애락은 스크린 너머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다. 그들의 운동의 역사를 좇으며, 우리는 함께 웃고 운다. 깨진 그릇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무늬를 새겨넣은 감독과 친구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으나, 사람들과 손을 잡고 울고 웃는 이들. 짧은 시간이나마 상영관에서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우리는 공명했다. 깨진 그릇일지라도, 또다시 깨질 그릇일지라도 괜찮다. 우리는 우리만의 무늬를 새겨넣은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 어리석고 아름다운 이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길 바란다.
18회 여성인권영화제
슬로건 : 우리가 행진할 때
기간 : 2025년 6월 25일(수)~29일(일)
장소 : 아트나인
주최 : (사)한국여성의전화
⏩️ 이 글은 18회 여성인권영화제 웹기자단 피움뷰어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