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재 <빌려줄게>
혼자 있기 힘들 때 나를 빌려줄게
힘이 들면 언제나 내게 기대면 돼
흘러내린 눈물을 멈출 수 없다면
내 어깰 빌려줄게 내게 적시면 돼
불을 다 켜봐도 맘이 어둡다 느끼고
몸을 뉘어봐도 맘을 놓을 수 없다면
잠시 날 빌려줄게 기대도 돼
주저 말고 내게 와
길었던 그 하루가
힘겨웠을 테니까 그대
아무 말 안 해도 돼
it’s alright. it’s alright
왜 나만 안되지 생각은 무거워지고
내일이 두려워 잠이 들 수가 없다면
잠시 날 빌려줄게 기대도 돼
주저 말고 내게 와
길었던 그 하루가
힘겨웠을 테니까 그대
아무 말 안 해도 돼
it’s alright oh
아무도 그 하루에 관심이 없대도
더는 외롭지 않게 내가 들어줄게
소리 내 울어도 돼 그래도 돼
원한다면 언제나
혼자여도 괜찮아 무너져도 괜찮아
이제 내가 널 안아줄게
it’s alright. it’s alright
나는 더 이상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 '반려견', '애완견'으로 불리는 가족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가슴 아픈 이별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
대체 왜, 이별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나의 마지막 가족은 4년 전, 노병으로 숨을 거둔 '또식이'이었다. 꼼짝없이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끝까지 꼬리를 흔들어주던 아이, 죽기 전까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 그게 바로 '또식이'었다. 심장병과 노병으로 수술 후에도 전혀 호전되지 않던 '꽃님이'는 한 달을 밤낮으로 기침을 토해냈기에 결국, 안락사로 떠나보내야 했고, '릴리'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걸 느꼈는지, 아픈 몸으로 집을 나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몇 달을 울며불며 찾아다녔지만, 마치 증발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을 하나 둘 떠나보내며,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고, '또식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가족'을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다짐 후, 2년이 흘렀을까? 그때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에, 사실이 아닌 거짓 소문에 거의 일주일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 이러다 죽겠구나.' 싶던 그 순간, 친구가 보내준 '노래' 하나가 나를 다시 먹고, 다시 잘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이 바로 신용재의 <빌려줄게>다.
혼자 있기 힘들 때 나를 빌려줄게
힘이 들면 언제나 내게 기대면 돼
흘러내린 눈물을 멈출 수 없다면
내 어깰 빌려줄게 내게 적시면 돼
순간, '또식이'가 생각났고, '꽃님이'가 생각났으며, 또 '릴리'가 생각났다. 내가 숨죽여 울면 조용히 다가와 품에 안기던 '또식이',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 쉬면 목줄 들고 다가와 산책하자 졸라대던 '꽃님이',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으면 자신의 밥을 입으로 물고 와 나에게 주던 '릴리'. 그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리움은 눈물로 흘러내려 결국, 응어리를 풀어냈고 그날 난, 다시 먹고, 다시 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노래를 보내준 친구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그 뒤로 난,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신용재의 <빌려줄게>를 듣는다. '또식이'가, 또 '꽃님이'와 '릴리'가 마치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소리 내 울어도 돼 그래도 돼
원한다면 언제나
혼자여도 괜찮아 무너져도 괜찮아
이제 내가 널 안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