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by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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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레터(행간과여백)

2024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_한강,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한 달 전 청탁 받은 추천사 원고를 정리하다가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 전문을 읽었다. 10월 10일에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으니 딱 일주일 만이다.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독립서점 ‘책방 오늘’은 당분간 문을 닫았지만, 곧 독자들을 만나겠지. 노벨문학상 열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수년, 아니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한국 출판계의 경사가 부디 작은 출판사, 작은 책방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랄 뿐이다.


한강 작가가 제124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속보를 본 날, 아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터였던 서점을 떠난 지 일년이 지나서일까,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날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어”라고 말하니 “엄마도 만난 적 있는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이윽고 “나도 나중에 노벨상 타볼래”라고 말을 보태는 아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작가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겠지, 하지만 기쁨이 더 크겠지, 동시에 일상을 더 잘 살아가고자 노력하겠지, 얼른 이 환호가 그치고 잠잠해지기를 바라고 있겠지. 혼자 상상해봤다. 기자로 일할 때 여러 기자회견, 간담회를 다녔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질문 하나에 30분 넘게 답하는 저자도 있었고, 숫기가 없어서 모든 질문에 단답으로 대꾸하는 작가도 있었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간담회는 2019년 시인 김혜순이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났던 자리. 한 기자가 “노벨문학상 수상도 기대할만하지 않냐?”는 질문을 하자, 시인은 정색하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벨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냐?’는 물음은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당신은 이제 그만 글을 쓰세요”라는 뜻이다. 생각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을 오늘 이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우리나라 어떤 작가라도 괴로울 것 같다.”


아뿔싸. 기자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도 괴로웠다. 하지만 김혜순 시인의 답을 듣고 후련했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이래서 존재하는구나, 실감했다. 세상에 문학상을 기대하고 글을 쓰는 작가가 있을까. 물론 등단을 염두에 두고 문학상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지만, 쓰고 싶어서 만들고 싶은 세계가 있어서 문학을 쓰는 것이지, 상을 위해 매일 고단하게 책상 앞에 앉는 작가는 없다.


과거에 나왔던, 또 미래에 나올 한강 작가의 모든 책에는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띠지가 붙을 것이다. 벌어진 사실이고 독자들에게는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작가는 점점 더 고요한 시간을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일상을 살피는 균형 감각을 잃는 순간, 그가 지켜낸 문학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을 끊었다는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오늘도 연거푸 마신 나의 커피 두 잔을 떠올렸다. 카페인이 주는 각성 대신 고요하고 다정한 산책을 택한 작가의 신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행간과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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