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일본 안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다이코모치(太鼓持ち), 사쿠라가와 요네시치(櫻川米七)를 인터뷰한 것으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다이코모치란 연회석에 나가 자리를 흥겹게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호칸(幇間)이라고도 한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사쿠라가와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버블기에는 샐러리맨도 여럿이 몰려와
호쾌하게 연회를 즐기곤 했지만
회사의 접대비로는
일의 연장,
같이 일하는 동료에겐 덤으로 얻은 보너스 같은 감각으로,
떠들썩은 했지만
세련되게 놀려고 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호칸이라는 세계의 어디에 끌렸냐라는 질문에
요네시치는 "이키(粋)*를 느꼈으니까요."란다.
*이키(粋):이키,라는 개념은 일본의 대표적인 미의식 중 하나이다. 세련되지만 그것을 대놓고 보여주는 것은 아닌, 은은한 멋이 있는 것. 떠들썩하게 놀더라도 그저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도를 지키며 산뜻(?)하게 노는 것 그것도 이키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개념은 에도 시대 전기에 (사랑을 이루려는) 오기, 의기, 마음가짐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후기에 들어오면서 하나의 미의식으로 확립되었다.
단순한 마음의 존재양식, 행동양식을 넘어서, 마음의 구체적인 표출법 혹은 표현된 사물에까지 확장되어 사용되는데 내적으로는 사랑을 이루려는 의지를 갖고, 이를 밖으로 표출하는 언어·모습·복장·태도 등이 세련되어 불쾌감을 주지 않고 산뜻한 색기를 가지고 있는 멋진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상대가 싫어하면 깨끗이 체념할 줄 아는 정신까지 갖추어 이키를 이루고 있다.
"이키스러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누가 물으면 공돈이 든 봉투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돈을 "이키"스럽게 쓰려면
완전히 도락(道楽)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락(道楽)은 말 그대로 한 길(道)을 철저히 즐기는(楽) 것이며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득은 없다.
현재는 도락(道楽)이란 말이 "취미"라는 의미로 바뀌었지만 엄연히 경계선이 존재한다.
도락(道楽)을 즐기는 자에게는 항상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이 떠돌지만
취미를 즐기는 자에게는
건설적이기는 해도 파멸적인 냄새는 나지 않는 것이다.
粋는 관동지방에서는 "이키", 관서지방에서는 "스이"라고 읽는다.
粋의 반대말은 부스이(無粋)*가 아니라 키자(気障)*라고 한다.
야보(野暮)*는 노력하면 粋에 도달할 수 있지만
반대말인 키자(気障)는 아무리 노력해도 粋가 될 수는 없다.
*부스이(無粋):멋없음,세련되지 않음. 풍류가 없음
*키자(気障): 본래 걱정이 있음을 표현하는 단어였지만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의미로 발전해 상대의 언동을 불쾌하게 느끼는 일이나 신경에 거슬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미
*야보(野暮): 멋이 [풍류가] 없음, 촌스러움. 세상 물정에 어두움;,또, 그런 사람. 촌뜨기.(→やぼてん)
이키(粋)가 에도 사람의 미의식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척척 걷어내 가는 것이라면
간사이 지방의 스이(粋)는
쥬우니히토에(十二単)*처럼 겹겹이 입는 것과 같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고 스기우라 히나코(杉浦日向子, 일본의 만화가이자 에도 풍속 연구가)는
"이키란 보석을 박아 넣은 것 같은 캐딜락 같은 호화선이 아니라
뚜르 드 프랑스 (Le Tour de France) *같은 자전거형 미학이지요."라고 했다.
한계까지 죽을 힘을 다 해 페달을 밟고 또 밟고...
그래야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서일까.
요네시치가 동경한 "이키"스러운 세계는
그가 제자로 들어갔을 즈음에는 그래도 아직 마지막 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시대는 바뀌었고
연회석에 오는 손님들 또한 변해갔다.
그리고 호칸의 역할이 바뀌었다.
호칸이 호칸으로서
화류계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 타마스케가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요네시치 자신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호칸의 쇼를 보여주는 호칸 코미디언이라고 해야 할까요. 손님들을 이끌려고 해도 자기들끼리 놀고 싶어 하는 손님은 그렇게 반기지 않고요... 낭비를 완벽하게 없애려고 하는 사회에서 화류계가 살아남을 희망이 없어졌어요. 최소한 이 이상 사라지지 말아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죠. 적어도 호칸의 쇼만이라도 남기고 싶습니다."
환갑을 맞이한 요네시치 스승에게
그 예능을 계승하고 싶다는 뜻을 품은 제자가 나타났다.
사쿠라가와 시치타로우(櫻川七太郎)라는 이름으로
딱 달라붙어 조수일을 하며
그 예능을 훔쳐가고 있었던 것은
이제 스물 다섯의
하세가와 마유미(長谷川真友美).
여성이다.
"옛날의 다이코모치와 지금의 그것과는 아예 다르다고 생각해요. 옛날을 알고 있으면서 시대와 함께 변화해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원래 옛 것은 몰라요. 요네시치 스승의 시대조차 모릅니다. 영상에서 보거나 책에서 읽거나 하면서 상상하는 수 밖에 없죠."
타마스케 스승에게 입문했던 스물 다섯의 요네시치와
지금은 최고참이 되어버린 요네시치에게 입문한 스물 다섯의 시치타로우.
이 제자가 느끼는 연회석도
화류계의 분위기도
예능의 모습도
하는 일도 완전히 다르다.
화류계에 몰려든
시대라는 파도의 격함이 느껴진다.
호칸이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이키의 세계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
자신을 죽이며 손님들을 우선시해 온 호칸이
대역습을 꾸미는 일까지 서슴치 않으며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오로지
호칸의 그 예능만큼이라도 지키고 싶다......라는 마음에서말이다.
경쾌한 춤과 웃음을 유발하는
멋들어진 병풍 예능을 선보이고는
노을진 거리를 나란히 걸어 돌아가는
아버지와 딸같은
스승과 제자의 앞쪽으로
고층의 아사쿠사 뷰 호텔이 우뚝 솟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