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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집아이 Nov 30. 2021

'글태기'를 느낀 작가의 조언

<3. 힘내지 마>


  "너 그거 우울증이야."


  '글태기'라는 말만 꺼냈을 뿐인데, 생각지 못한 대답이 훅 날아들었다. 나에게 폭탄을 터트린 그녀는 마흔을 훌쩍 넘긴 작가 선배. 평소 나무 같은 사람이라 생각할 만큼 야무지고 단단한 성격이었기에 가볍게 웃으며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우... 우울증이요?"

  "응. 나도 그랬거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5년 전 상황을 들려주었다. 늘 그렇듯 그날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마감을 하루 앞둔 날, '갑자기' 더 정확하게는 '느닷없이' 글태기가 찾아왔다고 했다. 잠깐 졸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을 뿐인데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고. 마치 뇌가 '난 아무 일도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나? 어쨌든 ‘잠이 덜 깼나?', '운동 부족인가?', '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이유를 찾으면 금방 해결될 거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밥을 먹어도, 산책을 해도, 커피를 마시고 또 마셔도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다음 날, 원고를 재촉하는 PD 전화에 결국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고 했다.


  "그럼... 원고는요?"


  맙소사. '많이 힘들었겠어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줄 말이 있는데, '원고는요?'라니... 백번 양보해서 질문을 던졌다 해도 '이유는 찾았어요?', '어떻게 극복했어요?'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순간, 나 자신이 너무 창피했고, 당장이라도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으~ 지독한 년. 이래서 작가들이 싫다니까."


  선배는 마치 질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다행히 후배가 도와줘서 잘 해결됐다.'며 친절하게 원고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후로 반년을   줄의 도 쓰지 못했었어." 여행도 가고, 책도 읽고, 사람들도 만나며 어떻게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고 했다. 글이 써지지도 않고, 쓰고 싶지도 않은 '글태기' 상황이 계속되자, 이러다 평생 글을 쓰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고 했다. 성큼 다가온 겁은 금세 눈물로 번졌고, 양은 물론, 횟수도 점차 늘어나 어쩔 땐 종일 울기만 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마치 그날, 그때의 감정이 느껴진 걸까?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천천히 한숨을 토해내고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남편이 날 살렸잖아. 정신과에 데려갔거든.”


  그녀는 억지로 끌려갔다며 툴툴거렸지만, 남편이라고 마음 편했겠는가. 아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어쨌든 어렵게 찾은 병원에서 그녀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통해 다시 '웃음'도 '작가'라는 직업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긴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고는 단단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힘들 땐... 힘내지 마. 그냥 좀 힘들어해도 돼."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고, 쉼 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만큼은 내 생각도, 내 의지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말라서 안 나올 때까지 눈물을 모두 다 쥐어짜 내버리고 싶었다. 그러면 마음이 좀 후련할 것만 같았다.


  "끅끅..."


  조용히, 어깨만 들썩이며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탁자에 휴지가 쌓일수록 눈물의 양도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선배는 정말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눈물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려줄 뿐이었다. 

  

  그럼, 그날 이후로 '글태기'는 조금 나아졌을까? 나도 조금은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나아지진 않았다. 여전히 글쓰기가 힘들고, 버거운 걸 보면. 즐겁게 쓰고 있기보다는 즐겁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랄까? 그럼에도 좋다. 10분이면 쓸 글을 1시간 동안 쓰고 있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고 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해도, 어쨌든 난...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거면 됐다. 


  힘들 땐... 힘내지 않아도 될 '용기'를 얻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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