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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Jun 01. 2016

다이코모치(太鼓持ち)라는 삶(3)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일본 안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다이코모치(太鼓持ち), 사쿠라가와 요네시치(櫻川米七)를 인터뷰한 것으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다이코모치란 연회석에 나가 자리를 흥겹게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호칸(幇間)이라고도 한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사쿠라가와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3,4개월 정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죠. 그리고 결국 하던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여기서도 큰 맘먹고,라든가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든가, 라는 말은 없었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만담가에서 호칸으로 결승점이 바뀌었다.


그 사이 다시 타마스케의 공연도 보러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고민은 했지만, 헤매지는 않았다는 것일 테다.



제자로 들어갔던 야나기야코 스승의 곁을 떠나,

타마스케의 집을 찾아갔다.


콩트도 할 수 있고,

이미 기모노에도 익숙해져 있는 요네시치

타마스케는 선뜻 받아주었다.


이렇게 행선지가 변경되었던 것이다.


요네시치의 스승,호칸 유우겐테 타마스케

실은 스승이 되는 타마스케 자신도

카츠라 코분지 문하에서 만담가에 뜻을 두고 두 단계나 진행되었을 즈음,

만담가의 명문 가명, 카츠라 코분지(桂小文治)

호칸이었던 사쿠라가와 타마시치의 집문을 두드린 적이 있어서

호칸 사쿠라가와 타마시치(櫻川玉七)

같은 길을 걸으려고 하는 요네시치에게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다.



요네시치가 스물다섯.

타마스케는 예순여덟이었다.


오랫동안 뚝 끊겨 있었던 젊은 제자의 입문은

그 맥이 약해져가고 있었던 타마스케의 예능이 계승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제가 제자로 들어갔을 때, 호칸은 열 세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70대나 60대로 제 바로 위가 쉰다섯이었어요.

그리고 입문했다고 해서 바로 가르쳐 주진 않잖아요. 스승님 집에 매일매일 출근했습니다만, 집 청소라든가 개를 산책시킨다든가 잡다한 일들만 했어요.

그저 스승님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게 중요했죠.

공연이 있으면 따라가서 스승님이 하시는 무대를 보고 외웠어요. 그리고 필요한 다른 실력들은 선생님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스스로 찾아다녔습니다. 샤미센*,일무*,도도 이츠*와 코우타*,하우타*...다 처음 배우는 것이었지만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당시는 그래도, 꽤 공연할 곳이 많아서 실력을 쌓기에는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샤미센(三味線):일본 고유의 음악에 사용하는, 세 개의 줄이 있는 현악기
일무:일본 무용(日本舞踊)의 준말
도도이츠(都々逸: 속요(俗謠)의 하나)
코우타(小唄): 江戸 시대 초기에 유행한 投げ節 등의 가요.
하우타(端唄):三味線에 맞추어 부르는 짧은 속요

요네시치가 한 사람의 호칸으로서 설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고도성장기에서 버블기로 돌입하려고 하는 일본에는

돈이 넘쳐나고 있었고


요정에서의 회합이나 접대는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스승이었던 타마스케가 경험한

-지갑을 맡길 정도의- 손님과 호칸과의 신뢰관계나

겐반과 요정,손님 사이에서 하고 있었던 코디네이터 역할도 이미 사라진 후였다.


연회장에서 호화롭게 노는 일은 수많이 있었지만

손님들은 서서히 변해갔다.


"술자리에서 멋있게 노는 풍정(風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됐습니다.
전후에 그나마 조금 남아있었던 손님들 마저 없어지자, 세련된 놀이 자체도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었죠. 축제 뒤에 훌쩍 혼자 와서 올 수 있는 게이샤나 호칸을 다 불러 달라는 손님들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때는 콩트를 해도 세련되게 노는,움직임 자체를 즐기는 것이었지만
이젠 무조건 웃기는,한바탕 웃게 하는 내용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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