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실 때 필요하시면 언제나 연락주세요

by 엄지혜


내가 쓴 책 제목(<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처럼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다. 빈말은 듣기도 하기도 싫어하는 사람, 어쩌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더 많은 사람이다. "봄에 만나요", " 봄에 연락 드릴게요"라고 해놓고 왜 만나자고 하지를 않는 건지, 예전에는 이런 사소한 안부에도 실현 가능성을 따져 읽는 사람이었다.


2023년 가을, 오래 다녔던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 2024년 여름에 백수이자 프리랜서가 됐다. 회사를 옮기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신간을 누구보다 빠르게 볼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 점이었다. 내가 좋아할만한 책들을 골라서 보내주던 편집자, 마케터 분들의 짧은 편지를 받아 보지 못하니 꽤 아쉬웠다. 챗gpt에게 모든 질문을 할 수 있는 시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손편지를 쓰는 업계는 출판계가 아닐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왜이리 다정하고 진국일까. 일로 만난 사이지만 우정을 제법 쌓았다.


"기자님, 지금 어디에 소속되어 일하고 계세요?" 딱 1년 만에 온 연락이었다. "잘 지내냐"는 질문에 솔직한 속내(그럭저럭이요) 대신 "잘 지낸다"고 답했다. 짧은 안부를 주고 받고 내 근황을 말하니 J편집자님은 "일하실 때 필요하시면 언제나 연락주세요."라고 말했다. 언.제.나. 이 말이 어찌나 뭉클하던지.


J편집자님이 오래 전 보내줬던 메일을 찾아 읽었다. “언제나 책에 대한 깊은 호감과 이해를 보여주면서 출판사를 배려했습니다. (중략) 창의적이면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늘 실감해왔습니다. 이른바 'XX 사건'은 과도기에 놓인 우리 사회에서 언제고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입니다. 사건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다면 계속해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내 메일함에서 지울 수 없는 어떤 목록에 속한 편지. 당시는 J편집자님과 그렇게까지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그때도 내게 큰 힘을 주셨다.


곧 새 직장에 출근한다. 얼마 동안은 굳이 내 소식을 전할 생각이 없는데 아마 내 필요에 의해 그간 소식이 뜸했던 분들께 근황을 보고할지도. (물론 나를 환대하리라 확신이 드는 상대에게만) 퇴사한다는 메일, 이직했다는 메일을 받으면 나는 친분의 깊이를 따지지 않고 "제가 도와드릴 일 있으면 편하게 연락주세요"라고 답장을 쓰곤 했는데, 이제 '언제나'라는 부사를 잊지 않고 보태야겠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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