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왜 믿는가

영화 <굿뉴스>를 보고

by SUM

<굿뉴스>는 요도호 사건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다. 1970년, 일본의 적군파요원들은 ‘요도호’라 불리던 비행기를 하이재킹하여 북한으로 향하려 한다. 이를 알게 된 남한의 권력자들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이들의 목적은 평양 대신 김포에 비행기를 착륙시키려는 것. 이를 위해 야욕에 불타는 남한 최고의 관제사 서고명이 투입되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굿뉴스>는 기본적으로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의 믿음을 이용하여 작중의 인물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는 게임을 이어간다. 첫째, 남한의 인물들은 적군파에게 김포를 평양으로 속이고자 한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 위상을 드높이고, 일본이 남한에 빚을 지게 만듦으로써 국가의 원수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전략이다. 둘째, 이들은 이 전략을 행하기 위해 서고명을 이용한다. 그가 관제사로서 행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나, 아무개는 이 일이 차후에 출세의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고명을 속이고 설득한다. 변성현 감독의 인터뷰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믿게 하려는 데에는 사람들의 의도가 담겨 있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속이는 행위’보다 ‘믿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 그렇게 서로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속고 속이는 게임은 이어진다. 마지막, 적군파의 무장투쟁 또한 거짓을 기반으로 구성된 행위이다. 국제 사회를 공포에 떨게 한 그들의 움직임은 가짜 무기를 동원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가진 이들이 있다. 적군파의 ‘무장 투쟁’을 믿었던 고명은 승객들을 살리고자 제 한 몸을 바치려 한다. 고명의 용기에 감명을 받은 일본의 차관은 적군파와 동행하여 북한으로 향하게 되고 승객들은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일본은 남한에게 빚을 지게 된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권력자들에게 주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고명에게는 무엇이 남았는가. 그에게 있어 결말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권력을 꿈꾸며 전략을 펼쳤고, 게다가 사람들을 위해 진심까지 쏟은 자에게 남는 것은 없다. 북에 가고 싶은 것만은 진심이었을 적군파의 믿음도 아마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을 것이다. 북한이 행하는 사회주의가 진정한 사회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진심은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 한다.

영화는 ‘트루먼 셰이디’라는 인물의 ‘명언’으로 시작을 열었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그럴듯한 명언에 나는, 아마도 ‘우리’는 속았다. 명언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별뜻이 없어보여도 어떤 명사의 권력에 기대어 믿게 되는 말. 믿음이란 이토록 허망하다.


현대 사회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는 시대다.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 타자를 믿는 일이란 쉽지 않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자의적인 믿음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편향된 믿음은 혐오를 낳고, 혐오는 쉽게 확산된다. 얼마 전 극우 집회를 채운 2030 청년들의 모습을 보았다. 혐중 정서를 부추기는 외침에 불편감을 느꼈지만, 누군가는 새로운 믿음을 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구조적 문제로 기인한 개인의 고통을 사회는 들어주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 속에 '타자'에 대한 미움은 끝없이 자라난다. 이 시대야말로 믿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굿뉴스>는 나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각종 ‘믿음’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결론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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