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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y 20. 2016

뒤집히는 현실

『우는 어른(泣く大人)』  2001년 7월, 카도카와 문고


#읽기 전 유의사항

하나. 어디까지나 이 번역은 번역자의 취미생활의 일부로 스크랩은 허용하지 않아요.

둘. 괄호, 사진+α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넣은 것으로 본문에는 없어요.

셋. "의역"한 부분이 많으므로 연구대상으로 할 경우 직접 본문을 참조해 주세요.


뒤집히는 현실    裏返る現実



현실과 비현실, 

혹은 일상과 비일상은

마치 양말처럼 쓱- 뒤집힐 때가 있다. 


그럴 땐 


방금 전까지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돌연 비현실적이 되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태연하게 현실이 된다. 



그리고 일상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갑자기 비일상적이 되거나,

 

비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당당하게 일상적이 되어 버릴 때가 있다. 

 

이미 이건, 

놀랍다거나 곤혹스럽다는 차원을 넘은 얘기라


어어, 하고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그저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꼭 꿈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현실이나 일상이 쓰윽-뒤집히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초여름, 독일에 갔을 때였다.


쾰른은 오래된, 우아한 마을로

특히 파릇파릇한 신록의 아름다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파릇파릇한 한 잎 한 잎이

바람을 따라 섬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시장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을 매일 아침 산책했다.

색색의 과일들과 야채,


헌 옷과 헌 책,

망가진 장난감,

앤티크 액세서리.


꽃,

식기,

카세트테이프.


눈부시게 맑은 광장을 느긋하게 걸었다.



과일 가게의 뚱뚱한 아주머니도,

벤치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아저씨도,

라디오를 들으며 반지를 팔고 있는 아가씨도,


엄연한 현실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제도 있었고

그저께도 있었다.


내일도 있을 것이고

모레도 있을 테다.


지금은 이 사람들이야말로 실재 인물들로


내게 있어 동경에 있는 모든 사람들-

친구나 가족,

쵸후역(調布駅,동경 게이오선) 앞에서 타코야키를 팔고 있는 아줌마나-

모두 가공의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동경 같은 곳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조차 미심쩍어지는 순간.


어쩌면 다 꿈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북아프리카를 여행했을 때

밤마다 독한 술을 마시고 

다 같이 발리 댄스를 췄다.


허리를 비비 꼬며 몇 시간 동안이나 흔들거렸다.


우울한 기색 따위 한 점도 없이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그때도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달콤하고 독한 술이야말로 현실이라고.

발리 댄스야말로 현실이라고-



이렇게 현실 따위는 정말 바로 뒤집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언젠가 가 보고 싶은 현실이 있다.


그곳에 한 번 가기만 한다면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조금 두렵지만 

줄곧 가고 싶었던 곳.


바로 그곳은 아이디아뜨(iDeath) 근처로

마가렛과 폴린과 인보일이 사는 곳.


그곳에서는 

"어딘가 깨지기 쉬운 미묘한 느낌의 평등이 유지되고 있다".


차갑고 청명한 강이 흐르고(강에는 송어가 산다고 한다)

수박 밭이 있고

강에도 밭에도 다리가 걸려 있다.


다리는 나무나 돌, 수박 설탕으로 되어 있다.


그것이 어떤 장소인지

나도 사실은 모르지만

(만약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리퍼드 브라우티건의 "워터 멜론 슈가"를 읽어요)

꼭 한 번은 그곳에 가보고 싶다. 

맹목적으로 몬테로소*에 가고 싶어 하는 고양이처럼

그곳은 내게 있어 그러한 곳이다.




*이탈리아 북부 리구리아(Liguria) 주에 위치하는 라스페치아(La Spezia) 지방의 자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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