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동안은 삶을 붙든다

by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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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레터(행간과여백)

2024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어떤 글쓰기는 사람을 살린다.

적어도 쓰는 동안은 삶을 붙든다.”


_은유,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0쪽



책을 덜 읽는 요즘이다.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완전히 망가졌다. 쌀을 씻을 때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생방송 뉴스를 틀어 놓았다. 속보를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주구장창 뉴스를 들었다. 한 사람이 정해진 시간 안에 머릿속에 넣을 수 있는 정보의 양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매일매일 용량 초과의 일상을 살았다. 초등학생 아들의 숙제 공책을 펼쳐 보니 4B연필로 탄핵송을 써 놓았다. 캐롤 “Feliz Navidad” 대신 “탄핵이 답이다”가 울려 퍼지는 요즘, 귀를 자주 닫고 싶었다.


책 대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매주 만나는 글쓰기 수강생 스물세 명의 에세이. 주부, 사진가, 회사원, 출산을 앞둔 임산부, 은퇴 교사, 번역가, 동화작가, 건축가, 대학생 등. 이들의 글을 찬찬히 읽는 순간만큼은 시름이 살짝 잊혔다. 광화문 우동집에서 생긴 일, 스콘 가게 이야기, 퇴사 후 열혈 독서가로 변신한 일상. 나는 빨간펜 선생님처럼 비문을 잡아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강사이기 전에 독자의 눈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좇았다.


하고많은 취미 중에 왜 글쓰기 수업을 택했을까? 글을 써서 이로운 건 무얼까. 나는 밥벌이를 하려고 글을 쓰는데, 그들은 수강료를 내고 과제를 받는다. “수업을 들어야 글을 쓰게 되더라고요.”, “마감일이 있어야 쓴다니까요.” 과제 마감일은 매주 일요일 자정인데, 금요일부터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나는 감탄한다. 이 분들이 작가이어야 하지 않나, 글감이 이렇게 풍성하다니! 나보다 관찰력이 수십 배는 더 좋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쓴다’는 행위가 주는 유익을 따져본다.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드러내 보이고 싶을 때, 억울하고 절망적일 때, 혼자 알긴 아까운 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글을 썼다. 수신인이 없는 글을 쓸 때도 눈에 보이는 독자가 없을 때도 외롭지 않았다. 최소한 내 마음은 알아챘으니까. “적어도 쓰는 동안은 삶을 붙든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 섞인 말이 아니었다.



행간과 여백

-> 돌베개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무료 뉴스레터. 매월 1회, 기고자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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