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괜찮습니다

by 엄지혜
464067466_8494126773975385_2220435607367426493_n.jpg 눈물 젖은 우동은 아니고. 한국에서 한참 유행하기 전, 교토에서 먹은 우동.



눈물 수건을 선물 받았다. “울 때 쓰면 좋다”는 편지와 함께. 손수건도 아니고 60수 수건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이 울라는 말인가? “눈물 수건이 요즘 유행이냐?”고 물으니 어느 유튜브 채널에 소개되었는데, 수건을 손에 쥐고 울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기 때문에 울고 싶을 때 챙겨 놓으면 이롭다고 했다.


지난해 나는 얼마만큼의 눈물을 흘렸나. 500㎖ 생수병은커녕 220㎖ 뽀로로 보리차 생수병도 못 채웠을 것 같은데. 퍼뜩 떠오른 건 잠옷 차림에 패딩을 입고 야밤에 집에서 나와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서럽게 운 기억, 같이 밥을 먹던 친구가 눈치챌까 걱정돼 식당 천장을 보면서 눈물을 삼킨 찰나, 4층 예배당에서 찬양을 부르다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옆자리 성도에게 손수건을 건네받은 순간. 부끄러운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려보니 ‘이게 왜 창피한 일인가?’ 싶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 제목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슬픔, 분노, 감동으로부터 흘린 눈물은 스트레스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눈물이 흐르는 순간, 몸은 말없이 신호를 바꾼다. 그저 우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부교감신경계가 작동해 거칠어졌던 호흡은 천천히 가라앉고, 흥분으로 빨라졌던 심장 박동 역시 제 속도를 되찾는다. 그렇게 몸이 먼저 안정을 되찾는 사이, 눈물과 함께 옥시토신과 엔도르핀 같은 따뜻한 호르몬이 분비되며 마음에도 작은 변화가 스며든다. 짧게라도 울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이 조용한 작용 덕분이다.


2026년을 이틀 앞둔 저녁, 첫 산문집을 펴낸 한 작가의 북 토크에 갔다. 자기돌봄과 글쓰기를 주제로 한 행사. 열다섯 명 독자들이 모인 공간에서 작가는 물었다. “다시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언제 어떤 상황에 놓인 나인가요?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50대로 보이는 한 독자는 “간호 고등학교에 입학하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중년 독자는 얼마 전 하늘로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글쓰기 모임을 할 때마다 우시는 분이 꼭 있었다”는 작가의 인사말을 증명하듯 한 독자의 눈물은 우리에게 곧 전염됐다. 행사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초면이었지만 말없이 각자의 정서를 교환했다. 한 시간 전 동료와 엄마 이야기를 나누며 답답함을 토로했던 나 역시 눈물이 자꾸 맺혔다.


행사가 끝나고 눈물을 왈칵 쏟아낸 중년 독자를 화장실 앞에서 마주쳤다. 그와 자리를 함께한 지인이 등을 토닥이고 있었는데, 내 눈엔 한결 후련한 표정이었다. 응어리진 감정을 말로 눈물로 풀어냈을 때, 사람들은 심리적 해방감을 느낀다. 아마 그 독자는 마음의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에세이 창작 수업을 할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꼭 듣는 이야기가 있다. “제가 괜히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서.” “저만 너무 어두운 분위기의 글을 쓰지 않았나 염려했어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무척 큰 용기이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신뢰다. 김소민 작가는 ‘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에서 “분노는 나의 힘, 결핍은 나의 동력, 슬픔은 나의 글감”이라고 말했다. 슬픔은 기록될 때, 고통이 아니라 재료가 된다. 잘 흘려보내야만 내 삶을 잠식하지 않는다.


울음을 참는다는 건 감정을 몸 안에 가둔 채 살아가는 일이다. 슬픔은 붙들수록 무거워진다. 말하지 못한 슬픔, 흘리지 못한 눈물은 우리 몸을 긴장시키고 무겁게 만든다. 울음은 내 감정이 세상과 다시 맞닿는 순간이다. 흘려보내야만 삶이 가뿐해질 수 있다.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새해엔 누구나 잘 울었으면 좋겠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준다. 어쩌면 우는 아이들에게 더 큰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6년에 울려 퍼질 캐럴은 “울면 안 돼”가 아니라 “울어도 괜찮아”였으면 좋겠다.


[혜윰노트] 울어도 괜찮습니다-국민일보

위 매체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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