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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Jul 01. 2016

인류의 발자취를 여행하다(1)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교수이자 탐험가인 세키노 요시하루(関野吉晴)를 인터뷰한 것으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하고 싶은 일도 없이 대학에 들어갔지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 자신을 바꾸고 싶었다"라고 하는 그는, 스물두 살 때 처음으로 아마존을 여행. 이후 20년이 넘도록 서른 번 이상 남미를 탐험했고 인류 이동의 종적을 좇아 위대한 여정(The Great Journey)이라고 불리는 3000킬로를 오로지 인력으로 답파. 미지의 무언가를 향한 장대한 탐험은 자신 자신에 대한 성찰의 여행이기도 했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세키노 요시하루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신주쿠에서 츄오센(中央線) 특별 쾌속 전철로 20분 정도.

자연이 간신히 남겨진 주택지의 일각.


현관까지 나와 맞이해 준 세키노 요시하루는 연한 미소를 머금고 묵묵히 슬리퍼를 꺼내 주었다. 조용한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


[과혹한 여행을 계속해 온 탐험가 세키노 요시하루]라는 경력 때문에

강인하고 늠름한, 호쾌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지만


정작 눈앞에 서 있는 그는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해서 호쾌함보다 오히려 섬세함이 느껴졌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만이 그가 살아온 세월을 엿보게 했다.


1949년.

베이비 붐이 한창이었던 그때(단카이 세대塊の世代*) 태어났던 그의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은


1968년 재수를 해서 히토츠바시 대학(一橋大学) 법학부에 입학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어요.

법학부에 간 것도 수학은 못하고 문학에도 취미가 없어서
남은 선택지가 그곳밖에 없어서였죠.

그저 집에서 나가고 싶었어요. 부모님 곁을 떠나고 싶었죠.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집에서 쫓겨나더라도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집에서 부쳐주는 돈도 안 받고 독립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토라상*으로 유명한 시바마타(柴又)* 근처,

동경의 변두리에서 남자만 다섯 명인 5형제 중 막내로 자란 세키노


당시 집단 취직으로

공장 기숙사에 들어가 있었던 아이들이

부러웠다고 한다.


부모 곁을 떠나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단다.




*단카이 세대(団塊の世代):1948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사람이 많아서 연령별 인구 구성상 두드러지게 팽대한 세대. 단카이는 인구 규모가 급격하게 팽창된 세대이기 때문에 진학ㆍ취업ㆍ결혼ㆍ주택 문제 등에 있어서 심각한 경쟁상황을 겪었지만, 풍부한 노동력으로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토라상(寅さん):오랫동안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영화 [남자는 괴로워]의 주인공 토라 아저씨(?)

*시바마타(柴又):도쿄와 치바의 경계선에 있는 동네로,  [남자는 괴로워]의 주인공 토라 아저씨(?)의 고향으로 등장해서 더욱 유명해졌다."토라 아저씨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저기 드라마의 흔적이 남아있다.



누구나

집을 나와 혼자 살게 되면


어느 정도의 불안과

그것을 웃도는

부모의 눈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느끼는 법이지만


그보다 훨씬 강렬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교사인 아버지와 일본 옷 재봉 선생님이었던 어머니는

아이들이 견실하게 그리고

가늘고 길게

아무 일 없이 평온히 살기를 바랬다.


"지금 생각하면 먹고 사는 게 전부였던 나날들이었으니
굶주리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안정된 생활을 원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당시에는 그저 소심한 부모라고 반항했지만은요.

뭔가를 해라, 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고
오로지 하지 말라는 소리만 들으며 자랐죠.

라디오를 만들고 싶어서 공구를 사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그래서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을 하고 있는 아이가 있으니 나도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했더니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사고 싶으면 돈을 준다고 하셨죠.그 말에 그냥 포기했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때까지는,어쩔 수 없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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