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내가 원했던 서른여덟

by 지집아이

# 서른여덟, 시집 안 간 둘째 딸 <9화>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스물세 살, 지희는 '졸려'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대학 생활을 하며 자격증 공부에 아르바이트도 모자라 엄마의 식당 일까지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에게 ‘잠’은 사치였고, 2~3시간 눈을 붙이는 쪽잠으로 하루를 버텨야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돈'


대기업 임원이었던 아빠는 누가 봐도 가망 없는 사업에 5년을 매달려 있었고, 그 덕에 평생 주부로 살아온 엄마가 식당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이너스. 그렇게 부잣집 둘째 딸이었던 지희는 가세가 기우는 것을 빠르게 느끼며 친구들보다 일찍 생활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할 여유도 글을 쓸 여유도 없었다. 당장 백만 원이라도 집에 가져올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바로 '방송작가'였다.


힘들었다. 마감 시간에 쫓겨 화장실조차 제때 가지 못했고, 꼬여버린 일정과 늦어지는 편집으로 하루, 때론 삼일까지도 밤새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허리와 목은 고통스럽다 아우성쳤고, 손목과 손가락은 그만 좀 쓰라며 수시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뿐인가. 마치 온몸의 피가 전부 다리로 쏠린 듯 퉁퉁 붓기 일쑤였고, 안약과 진통제는 핸드폰과 지갑만큼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힘들 때면, 눈물이 날만큼 힘들 때면. 지희는 항상 습관적으로 미래를 상상했다.


'서른이 되면 조금은 행복하겠지?'

'서른다섯이 되면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을 거야.'

'서른여덟쯤엔 근사한 집도 있고, 차도 있을 텐데...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2021년, 서른여덟이 된 지희는 과연, '20대 지희'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전혀 아니다. 서른이 되었을 땐,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에 더 좌절했고, 서른다섯이 되었을 땐, 남편과 아이 대신 형부와 조카들이 가족으로 함께 했다. 그리고 서른여덟, 근사한 집은 없지만 다행히 차는 있다. 물론, '명의만 지희 것'이라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래서 서른여덟이 된 지희는 가끔 20대인 지희에게 미안해진다. 그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 꿈을 꾸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하지만, 지금 지희는 과거 지희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 순간도 게을리 산 적이 없다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그래서 과정엔 후회가 없다고. 그리고 비록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를 위해 살고 있다고. 그래서 '서른에 이루고 싶었던 꿈'이 조금 늦게 '서른여덟'에 이루어졌다고 말이다.



- <10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