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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May 30. 2016

다이코모치(太鼓持ち)라는 삶(2)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일본 안에서도 얼마 남지 않은 다이코모치(太鼓持ち), 사쿠라가와 요네시치(櫻川米七)를 인터뷰한 것으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다이코모치란 연회석에 나가 자리를 흥겹게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호칸(幇間)이라고도 한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사쿠라가와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손님을 배웅한 후 겐반 사무실에 인접한 작은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배달시킨 커피를 앞에 두고 

요네시치는 호칸(幇間)의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호칸이란 원래 유흥의 술자리를 북돋우는 사람.


호(幇)는 돕는다라는 의미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술, 

술과 술의 사이(間)를 감칠 나게 만드는 것.


나리님들의 기분을 맞춰 즐겁게 한바탕 놀도록 도와주는 역할인 셈이다.

호칸, 혹은 남자 게이샤. 

혹은 다이코모치라고 불리는 사람들.


다이코모치라고 하면 

마음에도 없는 아첨으로 세상을 수완 좋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호칸이 손에 든 다이코(북)는 자신을 위해 치는 천박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손님들을 위해 

자신을 억누른,


철저하게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아첨만으로는 절대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없어요.
오히려 흥이 깨져 버리죠.

신경은, 쓰는 것이 아니라 배려를 위한 것이에요.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것.

어색하게 굴면 억지로 하는 게 눈에 보이게 되죠.

공기의 흐름을 읽으며
보다 즐거울 수 있게 힘씁니다. 그게 바로 호칸이 하는 일이에요.

예전에는 손님 대신 교섭하는 일도 했다고 해요.겐반과 요정 사이에서 얼마만큼 잘 놀 수 있을지 예산을 세우는, 말하자면 프로듀서 같은 일 말이에요. 연회석에서 손님의 지갑을 맡아서 팁을 주는 일도 했다고 합니다. 쓸데없는 돈을 쓰지 않고 필요한 데는 꼭 쓰기 위해서인데 그 정도로 신뢰 관계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세계에 뛰어 들 즈음에는 그런 관계도 희박해져 있었지만은요."


요네시치가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1975년(쇼와 50년).


스물다섯이었다.


이바라키(茨城)에서 태어나

모리오카(盛岡)에서 자란 요네시치는 

4형제 중 막내.


초등학교 때부터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담 중계를 즐겨 보는 소년이었다.


교실의 교단을 무대로 

반 친구들을 웃기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의외로 말도 못 하고 그저 얌전하기만 한 소년이었단다.


"기모노(和服)를 입고 하는 무대가 왠지 모르게 그냥 좋았어요."


사람을 웃기는 것을 좋아한 것도

코미디(お笑い)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기모노를 입고 무대에 서는 게 좋았다, 라니!


"기모노를 입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만담 밖에 없는지 알았어요.

그래서 5대째 만담가였던 야나기 야코(柳家小) 밑으로 들어갔죠.

처음에는 물론 갈 때마다 거절당했습니다. 그래도 줄기차게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그래서 결국 제자가 되었다는, 뭐 흔히 있는 이야기입니다."

스물한 살.


제자로 들어가기만 하면

만담가로서의 길이 열린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온전히 본인의 재능과 노력에 좌우되는 세계에서 수행을 시작한 지 3년쯤 되던 어느 날. 


우연히 다이쇼, 쇼와, 헤이세를 통틀어 활약하고 있었던, 

마지막 호칸이라 불리는 유우겐테 타마스케(悠玄亭玉介)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유우겐테 타마스케(悠玄亭玉介)
"그때, 아! 어쩌면 여기겠구나!, 싶었어요."


타마스케의 무대를 보면서,

'아, 바로 여기겠구나' 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호칸 사쿠라가와 요네시치는 탄생하지 않았을 테니 

그야말로 이곳이 인생의 갈림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서 봤는지, 어떤 걸 느꼈는지 물었더니 

요네시치의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요정이 아니었던 건 분명해요.
일반 손님들도 들어갈 수 있는 홀이었던 것 같아요.

춤추는 모양새라고 할까, 움직임의 재치라고 할까, 그냥 전체적인 모습이 좋았다고 할까.... 분명한 건 멋있었죠. 어쩌면 전혀 몰랐던 세계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음이 분명한데도 

그 순간을 말하는 게 영 미덥지 않았다.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은 없었지만

어쩌면 이쪽이 자신의 길일 지 모르겠다고, 

그저 그런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둥지를 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었다.


요네시치가 꿈꿔 왔던 

기모노를 입고 살아갈 수 있는 세계에

호칸도 있다는 발견...


한 단 높은 곳에 앉아하는 만담가와는 달리, 

손님과 같은 자리에서  

춤추며 노래하며 샤미센과 북을 연주하는 호칸의 존재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때까지 전혀 몰랐던 세계와 맞닥뜨렸을 때


움직임과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고 그러고 나서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대로 만담가로서의 수행을 계속해도 될까 라는 고민을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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