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결국 다 좋아지더라

by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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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쯤인가, 지금은 아빠가 되어 작곡가로만 활동 중인 뮤지션 T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책도 쓰고 음악도 좋고 인기도 좋았던 그는 '학벌' 이슈로 인해 오랫동안 오해 받고 고통 받았다. 당시 나는 연예계 이슈를 다루는 잡지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스타들을 만나 곤혹스러운 질문을 종종 해야 했다.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마무리를 지을 즈음,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힘드셨지만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배운 것들이 있으셨을 텐데요."

"... 물론 있죠. 그래도 그 고통을 겪어야만 얻는 깨달음이라면, 안 겪고 싶네요."


괜히 물었다. 미안했다. 나는 왜 이 질문을 했을까? 아마도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어도 좋은 점이 하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성공한 사람들을 매일 만나는 일을 하면서 - 진짜 성공은 무엇인가, 진짜 행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고민했었다. 뮤지션 T의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왜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이었지만 불쾌한 제스처는 취하지 않았다. 2025년이 된 지금, T는 그때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하다.


"그래도 결국 다 좋아지더라." 2023년 10월, S언니가 내게 해준 말이다. 당시 경주 여행에 갔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사고를 낸 가해자는 무보험자였다. 현장에서는 사과를 했고 경찰도 출동해서 처리를 했지만, 며칠 후 잠적했다. 경찰에게 신분증도 건넸는데 이 사람이 무보험인 걸 현장에서 확인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까. 그래도 크게 안 다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3년 전 너무 힘들었을 때, 나는 상상했었다. 우리 가족 셋이 탄 차량이 사고가 나서 즉사해서 고통 없이 천국에 가면 어떨까.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보니, 이건 생각해서는 안 될 상상이었다. 이 귀한 아이를 두고 내가 어찌.


나는 매일 걱정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보호자의 삶이기에 반은 연기하며 살고 있었다. 괜찮은 척, 씩씩한 척, 태연한 척. 뭐 예능 프로그램을 심취해서 볼 땐 잠시 시련을 잊곤 했지만, 내 정서의 밑바탕엔 늘 걱정과 불안이 있었다.


대학 시절 교회 청년부를 열심히 했다. S언니와 나는 이대 뒷골목에서 쇼핑을 자주 했고 성격이 잘 맞았다. 내 주변에는 "난 다 괜찮아, 네가 좋아하는 걸 선택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는데, S언니는 호불호를 바로 드러내는 편이라 금세 친해졌다. S언니는 쿨하고 털털하고 뭐든지 잘 나누는 사람이다. 언니에게 큰 아픔이 찾아왔을 때, 나는 이 아픔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하나님께 오래 물었다. 언니는 강한 사람이라서 금방 회복한 듯했다.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다.


내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이야기했을 때, 언니가 말했다. "그래도 결국 다 좋아지더라."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내게 했더라면 "야.......... 네가 내 지금 상황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니?"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절교를 했을지도. 하지만 S언니가 해준 말이라서 너무 큰 위로가 됐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그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한 말이라서.


요즘도 가끔 이 말을 떠올린다. 그래도_ 결국_ 다_ 좋아지더라. 뮤지션 T의 말처럼 "그 고통을 겪어야만 얻는 깨달음이라면" 나도 현재의 고통을 안 겪고 싶지만, 일단 어려움이 찾아왔으니. 받아들이고 결국 다 좋아진다는 희망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S언니의 말은 진짜니까 나는 믿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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