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알람이 울린다. 3분쯤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인공눈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주방으로 향한다. 전날 밤 믹서기로 갈아 놓은 몽땅주스 한 컵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사과와 토마토, 블루베리, 아몬드를 샐러드볼에 담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스크램블도 후다닥 만들고 투박하게 자른 과일 몇 조각을 입에 쑤셔 넣는다. 10분만 일찍 일어나면 나도 예쁜 그릇에 샐러드를 담아 먹을 수 있는데, 굳이 10분을 더 자고 헐레벌떡 출근 준비를 마친다.
버스를 타면서 코트 주머니를 뒤적여 이어폰을 꽂는다. 유튜브로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새벽 묵상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들을 때도 있고, 팟빵으로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청취할 때도 있다. 두 채널의 공통점은 모두 암 생존자가 진행하는 방송이라는 점. 오디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라 이어폰만 있으면 눈을 감고도 들을 수 있어서 안구건조증 환자에게 최적의 방송이다. 출근길 버스에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설거지를 할 때도 홈트를 할 때도 이만한 친구가 없다.
‘날마다 기막힌 새벽’은 2019년 6월부터 방송되고 있다. 내가 듣기 시작한 건 2022년 3월. 청취자 고민 상담 코너에 사연을 보낸 적도 있다. 2022년 여름이었다. 이미 최선을 다하며 사는 내게 ‘힘들지?’가 아닌 ‘힘드니?’를 물었던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 목구멍을 뚫고 나와 어디라도 털어놓아야 했다. 2019년 4월 폐암 진단을 받고 두 달 후 새벽 영상을 찍기 시작한 김 목사는 “내겐 암이 은사와 같았다. 암에 걸린 목사가 암에 걸린 환우를 위로하니 위로의 힘과 능력이 배나(아니 몇 배나 더 크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팟캐스트 플랫폼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암과 책의 오디세이’는 김새섬 그믐 대표와 장강명 소설가가 일상 수다를 기록하는 오디오 콘텐츠다. 김 대표가 2025년 4월 악성 뇌종양으로 뇌수술을 받고 항암을 시작한 후, 남편 장강명은 “아내의 육성을 많이 기록해두고 싶어서” 매일 15분가량 대화를 녹음해 무편집본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2월 26일 기준 267회차가 올라왔고 오는 6월이면 방송 1주년이 된다. 김 대표는 첫 에피소드를 올리며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의미 있을까 고민하던 중 팟캐스트를 운영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썼다. 매일 산책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 부부의 이야기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교모세포종 유전자 검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느 날에는 책 수다, 또 어떤 날에는 잃어버린 식욕을 찾기 위한 맛집 방문기를 생생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이 방송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었다. 암, 책, 오디세이. 이토록 안 어울리는 세 단어가 있을까. 의학 방송도 아닌데 ‘암’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넣다니. 그런데 생각해볼수록 인간의 생애 같기도 하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불청객(암)을 만나고,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책)으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하는 오디세이(긴 여정).
장강명 작가는 아내의 투병 소식을 전하며 SNS에 이렇게 썼다. “자기효능감을 확보해야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중증 암 환자와 그 가족의 일상은 병원 안팎에서 간청하고 시혜를 받는 일로 채워지더라고요. 그것도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몸이 묶인 채 그러는 기분이 듭니다.”
김 대표와 김 목사는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을 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뜻밖의 질병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일상을 담대히 살아가며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 고맙게도 이 기록은 누군가의 하루를 덜 외롭게 만든다.
몇 달 전 인터뷰를 하다가 명언을 하나 들었다. “그것도 선택이에요.” 내가 겪어야만 하는 질병은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떤 태도로 감당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과장된 씩씩함, 불필요한 비장함, 지나친 자기연민이 전혀 없는 두 방송을 무척 오래도록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