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선배님 마음 많이 듣고 싶고요.
제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듣고 싶어요.
30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아요.
제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3년 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식을 들었다. 평범한듯 무난하게 큰 욕심 없이 살아왔던 내 인생에 어떻게 이렇게 슬픈 일이 찾아올 수가 있는지. 내가 신앙이 없었더라면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없었을 거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찾아온 큰 질병. 나는 매일밤 등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숨죽여 울었다. 검사 결과가 오기까지 1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리고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 1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 앞에서 최대한 태연한 척 굴기 위해 나는 매일 연기를 해야 했다. 출퇴근하면서 울고 버스 밖 한강을 쳐다보면서 울고 회사 컴퓨터 앞에서 울고 집에 와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면서 보냈다.
몇 명의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내가 해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 죽을 보내주는 친구, 그래도 다 잘될 거라는 위로. 어떤 말들은 고마웠고 어떤 말은 힘들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냥 가만히 있지, 섣부른 위로는 상처가 됐다.
종종 메일을 주고 받는 후배에게 긴 메일을 썼다. 늘 나에게 너무 귀한 마음을 주는 후배. 후배는 내가 알려준 병명의 자료를 다 찾아보고는 내게 현실적인 위로를 건넸다. 신념과 치료효과의 상관관계를 말해주며 나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이후로도 내가 소식을 전할 때마다 후배는 나를 깊이 위로했다. 자신의 어려움은 잠시 접어두고 내 이야기를 들으러 와줬다. 뭐라도 할 수 있다면 언제든 말해달라는 말,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기에 너무 고마웠다. 5년 전 엄마가 쓰러졌을 때, 자기가 며칠 간병해줄 수 있다는 말까지 해줬던 후배. 나라면 그런 말까지는 못했을 텐데. 후배로부터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축하보다 위로를 잘하는 삶을 살고 싶다. 흔하디흔한 말로 하는 위로가 아니라 진짜 위로. 지금 네가 더 힘드니까 내가 달려가겠다고. 필요한 거 말해달라고. 내 힘듦은 잠시 잊어도 된다고. 네게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뭐라도 말해달라는 마음. 후배에게 따뜻한 미역국을 사주고 싶은 주말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