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일본 안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다이코모치(太鼓持ち), 사쿠라가와 요네시치(櫻川米七)를 인터뷰한 것으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다이코모치란 연회석에 나가 자리를 흥겹게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호칸(幇間)이라고도 한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사쿠라가와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3,4개월 정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죠. 그리고 결국 하던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여기서도 큰 맘먹고,라든가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든가, 라는 말은 없었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만담가에서 호칸으로 결승점이 바뀌었다.
그 사이 다시 타마스케의 공연도 보러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제자로 들어갔던 야나기야코 스승의 곁을 떠나,
타마스케의 집을 찾아갔다.
콩트도 할 수 있고,
이미 기모노에도 익숙해져 있는 요네시치를
타마스케는 선뜻 받아주었다.
이렇게 행선지가 변경되었던 것이다.
실은 스승이 되는 타마스케 자신도
카츠라 코분지 문하에서 만담가에 뜻을 두고 두 단계나 진행되었을 즈음,
호칸이었던 사쿠라가와 타마시치의 집문을 두드린 적이 있어서
같은 길을 걸으려고 하는 요네시치에게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다.
요네시치가 스물다섯.
타마스케는 예순여덟이었다.
오랫동안 뚝 끊겨 있었던 젊은 제자의 입문은
그 맥이 약해져가고 있었던 타마스케의 예능이 계승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가 제자로 들어갔을 때, 호칸은 열 세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70대나 60대로 제 바로 위가 쉰다섯이었어요.
그리고 입문했다고 해서 바로 가르쳐 주진 않잖아요. 스승님 집에 매일매일 출근했습니다만, 집 청소라든가 개를 산책시킨다든가 잡다한 일들만 했어요.
그저 스승님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게 중요했죠.
공연이 있으면 따라가서 스승님이 하시는 무대를 보고 외웠어요. 그리고 필요한 다른 실력들은 선생님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스스로 찾아다녔습니다. 샤미센*,일무*,도도 이츠*와 코우타*,하우타*...다 처음 배우는 것이었지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당시는 그래도, 꽤 공연할 곳이 많아서 실력을 쌓기에는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요네시치가 한 사람의 호칸으로서 설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고도성장기에서 버블기로 돌입하려고 하는 일본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었고
요정에서의 회합이나 접대는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스승이었던 타마스케가 경험한
-지갑을 맡길 정도의- 손님과 호칸과의 신뢰관계나
겐반과 요정,손님 사이에서 하고 있었던 코디네이터 역할도 이미 사라진 후였다.
연회장에서 호화롭게 노는 일은 수많이 있었지만
손님들은 서서히 변해갔다.
"술자리에서 멋있게 노는 풍정(風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
전후에 그나마 조금 남아있었던 손님들 마저 없어지자, 세련된 놀이 자체도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죠. 축제 뒤에 훌쩍 혼자 와서 올 수 있는 게이샤나 호칸을 다 불러 달라는 손님들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때는 콩트를 해도 세련되게 노는,움직임 자체를 즐기는 것이었지만
이젠 무조건 웃기는,한바탕 웃게 하는 내용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버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