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쓰기만 하면 누가 읽나요?

by 엄지혜
598632519_25281987251429407_1141742356019469891_n.jpg 강릉 테라로사에서


출판계에는 사랑이 많기로 소문난 유명 인사가 한 명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북 토크에는 반드시 나타나고, 각별히 응원하는 책 행사에는 ‘그래놀라’ 선물을 보낸다.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을 위한 간식이다. 글 쓰느라 골머리를 앓는 ‘작가들의 간식’으로 유명한 ‘고마워서그래’ 신두란 사장님은 충남 천안시에서 수제 그래놀라를 구우며, 온라인 주문 고객들에게 항상 손편지를 쓴다. “진짜를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온 세상이 AI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 “느려도 괜찮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두란 사장님에게 물었다. “그 많은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는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틀 전, 안부와 함께 날아온 짧은 메시지는 나를 퍽 감동시켰다. “다들 쓰기만 하면 누가 읽나요?” 책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당신도 긴 글을 써보라는 나의 제안에 일초 만에 날아온 즉답이었다.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겠군요 싶었다.


매년 출판시장은 불황인데 작가 지망생은 늘어난다. 전업 작가를 희망하는 건 아니니 ‘저자’ 지망생일지도. 글쓰기 수업이 이렇게 흥행하고 독서 모임이 부쩍 늘어나는 해가 있었던가. 기록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된 걸까, 자기표현에 대한 갈증인가. 쓰고자 하는 욕망은 넘쳐나는데 읽고자 하는 열의는 왜 줄어드는가. 책을 계속 써도 될까? 누가 내 글을 기다릴까?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아 괴롭던 내게 두란 사장님의 “제가 읽을게요. 써주세요”라는 한마디는 쓰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지 않는 응답이었다.


기자, 에디터, 저자, 강사. 글과 말을 다루는 일을 해오면서 여전히 책무처럼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 독자 감수성을 잃지 않는 일. 어느 작가는 “독자를 과잉 의식하면 자기 글을 쓸 수 없다”고 단언하지만 나는 본디 저자보다는 독자의 입장에 더 가깝다. 쓰는 시간보다 읽는 시간이 훨씬 길고, 타깃 독자가 명확한 매체에서 오랜 기간 글을 썼기 때문이다. 독자를 한 번도 의식하지 않고 쓴 글이 있었던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책 매거진을 만들며 작가를 인터뷰할 때도 독자의 옷을 먼저 입었다. 대다수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을 우선순위에 두고 가장 마지막에 내가 품은 질문을 던졌다. 지난해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한 웹툰 ‘전지적 독자 시점’의 장르는 판타지지만 내 일상을 대입해 보면 이 제목은 다큐멘터리다.


독자들의 리뷰를 샅샅이 찾아본다는 작가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어떻게 읽히는가?’를 유심히 살피며 글을 쓰는 저자들이 좋다. 책이 나올 때마다 독자들을 반드시 대면하고 독자가 더 좋아할 소재, 결말을 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독자가 작가의 세계관을 상상해보듯, 작가도 독자의 내면을 헤아려보았으면 하는 바람은 과한 욕심일까. 독자가 작가에게 하는 말 “제가 읽을게요. 써주세요.” 이 말의 화자와 청자를 바꾸면 “제가 쓸게요. 읽어주세요”가 될까, “제가 들을게요. 말해주세요”가 될까. 쓰는 사람의 이야기는 도처에 넘쳐나기에 읽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많이 발화되고 드러나면 좋겠다.


작가들이 흔히 하는 자기소개 중에 ‘읽고 쓰는 사람’은 있어도 ‘쓰고 읽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선행될 수밖에 없는 건 읽는 일. 어느 누구도 독자로서의 삶을 피할 수 없다. 한수희 작가는 에세이 ‘마음의 문제’에서 “글 쓰는 일을 하는 덕분에 모르는 이들로부터 과분한 호의까지 받고 있었다”고 썼다. 이 문장에 동의하지 않을 작가가 과연 있을까? 읽는 사람이 없으면 쓰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자주 잊는다.


누군가의 독자가 되는 일, 읽는 행위에 힘쓰는 마음. 어쩌면 나를 돌보는 동시에 타인의 곁을 살피는 일이다. 매일 아침 그래놀라를 구우며 손편지를 쓰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북 토크에 조용히 발걸음을 하는 고마운 독자의 귀함을 우리는 더 자주 알아채야 한다.


[혜윰노트] 다들 쓰기만 하면 누가 읽나요?-국민일보

위 매체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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